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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산들이 신록으로 뒤덮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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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산들이 신록으로 뒤덮였다.


설악산 지리산 등 한국 모든 산의 5월은 초록의 절정을 이루었다. 손바닥보다 작은 잎새들이 세상을 변화시켰다. 한국사회는 현재 모든 분야의 변혁을 요구한다. 70년대식 개발논리의 플레토(고원) 증상을 보이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시점에 들어선 한국사회는 낡은 이데올로기의 반복된 진자운동으로 체제피곤을 느끼고 있다. 계층간 갈등구조의 악순환,과잉된 욕구 분출에 의한 사회 분열,빈부격차의 마천루 현상에 대한 환멸심리가 변혁을 요구하는 동기가 됐다. 나는 사회변혁의 한 방법을 이 나라 산들이 신록의 옷을 차려입는 5월에서 찾아본다.

낡은 방법 같지만 나 자신부터, 작은 것부터, 오늘부터 변화시켜야 한다. 가죽의 털과 기름을 빼고 무두질하는 개혁성보다 자연의 변화에서 얻는 지혜로운 변혁성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건 그것이 일시적 변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변혁엔 비록 희생과 양보가 필요하더라도 직선형보다는 S자형의 부드러운 드라이브가 필요하다. 한쪽을 따돌리는 희생으로 다른 쪽을 살찌우는 편향 논리보다는 같이 고통을 나누는 품이 참된 변혁의 길이다. 인성과 자연의 법칙성에 반하는 변혁은 공고하지 못하다. 우선 변혁에 있어서 경계할 것은 시간에 대한 경쟁의 위험성이다. 단시간에 고속으로 한 세력이 뭔가를 이루겠다는 권력형 주인공의 욕망은 어디서나 금물이다.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는 것은 부실하며 문제를 노정하게 마련이다. 생략하거나 헐값으로 치거나 시간을 이기려 하지말고 찬찬히 부드럽게 변화를 이끌어내는 연금술적 방법을 나무들의 지혜에서 찾아보자. 봄이 산뜻한 것은 겨울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깊은 사색과 설계에서 5월이 왔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변혁의 내용은 소외된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옳다.

아전인수격 정치,선동적 운동,대중추수주의로는 참된 변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물론 개법을 통한 변혁의 근거를 마련해야 함은 지당하지만 만가지 삶의 질을 변화시키려는 시행의 발단,과정이 더 중요하다. 이상실현에 대한 주객체의 동질성이 합의됐는가 하는 것이 변혁 성패의 관건이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을 바로 안다는 것이 곧 남을 바로 본다는 것이라면 그 완성은 곧 삶의 변혁을 꿈꾸는 사회의 목표이기도 하다. 따라서 자연에서 배워온 변혁의 방법은 부드러워야 하며 사회 구성원들의 자기결정력을 강화해야 한다. 나뭇잎들이 뭉게구름을 일으키는 온 산에서 세찬 녹색의 외침이 들린다. 버스에서 서울의 신록을 쳐다보고 기뻐하며 나는 나에게 아직 저 나무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다고 말한다. 해마다 한강변 마포의 느티나무를 봐왔다. 그 느티나무가 보여주는 5월의 지혜는 아름답다. 수많은 나뭇가지들이 우람하게 하늘에 타원형을 펼친 모습은 부채를 펼치고 있는 힘찬 형세다. 느티나무는 풍상을 겪고 한곳에 직립해 있으면서도 그 품성은 늙지 않았다.

새파란 잎들을 뿜어내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 나는 처음에 새순이 눈을 뜨면서 나무 밖의 세상으로 비집고 나오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쉬지 않고 조금씩 나뭇살을 벌리고 나오기에 작은 잎사귀를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며칠이 지나서다. 잔 나뭇가지들이 하늘 높이 퍼져 있는데 느티나무는 중심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잔 가지의 나뭇잎부터 피워내는 것이 아닌가. 나는 왜 나무가 지혜로운지 알았다. 수간으로부터 먼 곳에 있는 가지의 잎들이 하늘에 초록의 원을 그리면서 나무는 아름답게 푸르러갔다. 그러나 느티나무는 서둘러 한꺼번에 잎사귀를 피우지 않았다. 나는 찬탄을 금하지 못하고 노거수를 올려다보았다. 나무의 지혜는 바로 먼 곳을 먼저 준비하는 데 있었다. 그가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모습은 성스럽기까지 했다. 느티나무는 변화의 선행자이다. 느티나무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분배를 쳐다보면서 변혁은 저렇듯 개인을 살리는 공적인 주제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눈 밝은 잎사귀로 마음을 활짝 연다. 이제 느티나무에게 지혜를 한 수 배우고 눈이 싯푸른 설악산의 5월 신록으로 떠날 참이다.



< 한국경제신문 / 고형렬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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