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전나무 숲길...내소사.
페이지 정보
본문
바다를 마주보며 솟아오른 산자락. 산세가 높고 매섭진 않지만 울울한 숲과 깎아지른 바위벽엔 기품이 배어 있다. 산기슭엔 눈지붕을 이고 있는 천년고찰. 능선을 올라탄 바닷바람에 울어대는 풍경소리가 적막도량을 찾은 답사객의 마음까지 깨운다.
김제의 너른 들과 곰소만의 넉넉한 바다 사이에 솟구친 내변산. 요즘은 채석강과 곰소항을 끼고 있는 해안의 외변산이 더 유명하지만 내변산은 예부터 호남의 5대 명산으로 꼽히는 경승지였다. 변산이란 이름도 원래는 의상봉(504m), 관음봉(424m), 쌍선봉(459m), 삼신산(486m) 등 내변산의 산자락을 아우르는 통칭이다.
바다에서 부는 습한 바람이 산자락을 타면서 눈송이로 변해 산이 온통 하얗다. 들판에서 올려다본 내변산은 평범하지만 막상 산에 드니 너른 서해바다까지 한눈에 들어와 가경이다. 기껏해야 500m 안팎의 낮은 산군. 그래도 어느 산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경관이 빼어나다.
옛날 시인묵객들이 내변산을 찾았다가 남긴 글도 많다. 월명암 낙조대를 찾았던 육당 최남선은 내변산을 금강산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나직나직한 산이 둥글둥글하게 뭉치고 깔려서 앞엣놈은 주춤주춤, 뒤엣놈은 갸웃갸웃하는 것이 아마도 변산의 특유의 구경일 것이다.
금강산을 선녀입상의 무더기라 할진대, 변산은 흙으로 만든 나한좌상의 모임이라 할 것이다. 쳐다보고 싶은 것이 금강산이라 할진대, 끌어다가 어루만지고 싶은 것이 변산이다. 총죽같이 뭉쳐진 경이 금강산임에 대하야 좁쌀알같이 헤어지려는 경이 변산이다’
부설은 수행중 벙어리인 부인을 만나 환속했다가 다시 이곳에 들어와 아들과 딸까지 도를 깨치게 한 인물. 월명이란 부설거사의 딸 이름이다. 신라때는 의상대사, 조선때는 진묵대사, 근·현대에는 행암, 학명, 용성, 고암, 향봉, 서옹, 해안, 원경, 능파, 월인, 탄허스님 등이 이곳에 주석했다.
주지 천곡스님이 들려준 월명암의 내력이다. 하지만 지름길이라도 50분은 걸어 올라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 월명암에서 10분 거리인 쌍선봉에 오르면 일출과 월출, 운해를 볼 수 있다
월명암 건너편 산자락에 앉은 내소사는 내변산의 관문이다. 산길로는 월명암에서 3~4시간 정도.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백설의 능선길도 지루하지 않다. 부안 3절로 꼽히는 길이 30m의 직소폭포를 지나 내려가 내소사가 나타난다.
내소사는 백제 무왕때 세워진 고찰. 원래 이름은 소래사라고 한다. 소정방이 이 절에 머물며 이름이 바뀌었다는 얘기도 내려오지만 미당 서정주가 쓴 내소란 이름에 얽힌 얘기가 더 그럴싸하다.
대웅전 단청작업을 할 때 일을 끝마치기 전에는 문을 열지 말라고 했으나 방정맞은 중이 창구멍으로 들여다보았다. 붓을 잡고 단청을 하던 새가 쓰러지며 단청작업은 내생이나 소생에 하라고 해서 내소란 이름이 나왔단다.
내소사에선 내변산 숲길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내소사 앞에 놓인 길이 500m의 전나무 숲. 우산처럼 늘어뜨린 가지마다 눈을 이고 있다.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좋다. 길섶엔 겨울 식량을 나르는 청솔모가 뛰어다닌다. 도량에 들어서면 수령 1,000년의 당산나무가 나타나고 그 앞엔 수령 300년의 보리수가 버티고 서 있다.
쇠못하나 박지 않고 만들었다는 대웅전의 창살엔 수백년 세월동안 지지 않고 피어있는 나무꽃을 볼 수 있다. 연꽃과 국화꽃이 정교하게 새겨진 창살이 겨울햇살을 받아 환하다. 대웅전 뒤로 능가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아늑하다.
바다의 풍광에 결코 뒤지지 않게 멋과 역사를 지니고 있는 내변산. 전라도땅답지 않게 겨울이면 유난히 눈이 많은 내변산은 지금 눈 속에 파묻혀 있다. 사람의 발길조차 드문 산길을 따라 자연과 역사를 만날 수 있다.
김제의 너른 들과 곰소만의 넉넉한 바다 사이에 솟구친 내변산. 요즘은 채석강과 곰소항을 끼고 있는 해안의 외변산이 더 유명하지만 내변산은 예부터 호남의 5대 명산으로 꼽히는 경승지였다. 변산이란 이름도 원래는 의상봉(504m), 관음봉(424m), 쌍선봉(459m), 삼신산(486m) 등 내변산의 산자락을 아우르는 통칭이다.
바다에서 부는 습한 바람이 산자락을 타면서 눈송이로 변해 산이 온통 하얗다. 들판에서 올려다본 내변산은 평범하지만 막상 산에 드니 너른 서해바다까지 한눈에 들어와 가경이다. 기껏해야 500m 안팎의 낮은 산군. 그래도 어느 산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경관이 빼어나다.
옛날 시인묵객들이 내변산을 찾았다가 남긴 글도 많다. 월명암 낙조대를 찾았던 육당 최남선은 내변산을 금강산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나직나직한 산이 둥글둥글하게 뭉치고 깔려서 앞엣놈은 주춤주춤, 뒤엣놈은 갸웃갸웃하는 것이 아마도 변산의 특유의 구경일 것이다.
금강산을 선녀입상의 무더기라 할진대, 변산은 흙으로 만든 나한좌상의 모임이라 할 것이다. 쳐다보고 싶은 것이 금강산이라 할진대, 끌어다가 어루만지고 싶은 것이 변산이다. 총죽같이 뭉쳐진 경이 금강산임에 대하야 좁쌀알같이 헤어지려는 경이 변산이다’
부설은 수행중 벙어리인 부인을 만나 환속했다가 다시 이곳에 들어와 아들과 딸까지 도를 깨치게 한 인물. 월명이란 부설거사의 딸 이름이다. 신라때는 의상대사, 조선때는 진묵대사, 근·현대에는 행암, 학명, 용성, 고암, 향봉, 서옹, 해안, 원경, 능파, 월인, 탄허스님 등이 이곳에 주석했다.
주지 천곡스님이 들려준 월명암의 내력이다. 하지만 지름길이라도 50분은 걸어 올라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 월명암에서 10분 거리인 쌍선봉에 오르면 일출과 월출, 운해를 볼 수 있다
월명암 건너편 산자락에 앉은 내소사는 내변산의 관문이다. 산길로는 월명암에서 3~4시간 정도.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백설의 능선길도 지루하지 않다. 부안 3절로 꼽히는 길이 30m의 직소폭포를 지나 내려가 내소사가 나타난다.
내소사는 백제 무왕때 세워진 고찰. 원래 이름은 소래사라고 한다. 소정방이 이 절에 머물며 이름이 바뀌었다는 얘기도 내려오지만 미당 서정주가 쓴 내소란 이름에 얽힌 얘기가 더 그럴싸하다.
대웅전 단청작업을 할 때 일을 끝마치기 전에는 문을 열지 말라고 했으나 방정맞은 중이 창구멍으로 들여다보았다. 붓을 잡고 단청을 하던 새가 쓰러지며 단청작업은 내생이나 소생에 하라고 해서 내소란 이름이 나왔단다.
내소사에선 내변산 숲길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내소사 앞에 놓인 길이 500m의 전나무 숲. 우산처럼 늘어뜨린 가지마다 눈을 이고 있다.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좋다. 길섶엔 겨울 식량을 나르는 청솔모가 뛰어다닌다. 도량에 들어서면 수령 1,000년의 당산나무가 나타나고 그 앞엔 수령 300년의 보리수가 버티고 서 있다.
쇠못하나 박지 않고 만들었다는 대웅전의 창살엔 수백년 세월동안 지지 않고 피어있는 나무꽃을 볼 수 있다. 연꽃과 국화꽃이 정교하게 새겨진 창살이 겨울햇살을 받아 환하다. 대웅전 뒤로 능가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아늑하다.
바다의 풍광에 결코 뒤지지 않게 멋과 역사를 지니고 있는 내변산. 전라도땅답지 않게 겨울이면 유난히 눈이 많은 내변산은 지금 눈 속에 파묻혀 있다. 사람의 발길조차 드문 산길을 따라 자연과 역사를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