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위 90도 … 여기는 남극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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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남위 90도 남극점. 더 이상 갈 곳이 없습니다."
체감온도 영하 50도, 초속 34m의 블리자드(남극에서 부는 강한 바람)를 뚫고 1천km가 넘는 설원을 걷고 또 걸었다.
극한과의 싸움. '강철 산악인' 박영석 대장이 이끄는 남극원정대의 남극 정복 44일은 매순간이 지옥의 상황이었다. 1백50㎏짜리 썰매를 끌고 초콜릿바로 점심을 때우면서 매일 12시간씩 강행한 대장정은 13일 오전 11시(한국시간)에 끝났다.
박대장과 이치상(통신 담당)·강철원(행정)·오희준(식량)·이현조(장비)씨. 이들은 남극점을 밟는 순간 동상과 추위에 시달려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그러나 누나탁(작은 바위산)에서 굴러떨어지는 돌덩이들도, 남극의 사신(死神) 화이트아웃(사방이 모두 하얗게 되어 방향감각을 잃어버리는 상태)도 이 다섯명의 철인을 막지는 못했다.
지난해 11월 30일 남극대륙 허큘리스해안을 출발한 원정대의 당초 남극점 도달 예정일은 오는 25일이었다. 그러나 강인하고 끈끈한 정신력과 팀워크는 일정을 열흘 이상 앞당겼다.
박대장은 남극점을 밟은 뒤 위성전화를 통해 "대한민국의 위상을 세계에 알린 기록을 세워 가슴이 벅차다"고 국내 언론에 소감을 밝혔다. "우리의 원정 성공이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희망이 됐으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이번 기록은 남극점 무지원 탐험(장비 및 식량의 중간보급 없이 도보와 스키만으로 이동하는 것) 최단 기록으로 인정받는 절차를 남겨놓고 있다. 지난 11일 영국의 여성산악인 피오나 손윌(37)이 42일 만에 남극점에 도달했다는 외신보도(본지 1월 13일자 26면)가 있었지만 손윌은 한국인 원정대와 함께 허큘리스해안에 도착한 뒤 다시 경비행기로 30㎞ 대륙 안쪽으로 이동해 원정을 시작했다는 게 대원들의 말이다. 이전까지의 최단 기록은 1999년 12월 팀 자르비스(영국) 2인조가 세운 48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