[백두산]야생화 천국에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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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땡 빚 내서 오르다!
**언제:2006년 7월30일~8월3일(4박5일)
**누구랑:부산산정산악회랑(52명)
**개념도
**일정(우리나라 시각 기준/중국은 우리나라보다 1간 늦음)
***1일차(7/30-일)
07:30-부산 시민회관 집결
08:54-대구공항 도착 및 수속
11:50-대구공항 출발
13:40-중국 심양 공항 도착 및 입국수속
14:25-버스 탑승/청나라 청태종 무덤 북릉 이동
15:17-북릉 도착/관광
16:45-북릉 출발
17:13-식당 도착 및 저녁식사(중국 부페식)/식 후 상점 구경
19:25-심양공항 도착
20:50-표 시각(19:50)/지연출발/두번 회항
02:55-항공사 제공 호텔 도착
03:30-방 배정 숙소 도착
*2일차(7/31-월)
05:30-기상/식사
06:50?-심양공항 도착
09:23-탑승 수속
10:45-연길 공항 도착
11:53-연길 공항 출발
14:03-장백산 유람 관광 휴게소
15:51-이도백하 고려 식당 도착
16:53-식당 출발
17:18-북파 산문 입구 국제 호텔 도착
17:39-북파 산문 셔틀버스 탑승
18:05-장백산 온천지구도착
18:25-장백폭포 매표소 도착
18:35-19:00-장백 폭포 주변
19:15-장백산 온천 지구 도착
19:30-짚 차로 출발
19:42~50-흑풍구
20:02-천문봉 아래 주차장
20:07~17-천문봉
20:24-천문봉 산장
20:37-식사
22:20?-취침
*3일차
*4일차
*5일차
***가기전에
백두산!
민족의 영산,민족의 성산으로 불리고 생각하는 백두산은
나에게는 어릴적부터 노래를 통하여 자연스렂게 각인된 곳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애국가에도 나오고
그리고 주로 학교의 교가에도 예외없이 등장한다.
어릴 적 시골 초등학교의 교가엔 대표적인 점강법으로 나오는데 상기해 보면
‘아시아 동쪽에 삼천리 금수강산
백두산 정기 받은 지리산 밑에서
구비구비 흐르는 ….’
산에 다니면서부터 백두산은 산행,인생에서 꼭 가보아야 할 곳으로 대두하게 되어
기회를 엿보다 작년엔 신청을 못하고 올해는 이것저것 재지 않고 9살 딸과 함께 신청을 한다.
날짜가 다가올수록 딸이 아비의 주머니 사정을 헤아리는지 “안 가면 안돼요”하는 말의
횟수는 많아지고 간격은 짧아진다.
긴 시간을 걸어야 하는 것이 힘들 것이라 그러했겠지만,
경제적으로 부실한 아비는 결국 그 청을 받아들이고 만다.
***1일차(2006년 7월 30일)-40만원이나 벌었네?
있으면 편하고 없으면 불편할 것 같은 짐까지 챙기고 보니 배낭 하나와 여행용 가방이
제법 가득하다.
부산 직항 출발이 마땅치 않아 대구공항으로 이동하는데 시민회관에서 출발한 버스는
서울,울산,포항에서 합류하는 인원을 제하고도 45인승 버스엔 빈자리가 몇 없다.
대구공항에 도착하여 인원을 점검하고 48명을 4개조 로 나누어 2조 조장 자리를 맡았지만
일정 내내 별로 할 일 없는 자리였다.그 바람에 수월했지만..
기내에서 무뚝뚝하고 친절이라곤 눈꼽 만큼도 없는 싸가지 없는 공안요원 같은
남자 승무원에게 맛도 없는 기내식과 물 한잔 얻어 먹고 1시간 40여분만에 심양공항에 도착한다.
대구 공항에 비해 규모가 제법 큰데 인구 700만을 가진 중국 제 5의 도시라 한다.
2대의 차에 나누어 타고 누루하지의 8째 아들인 청태종의 무덤인 북릉막 가는데
산 하나 보이지 않는 만주 벌판에 거대한 건물들이 경쟁하듯이 들어서는데
현재 중국의 모습을 대변해 주는 듯 하다.
폭스바겐의 중국 합작기업에서 생산한 구닥다리 소형 택시와 값 비싼 신형 외제차,
간간히 보이는 우리나라 합작기업 차들이 공존하는 시내 도로를 지나
황토 빛이 도는 붉은 기와로 치장한 북능 입구에 도착한다.
넓은 땅덩어리를 자랑하듯 아주 넓은 면적으로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청나라 때 건물 들도 깨끗하게 아주 잘 보존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유적지와는 색감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 같다.
부실한 기내식 덕분에 이른 저녁을 먹으러 이동한다.
중국식 부페음식인데 그런대로 먹을 만하다. 부실한 에어컨만 아니었다면 좋았을 텐데…
이른 저녁 덕택에 비행기 시간이 남아 근처의 주로 외국인만 상대하는 것으로 보이는 무늬만 백화점으로
가보지만 물건이 비싸고 별로인지 점원들 입만 바쁘다.
나중엔 자기들도 영 아니다 싶은지 포기하는 듯 하다.
연길로 가는 국내선을 타기 위해 심양공항으로 가서 탑승수속을 하고 이륙을 한다.
그런데 이기 무신 일이고?
다시 심양으로 돌아간단다. 연길에 폭우가 쏟아진다나 어쩐다나!
공항에서 예정없이 기다리는데 무료하다.
이른 저녁 덕택에 배가 고프기도 하여 어슬렁 거리다가 스낵바 같은 곳에서 신라면을 판다.
이거 얼마요?
말이 통할리가 있나? 글자가 최고지!
그런데 이 인간들이 한국 돈 알기를 알 사탕이나 하나 사먹을 가치 밖에 없는 걸로 아는지 아니면 무조건 바가지를 씌우려고 하는 건지 환율에 의한 계산이 엄청 다르다.
만원이란다. 15위엔 인가 20위엔(2,600원) 짜리가.
그래서 포기하고 게이트 앞 대기석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보이는 대장님 얼굴!
‘대장님 위엔 좀 있습니까? 라면 먹을라고 하니…”
‘갑시다! 제가 사드릴께요!’ 빌릴라고 했다가 횡재하였다.
라면을 먹고 나니 목이 마르다.
중국 땅 어디든지 물을 아주 귀하게 여겨서인지 물 인심이 아주 야박하다.
공항 어디에도 정수기 하나 생수통 하나 없다.
화장실의 수돗물을 그대로 먹으라고 하는지…
매래치님은 세면대의 물을 먹었단다.
기약없는 기다림 끝에 연길 날씨가 좋아졌나 보다.
다시 탑승하라고 한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많은 시간을 비행하길래 착륙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두어번의 마땅치 않은 시도 끝에 다시 돌아간다고 한다.
우째 이런 일이!!
아! 고민 되네!!
대각선 방향 얼굴은 고삐리 정도 밖에 안 보이나 차림은 돈 꽤나 있는 여대생으로 보이는
조선족 아가씨에게 심양-연길 편도에 얼마입니까 물으니 우리 돈으로 10만원쯤 한다고 한다.
1시간 거리에 10만원이라니 우리나라 보다 비행기 삯은 더 비싸구만!
“그라모 우리는 두번이나 왔다 갔다 했으니 40만원이나 벌인거네”
다시 공항에 착륙하여 기다리니 짐 싸란다. 근처 호텔에서 재워준단다.
그라모 40만원 보다 더 많이…
**2일 째(2006년 7월31일-월)-백두산 천지를 보다!!
2시간도 채 못자고 일어나 항공사 호텔에서 제공하는 부실한 식사를 마치고 공항으로 이동한다.
7시간30분 첫 비행기로 보내준다더니 이놈의 뗏놈의 쉐이들이
대도시로 가는 비행기들 다 보내주고 나서야 탑승하란다.
이런 시간 개념없는 쉐이들 때문에 백두산 천지 보는 시간이 줄어들게 되어
늦은 시간에 짧은 시간 동안 천지를 보게 되어 욕이 절로 나온다.
우여곡절 끝에 연길공항에 도착하니 돌쇠네 가족까지 합류하여 52명의 대 인원을 태울 두 대의 버스와
가이드 3명과 가이드 보조 2명이 반갑게 맞아준다.
연길공항 주차장은 어제 비가 온 게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햇볕이 내리 쬔다.
한 부부가 늦게 오시는데 화물로 부친 짐중에서 선글라스와 핸드폰이 없어졌다고 한다.
잠금 장치를 하지 않은 가방에 넣어 두었다고 한다.
아직까지는 중국이란 나라에서 잠금장치를 하지 않은 물건은 내 물건이 아니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여권을 비롯한 귀중품은 꼭 휴대하고 화물은 매매 잠가야 하는기라.
공항을 빠져 나와 촌길을 달리는데 사방으로 옥수수밭이 끝 간데 펼쳐지고 붉은 기와로 치장한 마을들이
그 사이를 비집고 자리하고 있다.
멀리서도 조선족 집 인 것을 알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은
먼저 백의민족의 후예답게 건물벽을 주로 횟가루 등을 칠하여 흰색이고,
둘째, 머이더라?
드디어 산이 보이고,편도 1차선의 구불한 고갯길을 개념없이 무모하게 앞지르기를 하는데
우리나라의 통행량 정도 되었다면 여러 번 사고가 났을 것이다.
조선족이 운영하는 휴게소,말이 휴게소이지 볼일을 볼 수 있는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상점이라고
보는 것이 맞지 싶다.
장뇌산삼,산삼,인삼,버섯 흥정을 해보지만 잘 팔리지 않고 옥수수,오이만 불이 난다.
차를 타고 떠나려는 손님에게 가격 후려치기로 응수해보지만 백두산이라는 거사를 앞둔 일행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다 짐이기 대문이다.
내 그럴 줄 알았다.
맞은편에서 무리하게 차 앞을 가로질러 마을로 들어가는 자전거를 피한다고 차는 급정거를 하고
접촉은 없었던 것 같은데 자전거를 몰던 아줌마도 갑자기 내빼다 동네 입구 작은 시멘트 다리에
널부러져 원망의 눈초리와 함께 무릎을 주물럭거린다.
난 한국의 정서에 길들여진 사람이라 이거 시간 좀 걸리겠는데 하는 생각도 잠시 뿐
기사는 차문을 열고 나가더니 욕 한 바가지 퍼붓고는 태연하게 차를 몰고 간다.
다시 길은 더 넓은 초원 같은 고원을 가로질러
미인송 군락지를 지나고 거대한 목재소를 지나고 이도백하에 도착한다.
고려식당 간판을 붙인 조선족 식당에서 밥다운 밥을 먹어본다. 들쭉 술과 함께.
옥수수밭
미인송
차는 장백산 북파산문을 향하여 달린다.
예전에 관광버스가 그대로 온천지구까지 갔다고 하는데 지금은 산문에서 내려서 셔틀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북파산문 입구
셔틀버스 안
차를 타고 오르는데 차 오른족 한켠으로 무지개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더니 탄성과 함께 백두산이
모습을 드러내고 장백폭포도 보인다. 주체할 수 없는 흥분과 함께 몸도 날뛰는 기분이 된다.
인당 만오천이나(?) 하는 온천은 하지 않고 장백폭포로 오른다.
입구에서 돌쇠 가족을 만나고 흰자는 안 익고 노른자만 익는다는 온천물에 담근 계란을 얻어 먹고
폭포 매표소에서 위엔을 탈탈 털어 지불하고 눈은 폭포로 고정한 채 점심 때 먹은 들쭉 술이 올라 올 정도로
부리나케 올라간다.
쏴아아~~
아니 콰아아 쿠우우 하는 소리와 함께 마음을 가라 앉힐 새가 없다.
이리 찍고,저리 찍고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이쁘고 앙다무진 은희 가이드가 내려가자고 재촉한다.
내려가기 싫은데…
온천 입구 도로에서 온천물이 새어 나오는데 손이 데일 정도로 뜨겁다.
그나마 이렇게 한 것이 온천욕을 하지 못한 나름대로의 온천 手욕이 되었다.
빽 좋은 김철 가이드 덕분에 영업 마친 짚차를 10여대 부러 나누어 타고 천문봉으로 오른다.
차는 미쯔비시 파제로의 중국산 모델이다.
우리나라에서 갤로퍼로 명성을 누리다 이 곳 중국에서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영업시간 중이라면 어림없다는 흑풍구에 들러 분주히 발아래 있는 장백폭포를 향해 연신 셔터를
눌러 댄 후 천문봉을 향해 다시 오르는데 어두어진다.
흑풍구에서 바라 본 장백폭포
차에서 내리자 마자 마음은 쏜살같이 오르지만 심장이 터질 것 같다고 몸이 천천히 가자고 한다.
해는 지고 마지막 남아있는 노을 빛에 의지해 천지를 내려다 보는 순간
-동해물과 백두산이 하면서 나오는 천지의 모습을 내가 보다니- 감동이 밀려온다.
중국령-오른쪽 앞 백운봉,가운데 청석봉
왼쪽 북한령-가운데 장군봉
조그만 더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또 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심양에서 2시간이나 지연 출발하지 않았다면 구름 한 점 없는 천지를 두시간이나 볼 수 있었을텐데!
저런 개노무쉐이들!!!
아쉬운 발길을 뒤로 하고 산장으로 향한다.
방 배정을 받고 우리나라의 산장처럼 생각하고 도시락이나 주겠지 하는데 음식들이 올라오기 시작하는데
배부르게 정말 잘 먹었다.
시원소주도 한 병 꺼내 밥맛과 기분을 돋우고,몇몇은 산장 밖으로 나와 별빛을 안주 삼아 한 잔 씩 더한다.
천문봉 산장
대장님 전화를 빌려 딸과 와이프에게 별들이 총총거린다고 하였는데….
**3일차(8/1)-천지 신명이시여!!
기상 소리 전에 산소부족으로 숨이 막혀서 인지 잠을 깨었다.
멋진 날씨를 기대하며 밖으로 나가 보니 강풍과 함께 구름이 잔뜩 끼워 있다.
볼일을 본 후 다시 잠을 청해보지만 코 고는 소리에 뒤척이다 기상소리와 함께
특유의 몸에 밴 습관인 느릿느릿 챙기니 복도에서 비가 온다느니 바람이 강하게
분다느니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체감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 바람과 비를 맞아 본다.
이거 장난이 아닌데.
이곳 백두산은 하루에도 일기 변화가 무상하니 점차 좋아지길 기대해본다.
다시 들어와서 거금 3000원을 주고 상하 비닐우의를 산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산장 앞에서 전부 나가 인원 점검를 하는데
바가지 쓴 비닐 우의 덕분에 기분이 좋아진다.
너무 부실해 잘 견디어 줄지 의문이지만.
그렇게 출발을 하는데 10미터 앞도 분간이 안되어 거리를 주지 않으면서
전부 같이 움직인다.
불순한 일기 때문에 교수님 부부는 되돌아 간다.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돌부리를 잡지 않으면 날아갈 정도이다.
앞으로의 험난한 산행을 예고해 주는 듯하다.
야생화들이 지천에 있지만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았고
야생화 또한 비바람에 심하게 나부대는지라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그렇게 천문봉 에돌아 가다가 달문이 내려다 보이는 급경사의 길을 내려가며 일부러
천지의 개벽을 기다리며 천천히 내려서는데,일순간 천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천지가 보인다” 소리를 지르고 가슴은 심하게 요동을 치고 디카를 꺼내 내리는 비는
안중에도 없이 막 찍어 본다.
구름이 밀려나고 들어오길 몇 차례 거듭하고 난 후 달문에 내려서서
임시 방편으로 놓여진 징검다리를 껑충껑충 뛰어 넘는다.
아마 누군가는 물에 빠져 신발이 젖었을 것이다.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나중에 폭우에 가까운 소나기로 인해 일행 모두 다 젖었지만…
이제 천지 물가로 부리나케 가는데 우의 하의가 나불거려 보니 찢어져 있다.
밑단을 묶어서 바람을 막았더라면 좀 더 견디어 주었을 텐데라는 생각도 잠시
다리는 계속해서 천지로 가고 있다.
증명사진 남긴다는 생각에- 비오는 궂은 날씨로 인해서인지- 천지에 손 담그는 일을 그만 잊어 먹고
아침이 준비된 서너동 되는 천막중에 뒤켠의 천막으로 들어간다.
중국엔 젓가락 질을 잘 못하는지 1회용 플라스틱 포크가 내장된 컵라면(신라면)과,
부실해 보이는 도시락을 받아 열어보고 ‘이기 머이고’하면서 한마디 씩 거든다.
나야 도시락 부실하다는 말은 이미 들었고 그리고 라면을 좋아하는지라 국물까지 다 먹었지만
아침에 라면이 내키지 않은 이도 있었을 것이다.
도시락 보다 라면이 비싸다고 한다.
다시 인원점검을 하고 이제부터 진짜 산행을 하게 된다.
너덜 방벽(옹벽)이 있는 곳에서 길은 장백 폭포와 방벽 안 너덜 길을 따르다
용문봉 급경사 길을 치고 올라야 하는 길로 나뉜다.
여기서 돌쇠가족,이쁜님 등이 대장님과 오랫동안 상의 후에 장백폭포 쪽으로 탈출을 한다.
작은 돌쇠가 나중에 닥칠 악천후를 예상했나 보다.
산소 부족인지 시덥잖은 심장을 가져서인지 급경사 오름 길이 상당히 힘이 든다.
기를 쓰며 올라서니 눈 앞엔 구릉이 펼쳐지고 발 아래엔 구름이 집산을 반복하는 협곡 사이로
달문에서 폭포로 향하는 천지물,승사하가 장관을 연출해 준다.
내려다 본 승사하
그렇게 마음이 붕 더 있는 상태로 조금 더 가니 오른편 옥벽폭포 쪽으로 구름이 일거에 걷히면서
모습을 드러내는데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쭈욱 됐으면 열망해 보지만.
이걸로 끝이다.ㅠ ㅠ
비와 구름이 공존하는 길은 녹명봉,백운봉 아래 까지 이어진다.
오호 통재라!!
속된 말로 아까비!!
구름속이라 야생화만 찍어댄다.
가지돌꽃
바위구절초
나도개미자리
흰두메양귀비
호범꼬리
가지돌꽃 / 가솔송(분홍색)
백운봉을 우회하며 고산화원쪽으로 내려서는데 홍길동이 나타나 일진광풍을 불었는지
발 아래 송강하 쪽이 열리면서 신비로운 광경을 보여준다.
자자 여기서부터 희희낙낙이다.기대하시라.
수목생장한계선 위라 티끌(수목) 하나 없는 야생화 천지이라 일행 저마다 바쁘다.
하늘매발톱 보고
화살곰취 보고
산오이풀 보고
호범꼬리 보고
사진 찍는다고
사진 찍힌다고
물 뜬다고
난 촐싹거리다가 넘어져 피 보고
그래도 좋다.
하늘매발톱꽃
화살곰취
바위구절초
두메분취와 등대시호
구름국화
오랑캐장구채
호범꼬리
큰오이풀
비로용담
박새
고산화원아래 송강하 계곡
바위구절초와 껄껄이풀
고도를 한 참이나 낮추어 계곡에서 점심을 먹는다.
아름다운 풍경에 배가 불러서 인지 맛이 없어서 인지 이내 도시락을 닫고 만다.
그리고 어딜가나 나의 주특기인 영역 표시를 하러 간다.
일행 중에 흔적을 남겨둔 이는 나뿐이 아닌가 한다.
배낭을 훌쳐 메고 가뿐 숨을 내쉬면서 오르는데 비가 후두둑 하는데
지금가지 비가 온 상황하고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그러더니 하늘이 구멍 난 듯이 쏟아진다.
고도를 높일수록 바람이 몸덩이를 날릴듯한 기세로 소나기를 실어 불어대는데
천만 다행으로 바람은 머리 뒤로 불어 얼굴이 쥐어 터지는 일은 없다.
오히려 등줄기를 타타닥하고 때리는 소리와 안마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더 좋다.
어차피 천지를 보여주지 않을 바엔 이런 경험의 기억이 더 오래 갈 것이다.
우리와 역으로 진행하는(서파-북파) 사람들이 측은하게 느껴진다.
어린 아이도 있었는데…
그렇게 청석봉을 지날 즈음 비는 잦아들었지만 바람만은 여전히 천지 절벽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기세로 불어대 정상등로와 거리를 두면서 손이 발이 되어 걸어간다.
이제 천지 조망은 체념하고 빨리 산행이나 마쳤으면 하는 생각 한켠에
청석봉을 지나고 마천우에서 마지막 미련을 가져 보지만 하늘은 열리지 않는다.
이런 우라질 놈의 날씨가 단 한번에 천지를 볼 수 있는 요행수를 허락하지 않는다.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어 어제 해거름에 천지를 10여분 보았더라도
오늘도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푸르디 푸른 천지를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건만
그리고 끝간데가 어딘지 모를 초원과 만주 벌판을 더 보고 싶었는데…
이젠 그 꿈을 접어야 한다.
마천우를 내려서서 5호경계비를 향해 좌로 크게 꺽이는 지점에서 후미를 제법 오래토록 기다린다.
키는 작지만 옹골차고 능력있는 김철 선두 가이드가 5호경계비를 거치지 않고 가는 지름길이
있다고 하여 그리로 가자고 하는 의견이 우세한 가운데 나는 무슨 소리하느냐 예정대로
5호경계비로 가길 주장한다.
그리고 날아드는 대장님 무전 소리
“5호경계비로 해서 계단 타고 내려가자”
30분쯤 더 걸린다는 말은 아마도 뻥!
10여분만에 5호 경계비에 도착하여 북한령을 들락날락 해본다.
백두산을 찾는 인원의 대다수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북한을 통해서 백두산을 찾을 수 있다면
북한의 한 개도를 꾸릴 수 있는 재정이 된다고 한다.(김철 가이드)
5호경계비
낯선 풍경 하나가 눈에 들어 온다.
앞 뒤로 2,3명이 한 조가 되어 한 사람을 태우고 씩씩거리면서 오르내리는 가마이다.
요금은 290위엔인가 350위엔인가 확실치는 않은데,
근래 들어 동북공정의 일환인지 중국 한족들이 부쩍 백두산을 찾는다고 한다.
계단을 다 내려설 때까지 하늘은 구름속에 갇혀있다.
이제 북파에서 서파로 백두산 외륜 종주를 마친 것이다.
그 기분은 종주의 기쁨보다는 가슴 한 켠에 아쉬움을 꼭꼭 숨겨 놓은 것 같다.
일행 또한 마찬가지로 악천후로 힘든 탓인지 표정들이 썩 밝지는 않다.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고도를 낮추어 내려가면서 햇빛이 들기 시작한다.
고도가 높은 백두산은 아직도 구름속이라고 자조를 해 본다.
서파산문으로 나가기 전에 금강대협곡으로 가는 차안에서는
카메라가 비에 젖어서 안된다는 소리가 가장 많이 들린다.
밧데리,메모리 분리하여 말리는 사이에 차는 금강대협곡에 도착한다.
산림 욕장 같은 곳을 5분여 걸어가니 시야가 뚫리는데 금강대협곡이다.
맞은 편은 북한 땅이라고 하는데 중국령이 용암이 훓고 지나간 흔적이 더 보기 좋다.
여기도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적용되는 것인지 안타깝다.
금강대협곡
매래치님은 카메라가 악천후에 고장이 나서 아주 많이 안타까운 모양이다.
편하게 구경을 하고 옥수수를 하나 갈비 뜯듯이 먹고 차에 올라 서파산문으로 이동한다
종주를 못하고 관광중인 일행을 기다리다 차 한대가 먼저 출발한다.
이도백하 72km로 우회전을 하니 고행의 비포장 도로가 이어지는데 3시간에서 3시간 반쯤
소요된다고 한다.
비포장 도로이긴 하지만 옛날 우리나라의 비포장도로에 비할 바가 아니다.
관리를 잘하여 요철이 심하지 않고 도로 가장자리로 보수용 흙 무더기를 두어 수시로
관리하는 듯 하다.
이 구간은 신설 비포장 도로이고 비가 많이 와서 인지 몰라도 두만강 유역의 비포장도로
보다는 노면이 고르지 못하다.
서파산문에서 이도백하간 비포장 도로
어제 점심을 먹었던 이도백하의 고려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데 처음이 아니라 그런지
반찬도 부실하고 맛도 덜하다.
식당 마당으로 나오니 가이드가 말한 암소 갈비가 숯불에 석쇠로 구워지는데
그 놈의 냄새가 우리도 십시일반해서 먹기로 했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후회를 하게 한다.
다시 버스를 타고 북파 산문 앞 숙소인 국제호텔로 이동한다.
키를 받아 들고 땀에 찌든 몸을 씻는데,보일러가 고장이 나버렸는지 신통치 않다.
맥주가 한잔 하고 싶어서 로비로 나오니 여성동무 세 명이 발마사지 하라고 영업을 하는데
샤워 관계로 기분이 상했는지 아무도 하지 않는다.
늦게 출발한 일행이 도착하고 뽁 사장님,매래치님과 같이 맥주 사러 갔다가
상점은 불이 꺼지고 없어 선술집 같은 곳으로 들어간다.
주인인 듯한 30말-40초반의 주인 여자와 점원 같지 않은 20대 여자 두 명이 있는데
종업원인지 도와주는 사람인지 도무지 분간이 어렵다.
여하간 3명 모두 한족이라 도무지 말도 통하지 않는다.
병 모양의 그림을 그려 얼마인지 물어보고 맥주 하나에 30위엔,꼬지 구이가 주메뉴인 듯 한데
북어(15위엔) 같은 놈을 두 마리 시킨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맥주를 시원한 맛에 먹지 않는 모양이다.
상온에 무단 방치된 맥주를 소주 잔 보다 좀 더 큰 잔에 부어 감질나게 먹는다.
일행중에 먼저 자리한 울산 님들이 여기는 위엔화만 받는다고 하여
탈탈 틀어보니 21위엔 뿐이다.
다행이 울산 분들이 위엔화를 가지고 있어 우리 돈하고 100위엔을 바꾼다.
꼬지 찍어 먹는 마른 가루 양념 같은 것을 갔다 주는데 공짜인 줄 알고 사람 수 대로
달라고 했더니 계산 할 때 보니 양념 하나에 15위엔이나 하였다.
총 계산은 120위엔
그 사람들은 바가지 씌워 기분 좋았을 것이고
우리도 나름대로 손짓 발짓 글자까지 동원하여 중국문화를 체험하니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 온돌방에 젖은 옷가지를 바닥에 널어 놓고 디카는 충전기에 연결하고
훌러덩 벗고 잔다.
***4일차(8/2)-이젠 관광이다!
악천후에도 무사히 백두산 종주를 마치고 잠을 편하게 잤는지 어제 저녁과는 달리
모두 들 기분이 좋아 보인다.
특이한 점은 지금 까지 먹은 중국 식당 전부 원형 식탁이다.
상의 크기에 따라 위에 회전판 유무의 차이는 있지만
그리고 개인 밥,국이 없다는 것이다.조그만 그릇에 덜어 먹는 형식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문화는 니꺼 내꺼 구분없이 많이 먹는 사람이 장땡이란 말인가?
포만감으로 버스를 타고 어제 보다는 노면 상태가 나은 비포장 도로를 달리기 시작하고
가이드가 오늘의 일정을 설명하는데 식당이 마땅치 않아 이른 점심을 먹는다고 한다.
볼록한 배를 내려다 본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생소한 야생화를 보고 있자니 ‘야 차 좀 세워봐’하는 말이
목구멍에서 새어 나올라고 한다.
자작나무
두만강 발원지에 도착한다.
드디어 야생화를 찍고 싶어 ‘야 차 좀 세워봐’
진짜로 세워준다.
내리자 마자 야생화를 찍기 시작한다.
주황색의 이름 모를 예쁜 꽃
금마타리,꿩의 다리,구절초 등등
산꼬리풀과 ?
?
모싯대
벌개미취
?
톱풀
난쟁이패랭이꽃
자주꽃방망이
?-산형과 식물은 어려워!
궁궁이
?
경계비를 지나고 드디어 두만강 발원지
건너편엔 앳된 북한군 병사 두 명이 지키고 있는데 촬영금지이다.
차안에서 되도록 말을 하지 말고 “옌벤에서 왔수다”라는 말까지 배우고 왔으나
왠걸 부산 사투리가 왁자지껄하다.
두만강을 따라 김일성 낚시터까지 이동한다.
양안에 국경수비대가 서로 지키고 있고 중국 쪽 수비대 농구 골대인지 배구 네트 기둥인지
검은색 옷을 입은 남자가 기둥에 땡볕을 받고 묶여 있다.
밀수범이란다.
어딜가나 밀수는 도 아니면 모인 모양이다.
야생화와 자작나무,전나무가 지천인 멋진 비포장도로를 달려 공무원수련원 같은 곳의 식당에서
진짜로 이른 점심을 먹는데 지금까지 먹은 식사중에 제일 좋았다.
식사중 내내 궁금했던 고기는 개의 고기로 밝혀졌다.
아주 산이 없을 것 같은 곳에서 고개를 하나 넘고 강폭이 넓어지면서
북한 마을이 보이고 커다란 선전 문구도 보인다.
그리고 도착한 곳이 고성리라고 적혀 있는데 정확한 지명은 모르겠다.
강 건너엔 트럭에서 작업이 한창이다.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강가로 내려가 사진도 찍고 두만강 물에 손도 적셔본다.
두만강 건너 북한 양강도 ?
중국 고성리
작업 중인 북한 인민
일부러 구멍가게에 가서 매래치님 담배도 사고 라이터도 사고 해본다.
가격이 참 착하다.
맥주는 상온에 방치되어 있어 참는다.
두만강을 따르다가 삼거리에서 두만강을 버리고 왼쪽으로 향하는데
비포장이긴 하지만 길이 좋아서 스르륵 잠이 든다.
잠깐의 단잠을 자고 눈을 떠보니 고개를 넘어 내려가고 있다.
그리고 나타나는 마을과 함께 포장도로로 들어선다.
용정 가기전의 화룡시내 외곽의 공중화장실 앞 도로
이름이 뭐더라?우리는 땡갈
용정까지 가는 중에 가이드로부터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전투가 벌어졌던 곳에 대하여 듣고,
해란강 일송정이 보이는 먼발치에 내려 기지개도 한번 펴고,퍽퍽한 참외도 먹어 본다.
해란강 다리를 건너 용정 대성중학에 들러 윤동주 시비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뭐라고 해야 하나 설명하는 사람의 말은 한귀로 흘려 보내고 나와 용정 시내를
혼자서 걸어본다.
용정 대성중학-윤동주 시비
대성중학 앞 용정시내
자자 이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곰 사육장으로 향한다.
이름이 뭐더라? 아마 곰낙원인가 그렇지 싶다.
내리자 마자 역한 냄새가 풍겨오는데 그래도 비교적 깨끗하게 관리하는 것으로 보인다.
1400두 인가 1500두인가 아시아 최대의 곰 사육 농장이라고 한다.
그리고 흰가운을 입은 이가 미끼인 녹색의 액체가 담긴 잔을 들고 다니며 권하는데
난 두잔이나 먹는다.
벌써 약효가 오는지 열이 확 난다.
“여보,마누라 이리와!”
독한 술에 타서 술기운이 오르는 모양이다.
충동구매!
니가 사면 나도 산다!
우리의 문화가 여실 없이 드러난다.
나도 샀다.
기대이상의 구매에 파는 사람도 즐겁고
무엇보다 우리 가이드 김철 친구의 입이 함지박 만해졌다.
연길에 도착하여 가이드 여친이 한다는 짝퉁집에 들러 살 사람은 사고
구경할 사람은 구경만 하고 나는 뭐가 뭔지 몰라 못 샀다.
연길 시내의 신호 시간을 나타내는 특이한 신호등
그리고 북한식당에 도착하여 까망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성 동무들의
일사불란한 음식 나르기 후에 우리가 맛있게 다 먹을 즈음에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한다.
예술대학인지 뭔지 하는 곳의 재원들이 기간을 정해서 중국의 북한식당에서 일을
한다고 하는데 자기 이득이 없어서인지 훈련된 앵무새처럼 표정 없이 재잘거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연길공항에 도착하여 심양 가는 비행기로 수속을 하는데 배낭을 보자고 한다.
아뿔싸!
맥가이버 칼을 소화물로 부치지 않았다.올 때는 그렇게 했는데 깜박 잊었다
지방 소도시라 그런지 파워가 있는 연길 상우여행사의 부장이 후미가이드 시켜서 짐으로 부쳐 준단다.
요금 2000원인가 2500원도 받지 않고 말이다.
연길공항에서
개찰을 하고 들어가니 한 분이 몸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서원효님이 응급조치를 하고 계시는데 백두산에서도 무릎이 좋지 않아 고생하신 분이다.
빨리 쾌차하시길 바란다.
심양공항에 도착하니 첫날 왔던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심양 시내 호텔로 이동하여
여장을 풀고 칭다오 맥주 한 캔 들이키고 잠을 청한다.
심양 야경
***5일차(8/3-마지막 날)-집으로
프론트하고 식당하고 의사전달이 안됐는지 급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공항으로 이동한다.
티켓팅하면서 바둑판 만든다는 피나무 꿀 때문에 다들 짐 보따리를 한번 씩 풀어보이는데
나 또한 열어야만 했다.
수속을 하고 호랑이 기름을 사고 비행기를 탄다.
왜 호랑이 기름인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진짜 호랑이 기름을 사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집에 와서 보니
안티푸라민 같은 약인 것 같다.
백두산을 가늠해 보지만 도저히 가늠해 볼 수가 없다.
북한쪽에 두꺼운 구름이 둘러쳐져 있고 그리고 개성으로 추정되는 곳,영종도 신공항,
한강 우리의 땅이 보인다.
영종도 신공항
승무원의 매끄럽지 못한 우리말로 곧 대구 공항이고 현재 기온은 33도 라고 한다.
드디어 현실로 돌아오는 느낌이다.
***다녀온 후
연일 계속되는 찜통 더위속에 토요일엔 백두대간,일요일엔 가족과 내원사 계곡으로 피서를 다녀온다.
지난 한 주 계속 쉰 셈이다.
그리고 한 주가 또 가는데 산행기라는 숙제를 하려고 하니 짬 내기가 만만치 않다.
에어컨 바람에 칼칼한 목을 녹차로 달래며 늦게나마 부실한 산행기를 올려본다.
백두산 산행 같이 하신 분들 모두다
혹서기에 건강 유념하시고 같이 한 백두산 산행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 입니다.
건강하고 행복하십시오!!!
본 내용에 나오는 지명과 시간,야생화 이름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큰 사진 원하시는 분은 메일 달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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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2006년 7월30일~8월3일(4박5일)
**누구랑:부산산정산악회랑(52명)
**개념도
**일정(우리나라 시각 기준/중국은 우리나라보다 1간 늦음)
***1일차(7/30-일)
07:30-부산 시민회관 집결
08:54-대구공항 도착 및 수속
11:50-대구공항 출발
13:40-중국 심양 공항 도착 및 입국수속
14:25-버스 탑승/청나라 청태종 무덤 북릉 이동
15:17-북릉 도착/관광
16:45-북릉 출발
17:13-식당 도착 및 저녁식사(중국 부페식)/식 후 상점 구경
19:25-심양공항 도착
20:50-표 시각(19:50)/지연출발/두번 회항
02:55-항공사 제공 호텔 도착
03:30-방 배정 숙소 도착
*2일차(7/31-월)
05:30-기상/식사
06:50?-심양공항 도착
09:23-탑승 수속
10:45-연길 공항 도착
11:53-연길 공항 출발
14:03-장백산 유람 관광 휴게소
15:51-이도백하 고려 식당 도착
16:53-식당 출발
17:18-북파 산문 입구 국제 호텔 도착
17:39-북파 산문 셔틀버스 탑승
18:05-장백산 온천지구도착
18:25-장백폭포 매표소 도착
18:35-19:00-장백 폭포 주변
19:15-장백산 온천 지구 도착
19:30-짚 차로 출발
19:42~50-흑풍구
20:02-천문봉 아래 주차장
20:07~17-천문봉
20:24-천문봉 산장
20:37-식사
22:20?-취침
*3일차
*4일차
*5일차
***가기전에
백두산!
민족의 영산,민족의 성산으로 불리고 생각하는 백두산은
나에게는 어릴적부터 노래를 통하여 자연스렂게 각인된 곳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애국가에도 나오고
그리고 주로 학교의 교가에도 예외없이 등장한다.
어릴 적 시골 초등학교의 교가엔 대표적인 점강법으로 나오는데 상기해 보면
‘아시아 동쪽에 삼천리 금수강산
백두산 정기 받은 지리산 밑에서
구비구비 흐르는 ….’
산에 다니면서부터 백두산은 산행,인생에서 꼭 가보아야 할 곳으로 대두하게 되어
기회를 엿보다 작년엔 신청을 못하고 올해는 이것저것 재지 않고 9살 딸과 함께 신청을 한다.
날짜가 다가올수록 딸이 아비의 주머니 사정을 헤아리는지 “안 가면 안돼요”하는 말의
횟수는 많아지고 간격은 짧아진다.
긴 시간을 걸어야 하는 것이 힘들 것이라 그러했겠지만,
경제적으로 부실한 아비는 결국 그 청을 받아들이고 만다.
***1일차(2006년 7월 30일)-40만원이나 벌었네?
있으면 편하고 없으면 불편할 것 같은 짐까지 챙기고 보니 배낭 하나와 여행용 가방이
제법 가득하다.
부산 직항 출발이 마땅치 않아 대구공항으로 이동하는데 시민회관에서 출발한 버스는
서울,울산,포항에서 합류하는 인원을 제하고도 45인승 버스엔 빈자리가 몇 없다.
대구공항에 도착하여 인원을 점검하고 48명을 4개조 로 나누어 2조 조장 자리를 맡았지만
일정 내내 별로 할 일 없는 자리였다.그 바람에 수월했지만..
기내에서 무뚝뚝하고 친절이라곤 눈꼽 만큼도 없는 싸가지 없는 공안요원 같은
남자 승무원에게 맛도 없는 기내식과 물 한잔 얻어 먹고 1시간 40여분만에 심양공항에 도착한다.
대구 공항에 비해 규모가 제법 큰데 인구 700만을 가진 중국 제 5의 도시라 한다.
2대의 차에 나누어 타고 누루하지의 8째 아들인 청태종의 무덤인 북릉막 가는데
산 하나 보이지 않는 만주 벌판에 거대한 건물들이 경쟁하듯이 들어서는데
현재 중국의 모습을 대변해 주는 듯 하다.
폭스바겐의 중국 합작기업에서 생산한 구닥다리 소형 택시와 값 비싼 신형 외제차,
간간히 보이는 우리나라 합작기업 차들이 공존하는 시내 도로를 지나
황토 빛이 도는 붉은 기와로 치장한 북능 입구에 도착한다.
넓은 땅덩어리를 자랑하듯 아주 넓은 면적으로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청나라 때 건물 들도 깨끗하게 아주 잘 보존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유적지와는 색감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 같다.
부실한 기내식 덕분에 이른 저녁을 먹으러 이동한다.
중국식 부페음식인데 그런대로 먹을 만하다. 부실한 에어컨만 아니었다면 좋았을 텐데…
이른 저녁 덕택에 비행기 시간이 남아 근처의 주로 외국인만 상대하는 것으로 보이는 무늬만 백화점으로
가보지만 물건이 비싸고 별로인지 점원들 입만 바쁘다.
나중엔 자기들도 영 아니다 싶은지 포기하는 듯 하다.
연길로 가는 국내선을 타기 위해 심양공항으로 가서 탑승수속을 하고 이륙을 한다.
그런데 이기 무신 일이고?
다시 심양으로 돌아간단다. 연길에 폭우가 쏟아진다나 어쩐다나!
공항에서 예정없이 기다리는데 무료하다.
이른 저녁 덕택에 배가 고프기도 하여 어슬렁 거리다가 스낵바 같은 곳에서 신라면을 판다.
이거 얼마요?
말이 통할리가 있나? 글자가 최고지!
그런데 이 인간들이 한국 돈 알기를 알 사탕이나 하나 사먹을 가치 밖에 없는 걸로 아는지 아니면 무조건 바가지를 씌우려고 하는 건지 환율에 의한 계산이 엄청 다르다.
만원이란다. 15위엔 인가 20위엔(2,600원) 짜리가.
그래서 포기하고 게이트 앞 대기석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보이는 대장님 얼굴!
‘대장님 위엔 좀 있습니까? 라면 먹을라고 하니…”
‘갑시다! 제가 사드릴께요!’ 빌릴라고 했다가 횡재하였다.
라면을 먹고 나니 목이 마르다.
중국 땅 어디든지 물을 아주 귀하게 여겨서인지 물 인심이 아주 야박하다.
공항 어디에도 정수기 하나 생수통 하나 없다.
화장실의 수돗물을 그대로 먹으라고 하는지…
매래치님은 세면대의 물을 먹었단다.
기약없는 기다림 끝에 연길 날씨가 좋아졌나 보다.
다시 탑승하라고 한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많은 시간을 비행하길래 착륙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두어번의 마땅치 않은 시도 끝에 다시 돌아간다고 한다.
우째 이런 일이!!
아! 고민 되네!!
대각선 방향 얼굴은 고삐리 정도 밖에 안 보이나 차림은 돈 꽤나 있는 여대생으로 보이는
조선족 아가씨에게 심양-연길 편도에 얼마입니까 물으니 우리 돈으로 10만원쯤 한다고 한다.
1시간 거리에 10만원이라니 우리나라 보다 비행기 삯은 더 비싸구만!
“그라모 우리는 두번이나 왔다 갔다 했으니 40만원이나 벌인거네”
다시 공항에 착륙하여 기다리니 짐 싸란다. 근처 호텔에서 재워준단다.
그라모 40만원 보다 더 많이…
**2일 째(2006년 7월31일-월)-백두산 천지를 보다!!
2시간도 채 못자고 일어나 항공사 호텔에서 제공하는 부실한 식사를 마치고 공항으로 이동한다.
7시간30분 첫 비행기로 보내준다더니 이놈의 뗏놈의 쉐이들이
대도시로 가는 비행기들 다 보내주고 나서야 탑승하란다.
이런 시간 개념없는 쉐이들 때문에 백두산 천지 보는 시간이 줄어들게 되어
늦은 시간에 짧은 시간 동안 천지를 보게 되어 욕이 절로 나온다.
우여곡절 끝에 연길공항에 도착하니 돌쇠네 가족까지 합류하여 52명의 대 인원을 태울 두 대의 버스와
가이드 3명과 가이드 보조 2명이 반갑게 맞아준다.
연길공항 주차장은 어제 비가 온 게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햇볕이 내리 쬔다.
한 부부가 늦게 오시는데 화물로 부친 짐중에서 선글라스와 핸드폰이 없어졌다고 한다.
잠금 장치를 하지 않은 가방에 넣어 두었다고 한다.
아직까지는 중국이란 나라에서 잠금장치를 하지 않은 물건은 내 물건이 아니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여권을 비롯한 귀중품은 꼭 휴대하고 화물은 매매 잠가야 하는기라.
공항을 빠져 나와 촌길을 달리는데 사방으로 옥수수밭이 끝 간데 펼쳐지고 붉은 기와로 치장한 마을들이
그 사이를 비집고 자리하고 있다.
멀리서도 조선족 집 인 것을 알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은
먼저 백의민족의 후예답게 건물벽을 주로 횟가루 등을 칠하여 흰색이고,
둘째, 머이더라?
드디어 산이 보이고,편도 1차선의 구불한 고갯길을 개념없이 무모하게 앞지르기를 하는데
우리나라의 통행량 정도 되었다면 여러 번 사고가 났을 것이다.
조선족이 운영하는 휴게소,말이 휴게소이지 볼일을 볼 수 있는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상점이라고
보는 것이 맞지 싶다.
장뇌산삼,산삼,인삼,버섯 흥정을 해보지만 잘 팔리지 않고 옥수수,오이만 불이 난다.
차를 타고 떠나려는 손님에게 가격 후려치기로 응수해보지만 백두산이라는 거사를 앞둔 일행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다 짐이기 대문이다.
내 그럴 줄 알았다.
맞은편에서 무리하게 차 앞을 가로질러 마을로 들어가는 자전거를 피한다고 차는 급정거를 하고
접촉은 없었던 것 같은데 자전거를 몰던 아줌마도 갑자기 내빼다 동네 입구 작은 시멘트 다리에
널부러져 원망의 눈초리와 함께 무릎을 주물럭거린다.
난 한국의 정서에 길들여진 사람이라 이거 시간 좀 걸리겠는데 하는 생각도 잠시 뿐
기사는 차문을 열고 나가더니 욕 한 바가지 퍼붓고는 태연하게 차를 몰고 간다.
다시 길은 더 넓은 초원 같은 고원을 가로질러
미인송 군락지를 지나고 거대한 목재소를 지나고 이도백하에 도착한다.
고려식당 간판을 붙인 조선족 식당에서 밥다운 밥을 먹어본다. 들쭉 술과 함께.
옥수수밭
미인송
차는 장백산 북파산문을 향하여 달린다.
예전에 관광버스가 그대로 온천지구까지 갔다고 하는데 지금은 산문에서 내려서 셔틀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북파산문 입구
셔틀버스 안
차를 타고 오르는데 차 오른족 한켠으로 무지개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더니 탄성과 함께 백두산이
모습을 드러내고 장백폭포도 보인다. 주체할 수 없는 흥분과 함께 몸도 날뛰는 기분이 된다.
인당 만오천이나(?) 하는 온천은 하지 않고 장백폭포로 오른다.
입구에서 돌쇠 가족을 만나고 흰자는 안 익고 노른자만 익는다는 온천물에 담근 계란을 얻어 먹고
폭포 매표소에서 위엔을 탈탈 털어 지불하고 눈은 폭포로 고정한 채 점심 때 먹은 들쭉 술이 올라 올 정도로
부리나케 올라간다.
쏴아아~~
아니 콰아아 쿠우우 하는 소리와 함께 마음을 가라 앉힐 새가 없다.
이리 찍고,저리 찍고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이쁘고 앙다무진 은희 가이드가 내려가자고 재촉한다.
내려가기 싫은데…
온천 입구 도로에서 온천물이 새어 나오는데 손이 데일 정도로 뜨겁다.
그나마 이렇게 한 것이 온천욕을 하지 못한 나름대로의 온천 手욕이 되었다.
빽 좋은 김철 가이드 덕분에 영업 마친 짚차를 10여대 부러 나누어 타고 천문봉으로 오른다.
차는 미쯔비시 파제로의 중국산 모델이다.
우리나라에서 갤로퍼로 명성을 누리다 이 곳 중국에서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영업시간 중이라면 어림없다는 흑풍구에 들러 분주히 발아래 있는 장백폭포를 향해 연신 셔터를
눌러 댄 후 천문봉을 향해 다시 오르는데 어두어진다.
흑풍구에서 바라 본 장백폭포
차에서 내리자 마자 마음은 쏜살같이 오르지만 심장이 터질 것 같다고 몸이 천천히 가자고 한다.
해는 지고 마지막 남아있는 노을 빛에 의지해 천지를 내려다 보는 순간
-동해물과 백두산이 하면서 나오는 천지의 모습을 내가 보다니- 감동이 밀려온다.
중국령-오른쪽 앞 백운봉,가운데 청석봉
왼쪽 북한령-가운데 장군봉
조그만 더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또 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심양에서 2시간이나 지연 출발하지 않았다면 구름 한 점 없는 천지를 두시간이나 볼 수 있었을텐데!
저런 개노무쉐이들!!!
아쉬운 발길을 뒤로 하고 산장으로 향한다.
방 배정을 받고 우리나라의 산장처럼 생각하고 도시락이나 주겠지 하는데 음식들이 올라오기 시작하는데
배부르게 정말 잘 먹었다.
시원소주도 한 병 꺼내 밥맛과 기분을 돋우고,몇몇은 산장 밖으로 나와 별빛을 안주 삼아 한 잔 씩 더한다.
천문봉 산장
대장님 전화를 빌려 딸과 와이프에게 별들이 총총거린다고 하였는데….
**3일차(8/1)-천지 신명이시여!!
기상 소리 전에 산소부족으로 숨이 막혀서 인지 잠을 깨었다.
멋진 날씨를 기대하며 밖으로 나가 보니 강풍과 함께 구름이 잔뜩 끼워 있다.
볼일을 본 후 다시 잠을 청해보지만 코 고는 소리에 뒤척이다 기상소리와 함께
특유의 몸에 밴 습관인 느릿느릿 챙기니 복도에서 비가 온다느니 바람이 강하게
분다느니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체감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 바람과 비를 맞아 본다.
이거 장난이 아닌데.
이곳 백두산은 하루에도 일기 변화가 무상하니 점차 좋아지길 기대해본다.
다시 들어와서 거금 3000원을 주고 상하 비닐우의를 산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산장 앞에서 전부 나가 인원 점검를 하는데
바가지 쓴 비닐 우의 덕분에 기분이 좋아진다.
너무 부실해 잘 견디어 줄지 의문이지만.
그렇게 출발을 하는데 10미터 앞도 분간이 안되어 거리를 주지 않으면서
전부 같이 움직인다.
불순한 일기 때문에 교수님 부부는 되돌아 간다.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돌부리를 잡지 않으면 날아갈 정도이다.
앞으로의 험난한 산행을 예고해 주는 듯하다.
야생화들이 지천에 있지만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았고
야생화 또한 비바람에 심하게 나부대는지라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그렇게 천문봉 에돌아 가다가 달문이 내려다 보이는 급경사의 길을 내려가며 일부러
천지의 개벽을 기다리며 천천히 내려서는데,일순간 천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천지가 보인다” 소리를 지르고 가슴은 심하게 요동을 치고 디카를 꺼내 내리는 비는
안중에도 없이 막 찍어 본다.
구름이 밀려나고 들어오길 몇 차례 거듭하고 난 후 달문에 내려서서
임시 방편으로 놓여진 징검다리를 껑충껑충 뛰어 넘는다.
아마 누군가는 물에 빠져 신발이 젖었을 것이다.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나중에 폭우에 가까운 소나기로 인해 일행 모두 다 젖었지만…
이제 천지 물가로 부리나케 가는데 우의 하의가 나불거려 보니 찢어져 있다.
밑단을 묶어서 바람을 막았더라면 좀 더 견디어 주었을 텐데라는 생각도 잠시
다리는 계속해서 천지로 가고 있다.
증명사진 남긴다는 생각에- 비오는 궂은 날씨로 인해서인지- 천지에 손 담그는 일을 그만 잊어 먹고
아침이 준비된 서너동 되는 천막중에 뒤켠의 천막으로 들어간다.
중국엔 젓가락 질을 잘 못하는지 1회용 플라스틱 포크가 내장된 컵라면(신라면)과,
부실해 보이는 도시락을 받아 열어보고 ‘이기 머이고’하면서 한마디 씩 거든다.
나야 도시락 부실하다는 말은 이미 들었고 그리고 라면을 좋아하는지라 국물까지 다 먹었지만
아침에 라면이 내키지 않은 이도 있었을 것이다.
도시락 보다 라면이 비싸다고 한다.
다시 인원점검을 하고 이제부터 진짜 산행을 하게 된다.
너덜 방벽(옹벽)이 있는 곳에서 길은 장백 폭포와 방벽 안 너덜 길을 따르다
용문봉 급경사 길을 치고 올라야 하는 길로 나뉜다.
여기서 돌쇠가족,이쁜님 등이 대장님과 오랫동안 상의 후에 장백폭포 쪽으로 탈출을 한다.
작은 돌쇠가 나중에 닥칠 악천후를 예상했나 보다.
산소 부족인지 시덥잖은 심장을 가져서인지 급경사 오름 길이 상당히 힘이 든다.
기를 쓰며 올라서니 눈 앞엔 구릉이 펼쳐지고 발 아래엔 구름이 집산을 반복하는 협곡 사이로
달문에서 폭포로 향하는 천지물,승사하가 장관을 연출해 준다.
내려다 본 승사하
그렇게 마음이 붕 더 있는 상태로 조금 더 가니 오른편 옥벽폭포 쪽으로 구름이 일거에 걷히면서
모습을 드러내는데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쭈욱 됐으면 열망해 보지만.
이걸로 끝이다.ㅠ ㅠ
비와 구름이 공존하는 길은 녹명봉,백운봉 아래 까지 이어진다.
오호 통재라!!
속된 말로 아까비!!
구름속이라 야생화만 찍어댄다.
가지돌꽃
바위구절초
나도개미자리
흰두메양귀비
호범꼬리
가지돌꽃 / 가솔송(분홍색)
백운봉을 우회하며 고산화원쪽으로 내려서는데 홍길동이 나타나 일진광풍을 불었는지
발 아래 송강하 쪽이 열리면서 신비로운 광경을 보여준다.
자자 여기서부터 희희낙낙이다.기대하시라.
수목생장한계선 위라 티끌(수목) 하나 없는 야생화 천지이라 일행 저마다 바쁘다.
하늘매발톱 보고
화살곰취 보고
산오이풀 보고
호범꼬리 보고
사진 찍는다고
사진 찍힌다고
물 뜬다고
난 촐싹거리다가 넘어져 피 보고
그래도 좋다.
하늘매발톱꽃
화살곰취
바위구절초
두메분취와 등대시호
구름국화
오랑캐장구채
호범꼬리
큰오이풀
비로용담
박새
고산화원아래 송강하 계곡
바위구절초와 껄껄이풀
고도를 한 참이나 낮추어 계곡에서 점심을 먹는다.
아름다운 풍경에 배가 불러서 인지 맛이 없어서 인지 이내 도시락을 닫고 만다.
그리고 어딜가나 나의 주특기인 영역 표시를 하러 간다.
일행 중에 흔적을 남겨둔 이는 나뿐이 아닌가 한다.
배낭을 훌쳐 메고 가뿐 숨을 내쉬면서 오르는데 비가 후두둑 하는데
지금가지 비가 온 상황하고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그러더니 하늘이 구멍 난 듯이 쏟아진다.
고도를 높일수록 바람이 몸덩이를 날릴듯한 기세로 소나기를 실어 불어대는데
천만 다행으로 바람은 머리 뒤로 불어 얼굴이 쥐어 터지는 일은 없다.
오히려 등줄기를 타타닥하고 때리는 소리와 안마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더 좋다.
어차피 천지를 보여주지 않을 바엔 이런 경험의 기억이 더 오래 갈 것이다.
우리와 역으로 진행하는(서파-북파) 사람들이 측은하게 느껴진다.
어린 아이도 있었는데…
그렇게 청석봉을 지날 즈음 비는 잦아들었지만 바람만은 여전히 천지 절벽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기세로 불어대 정상등로와 거리를 두면서 손이 발이 되어 걸어간다.
이제 천지 조망은 체념하고 빨리 산행이나 마쳤으면 하는 생각 한켠에
청석봉을 지나고 마천우에서 마지막 미련을 가져 보지만 하늘은 열리지 않는다.
이런 우라질 놈의 날씨가 단 한번에 천지를 볼 수 있는 요행수를 허락하지 않는다.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어 어제 해거름에 천지를 10여분 보았더라도
오늘도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푸르디 푸른 천지를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건만
그리고 끝간데가 어딘지 모를 초원과 만주 벌판을 더 보고 싶었는데…
이젠 그 꿈을 접어야 한다.
마천우를 내려서서 5호경계비를 향해 좌로 크게 꺽이는 지점에서 후미를 제법 오래토록 기다린다.
키는 작지만 옹골차고 능력있는 김철 선두 가이드가 5호경계비를 거치지 않고 가는 지름길이
있다고 하여 그리로 가자고 하는 의견이 우세한 가운데 나는 무슨 소리하느냐 예정대로
5호경계비로 가길 주장한다.
그리고 날아드는 대장님 무전 소리
“5호경계비로 해서 계단 타고 내려가자”
30분쯤 더 걸린다는 말은 아마도 뻥!
10여분만에 5호 경계비에 도착하여 북한령을 들락날락 해본다.
백두산을 찾는 인원의 대다수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북한을 통해서 백두산을 찾을 수 있다면
북한의 한 개도를 꾸릴 수 있는 재정이 된다고 한다.(김철 가이드)
5호경계비
낯선 풍경 하나가 눈에 들어 온다.
앞 뒤로 2,3명이 한 조가 되어 한 사람을 태우고 씩씩거리면서 오르내리는 가마이다.
요금은 290위엔인가 350위엔인가 확실치는 않은데,
근래 들어 동북공정의 일환인지 중국 한족들이 부쩍 백두산을 찾는다고 한다.
계단을 다 내려설 때까지 하늘은 구름속에 갇혀있다.
이제 북파에서 서파로 백두산 외륜 종주를 마친 것이다.
그 기분은 종주의 기쁨보다는 가슴 한 켠에 아쉬움을 꼭꼭 숨겨 놓은 것 같다.
일행 또한 마찬가지로 악천후로 힘든 탓인지 표정들이 썩 밝지는 않다.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고도를 낮추어 내려가면서 햇빛이 들기 시작한다.
고도가 높은 백두산은 아직도 구름속이라고 자조를 해 본다.
서파산문으로 나가기 전에 금강대협곡으로 가는 차안에서는
카메라가 비에 젖어서 안된다는 소리가 가장 많이 들린다.
밧데리,메모리 분리하여 말리는 사이에 차는 금강대협곡에 도착한다.
산림 욕장 같은 곳을 5분여 걸어가니 시야가 뚫리는데 금강대협곡이다.
맞은 편은 북한 땅이라고 하는데 중국령이 용암이 훓고 지나간 흔적이 더 보기 좋다.
여기도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적용되는 것인지 안타깝다.
금강대협곡
매래치님은 카메라가 악천후에 고장이 나서 아주 많이 안타까운 모양이다.
편하게 구경을 하고 옥수수를 하나 갈비 뜯듯이 먹고 차에 올라 서파산문으로 이동한다
종주를 못하고 관광중인 일행을 기다리다 차 한대가 먼저 출발한다.
이도백하 72km로 우회전을 하니 고행의 비포장 도로가 이어지는데 3시간에서 3시간 반쯤
소요된다고 한다.
비포장 도로이긴 하지만 옛날 우리나라의 비포장도로에 비할 바가 아니다.
관리를 잘하여 요철이 심하지 않고 도로 가장자리로 보수용 흙 무더기를 두어 수시로
관리하는 듯 하다.
이 구간은 신설 비포장 도로이고 비가 많이 와서 인지 몰라도 두만강 유역의 비포장도로
보다는 노면이 고르지 못하다.
서파산문에서 이도백하간 비포장 도로
어제 점심을 먹었던 이도백하의 고려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데 처음이 아니라 그런지
반찬도 부실하고 맛도 덜하다.
식당 마당으로 나오니 가이드가 말한 암소 갈비가 숯불에 석쇠로 구워지는데
그 놈의 냄새가 우리도 십시일반해서 먹기로 했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후회를 하게 한다.
다시 버스를 타고 북파 산문 앞 숙소인 국제호텔로 이동한다.
키를 받아 들고 땀에 찌든 몸을 씻는데,보일러가 고장이 나버렸는지 신통치 않다.
맥주가 한잔 하고 싶어서 로비로 나오니 여성동무 세 명이 발마사지 하라고 영업을 하는데
샤워 관계로 기분이 상했는지 아무도 하지 않는다.
늦게 출발한 일행이 도착하고 뽁 사장님,매래치님과 같이 맥주 사러 갔다가
상점은 불이 꺼지고 없어 선술집 같은 곳으로 들어간다.
주인인 듯한 30말-40초반의 주인 여자와 점원 같지 않은 20대 여자 두 명이 있는데
종업원인지 도와주는 사람인지 도무지 분간이 어렵다.
여하간 3명 모두 한족이라 도무지 말도 통하지 않는다.
병 모양의 그림을 그려 얼마인지 물어보고 맥주 하나에 30위엔,꼬지 구이가 주메뉴인 듯 한데
북어(15위엔) 같은 놈을 두 마리 시킨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맥주를 시원한 맛에 먹지 않는 모양이다.
상온에 무단 방치된 맥주를 소주 잔 보다 좀 더 큰 잔에 부어 감질나게 먹는다.
일행중에 먼저 자리한 울산 님들이 여기는 위엔화만 받는다고 하여
탈탈 틀어보니 21위엔 뿐이다.
다행이 울산 분들이 위엔화를 가지고 있어 우리 돈하고 100위엔을 바꾼다.
꼬지 찍어 먹는 마른 가루 양념 같은 것을 갔다 주는데 공짜인 줄 알고 사람 수 대로
달라고 했더니 계산 할 때 보니 양념 하나에 15위엔이나 하였다.
총 계산은 120위엔
그 사람들은 바가지 씌워 기분 좋았을 것이고
우리도 나름대로 손짓 발짓 글자까지 동원하여 중국문화를 체험하니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 온돌방에 젖은 옷가지를 바닥에 널어 놓고 디카는 충전기에 연결하고
훌러덩 벗고 잔다.
***4일차(8/2)-이젠 관광이다!
악천후에도 무사히 백두산 종주를 마치고 잠을 편하게 잤는지 어제 저녁과는 달리
모두 들 기분이 좋아 보인다.
특이한 점은 지금 까지 먹은 중국 식당 전부 원형 식탁이다.
상의 크기에 따라 위에 회전판 유무의 차이는 있지만
그리고 개인 밥,국이 없다는 것이다.조그만 그릇에 덜어 먹는 형식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문화는 니꺼 내꺼 구분없이 많이 먹는 사람이 장땡이란 말인가?
포만감으로 버스를 타고 어제 보다는 노면 상태가 나은 비포장 도로를 달리기 시작하고
가이드가 오늘의 일정을 설명하는데 식당이 마땅치 않아 이른 점심을 먹는다고 한다.
볼록한 배를 내려다 본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생소한 야생화를 보고 있자니 ‘야 차 좀 세워봐’하는 말이
목구멍에서 새어 나올라고 한다.
자작나무
두만강 발원지에 도착한다.
드디어 야생화를 찍고 싶어 ‘야 차 좀 세워봐’
진짜로 세워준다.
내리자 마자 야생화를 찍기 시작한다.
주황색의 이름 모를 예쁜 꽃
금마타리,꿩의 다리,구절초 등등
산꼬리풀과 ?
?
모싯대
벌개미취
?
톱풀
난쟁이패랭이꽃
자주꽃방망이
?-산형과 식물은 어려워!
궁궁이
?
경계비를 지나고 드디어 두만강 발원지
건너편엔 앳된 북한군 병사 두 명이 지키고 있는데 촬영금지이다.
차안에서 되도록 말을 하지 말고 “옌벤에서 왔수다”라는 말까지 배우고 왔으나
왠걸 부산 사투리가 왁자지껄하다.
두만강을 따라 김일성 낚시터까지 이동한다.
양안에 국경수비대가 서로 지키고 있고 중국 쪽 수비대 농구 골대인지 배구 네트 기둥인지
검은색 옷을 입은 남자가 기둥에 땡볕을 받고 묶여 있다.
밀수범이란다.
어딜가나 밀수는 도 아니면 모인 모양이다.
야생화와 자작나무,전나무가 지천인 멋진 비포장도로를 달려 공무원수련원 같은 곳의 식당에서
진짜로 이른 점심을 먹는데 지금까지 먹은 식사중에 제일 좋았다.
식사중 내내 궁금했던 고기는 개의 고기로 밝혀졌다.
아주 산이 없을 것 같은 곳에서 고개를 하나 넘고 강폭이 넓어지면서
북한 마을이 보이고 커다란 선전 문구도 보인다.
그리고 도착한 곳이 고성리라고 적혀 있는데 정확한 지명은 모르겠다.
강 건너엔 트럭에서 작업이 한창이다.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강가로 내려가 사진도 찍고 두만강 물에 손도 적셔본다.
두만강 건너 북한 양강도 ?
중국 고성리
작업 중인 북한 인민
일부러 구멍가게에 가서 매래치님 담배도 사고 라이터도 사고 해본다.
가격이 참 착하다.
맥주는 상온에 방치되어 있어 참는다.
두만강을 따르다가 삼거리에서 두만강을 버리고 왼쪽으로 향하는데
비포장이긴 하지만 길이 좋아서 스르륵 잠이 든다.
잠깐의 단잠을 자고 눈을 떠보니 고개를 넘어 내려가고 있다.
그리고 나타나는 마을과 함께 포장도로로 들어선다.
용정 가기전의 화룡시내 외곽의 공중화장실 앞 도로
이름이 뭐더라?우리는 땡갈
용정까지 가는 중에 가이드로부터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전투가 벌어졌던 곳에 대하여 듣고,
해란강 일송정이 보이는 먼발치에 내려 기지개도 한번 펴고,퍽퍽한 참외도 먹어 본다.
해란강 다리를 건너 용정 대성중학에 들러 윤동주 시비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뭐라고 해야 하나 설명하는 사람의 말은 한귀로 흘려 보내고 나와 용정 시내를
혼자서 걸어본다.
용정 대성중학-윤동주 시비
대성중학 앞 용정시내
자자 이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곰 사육장으로 향한다.
이름이 뭐더라? 아마 곰낙원인가 그렇지 싶다.
내리자 마자 역한 냄새가 풍겨오는데 그래도 비교적 깨끗하게 관리하는 것으로 보인다.
1400두 인가 1500두인가 아시아 최대의 곰 사육 농장이라고 한다.
그리고 흰가운을 입은 이가 미끼인 녹색의 액체가 담긴 잔을 들고 다니며 권하는데
난 두잔이나 먹는다.
벌써 약효가 오는지 열이 확 난다.
“여보,마누라 이리와!”
독한 술에 타서 술기운이 오르는 모양이다.
충동구매!
니가 사면 나도 산다!
우리의 문화가 여실 없이 드러난다.
나도 샀다.
기대이상의 구매에 파는 사람도 즐겁고
무엇보다 우리 가이드 김철 친구의 입이 함지박 만해졌다.
연길에 도착하여 가이드 여친이 한다는 짝퉁집에 들러 살 사람은 사고
구경할 사람은 구경만 하고 나는 뭐가 뭔지 몰라 못 샀다.
연길 시내의 신호 시간을 나타내는 특이한 신호등
그리고 북한식당에 도착하여 까망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은 북한 여성 동무들의
일사불란한 음식 나르기 후에 우리가 맛있게 다 먹을 즈음에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한다.
예술대학인지 뭔지 하는 곳의 재원들이 기간을 정해서 중국의 북한식당에서 일을
한다고 하는데 자기 이득이 없어서인지 훈련된 앵무새처럼 표정 없이 재잘거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연길공항에 도착하여 심양 가는 비행기로 수속을 하는데 배낭을 보자고 한다.
아뿔싸!
맥가이버 칼을 소화물로 부치지 않았다.올 때는 그렇게 했는데 깜박 잊었다
지방 소도시라 그런지 파워가 있는 연길 상우여행사의 부장이 후미가이드 시켜서 짐으로 부쳐 준단다.
요금 2000원인가 2500원도 받지 않고 말이다.
연길공항에서
개찰을 하고 들어가니 한 분이 몸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서원효님이 응급조치를 하고 계시는데 백두산에서도 무릎이 좋지 않아 고생하신 분이다.
빨리 쾌차하시길 바란다.
심양공항에 도착하니 첫날 왔던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심양 시내 호텔로 이동하여
여장을 풀고 칭다오 맥주 한 캔 들이키고 잠을 청한다.
심양 야경
***5일차(8/3-마지막 날)-집으로
프론트하고 식당하고 의사전달이 안됐는지 급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공항으로 이동한다.
티켓팅하면서 바둑판 만든다는 피나무 꿀 때문에 다들 짐 보따리를 한번 씩 풀어보이는데
나 또한 열어야만 했다.
수속을 하고 호랑이 기름을 사고 비행기를 탄다.
왜 호랑이 기름인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진짜 호랑이 기름을 사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집에 와서 보니
안티푸라민 같은 약인 것 같다.
백두산을 가늠해 보지만 도저히 가늠해 볼 수가 없다.
북한쪽에 두꺼운 구름이 둘러쳐져 있고 그리고 개성으로 추정되는 곳,영종도 신공항,
한강 우리의 땅이 보인다.
영종도 신공항
승무원의 매끄럽지 못한 우리말로 곧 대구 공항이고 현재 기온은 33도 라고 한다.
드디어 현실로 돌아오는 느낌이다.
***다녀온 후
연일 계속되는 찜통 더위속에 토요일엔 백두대간,일요일엔 가족과 내원사 계곡으로 피서를 다녀온다.
지난 한 주 계속 쉰 셈이다.
그리고 한 주가 또 가는데 산행기라는 숙제를 하려고 하니 짬 내기가 만만치 않다.
에어컨 바람에 칼칼한 목을 녹차로 달래며 늦게나마 부실한 산행기를 올려본다.
백두산 산행 같이 하신 분들 모두다
혹서기에 건강 유념하시고 같이 한 백두산 산행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 입니다.
건강하고 행복하십시오!!!
본 내용에 나오는 지명과 시간,야생화 이름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큰 사진 원하시는 분은 메일 달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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