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는 자체가 고행이며 구도의 길인걸...설악산 봉정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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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뚜벅 그래 뚜벅뚜벅 걷지 않으면 봉정암엔 갈 수가 없다. 젊다고, 힘이 있다고 잰걸음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거드름을 피우다가는 낭패하기 딱 좋은 그런 곳이 봉정암을 찾아가는 길이다. 봉정암을 찾는다는 것은 그 자체가 고행이며 구도의 길인 듯하다. 평탄치 않은 산길을 걸머메고 둘러메고 꾸부렁꾸부렁 찾아가는 노보살님들의 행보에서 부처님을 찾는 불자들의 진지함이 뚝뚝 묻어난다. 봉정암은 지난 기사에 소개한 태백산 정암사와 함께 한국 5대 적멸보궁 중의 하나로 국내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보궁이며 지리산 법계사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곳에 세워진 사찰로 고도 1244m인 설악산 마등령에 위치해 있다. 어찌 보면 역사의 아픔이며 부끄러움이기도한, 전직 대통령이 유배 아닌 유배를 함으로 세간에 널리 알려진 백담사에서 6∼8시간은 족히 올라가야 갈 수 있는 곳이다. 한 번쯤 백담계곡을 다녀 온 사람이라면 한국의 계곡을 말할 때 어김없이 아름다움과 깨끗함의 첫 번째로 주장할 만한 곳으로 생각된다. 백 개나 되는 소(웅덩이)가 있기에 백담이란 이름이 붙었다는 유래에서 알 수 있듯 백담계곡은 크고 작은 웅덩이의 연속이다.
백담계곡을 찾았던 사람 중에 그 맑은 물과 주변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자아내지 않은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을 듯하다. 그만큼 백담계곡은 아름답고 자연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온통 바위뿐인 계곡에 움푹 패인 웅덩이에 고이고 넘치며 흐르는 물은 맑다못해 서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깨끗하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있는 매표소로부터 그렇게 맑고 경이로운 계곡을 7km쯤은 들어가야 백담사가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봉정암을 찾아가는 구도의 고행은 시작된다. 백담사에서 봉정암까지는 대략 6시간에서 8시간쯤 걸리는 산행길이다. 처음부터 가파르고 험한 길은 아니지만 결코 쉽게 생각할 수 없는 길이며 지루하도록 인내심을 요구하는 그런 길이다. 백담사에서 시작되어 봉정암을 찾아가는 계곡 이곳 저곳은 이미 가을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어디서 시작되었나 알 수 없지만 고이고 넘치는 흐름을 반복하며 형성되었을 물줄기들은 수십 길 낭떠러지를 만나도 자신을 낮추기 위한 추락의 위기에 촌음의 주저함이나 저항 없이 아래로 아래로 떨어진다. 속세의 오욕칠정은 이렇게 씻는 것임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쪼개지고 부서진 물줄기는 작은 물방울 되어 백파(白波)로 비쳐진다. 백 개가 훨씬 넘을 크고 작은 폭포와 낙수에서 보여주는 백파의 소리 없는 부서짐과 발광(發光)은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심오한 법문이며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찾는 불자의 마음가짐을 채근해 주는 가르침으로 보인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외길은 두 사람이 함께 걷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인생이 그러하듯 봉정암을 찾는 그 길은 철저하게 혼자 걸어야 할만큼 좁다. 성급한 마음에 서두르면 앞사람을 길옆으로 밀쳐야하며 자칫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 설사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해도 봉정암을 오르는 길은 앞사람을 밀치고 질서를 어지럽힐 만큼 녹록한 그런 길은 아니다. 울퉁불퉁한 바윗길에 건너야 할 계곡이 몇몇인데 그런 당돌함이 언제고 용납되지는 않을 듯하다. 서두르는 발걸음엔 반드시 몰아쉬는 숨이 따르게 마련이고 몰아쉰 거친 숨은 결국 오름을 중단해야 하는 아픔으로 또 다른 형태의 가르침을 줄 듯하다. 가끔은 흩어지고 무형인 듯 하지만 봉정암엘 오르는 산길은 여느 곳보다 더더욱 철저한 질서를 요구하고 순리를 강조한다. 그리고 어떠한 경솔함은 허락하지 않을 듯하다. 부득불 걸음을 재촉해야 한다면 앞사람에 마음 낮추어 양해를 구하거나 이따금 만나게 되는, 앞지르기가 가능한 공간까지 뒤따르는 것을 감수하여야 한다. 봉정암을 오르는 길에서 배울 수 있는 첫 번째는 바로 순리와 질서 그리고 자기 낮춤인 듯 하다.
너댓 시간 여여한 마음으로 계곡 따라 산길을 오르다 보면 절벽처럼 앞을 막고서는 급경사의 오름길을 만나니 이를 사람들은 '깔딱고개'라 부른다. '깔딱고개'란 별명에서 알 수 있듯 정말 숨 넘어 갈 듯 가파르고 힘들게 하는 오름길이다. 이쯤까지도 속세의 오만방자함을 간직한 사람이 있다면 모두 털고 무아의 마음으로 부처님진신사리에 참배하라는 마지막 관문인 듯 하다. 200여m 되는 깔딱고개를 올라서면 감추어진 듯 보이지 않던 봉정암 전각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쯤에서 오르는 사람들의 표정을 한 번쯤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하다. 사람들이 저마다 다 힘들다고 한다. 숨도 거칠게 몰아쉬고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의 얼굴엔 기쁨이 가득하고 행복감이 넘쳐 흐른다. 그 기쁨과 행복감은 몇 몇 시간 동안 걸음에서 얻은 성취감이며 환희심이다. 걸음마다 쏟아 넣은 기도와 염원의 결정체가 얼굴에 맺힌 것이다.
절 이름을 '봉정암'이라고 한 것은 신라 애장왕 때 조사 봉정이 이곳에서 수도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자장율사가 진신사리를 모실 곳을 찾던 중 꿈속에 나타난 봉황새를 쫓아 산 넘고 물 넘어 찾아든 이곳에서 봉황이 부처님처럼 생긴 바위 이마 부위로 사라졌다 하여 '봉정암'이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자장율사가 현신한 문수보살로부터 전해 받았다는 부처님 진신사리와 금란사를 가지고 고국인 신라로 돌아와 우선 사리를 봉안할 곳부터 찾았을 것은 너무 당연하다. 불국토를 이루겠다는 일념으로 진신사리를 모셔온 자장율사는 사리의 일부를 양산 통도사 보궁에 봉안하고 다른 길지를 찾아 나섰다고 한다. 진신사리를 모실 적지를 찾아 이곳 저곳을 순례하며 지성으로 기도를 올리던 어느날 스님의 꿈에 봉황이 나타났다고 한다. 범상치 않게 여긴 스님이 몇 날 며칠이고 봉황을 쫓았더니 드디어 어떤 높은 봉우리 위를 선회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스님이 봉우리로 올라가자 봉황은 갑자기 어떤 바위 앞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봉황이 자취를 감춘 바위를 유심히 살펴보니 바위는 부처님의 모습 그대로였으며 현재 그 바위를 사람들은 '불두암'이라 부르고 있다. 스님을 이곳까지 인도한 봉황이 사라진 곳은 바로 부처님의 이마에 해당하는 부분이었고, 부처님처럼 생긴 이 불두암을 중심으로 좌우에 일곱 개의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었다. 지세를 살펴보니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다. 온 산천을 다 헤매어도 더 이상의 승지는 없을 것 같기에 자장율사는 바로 이곳이 사리를 봉안할 곳임을 알고 봉황이 인도한 뜻을 따라 스님께서 부처님 형상을 한 그 바위에 불뇌사리를 봉안하며 5층 사리탑을 세우고 암자를 지으니 바로 현재의 봉정암으로 그때가 신라 선덕여왕 12년인 643년이다.
봉정암에 가면 적멸보궁과 산신각 그리고 범종루 외에는 별다른 전각이 보이지 않는다. 큼지막한 건물들 대부분은 기도를 위해 봉정암을 찾는 불자들이 기거하는 공간이며 산행을 하다 묵어야 할 등산객에게 베풀어지는 쉼의 공간이며 자비의 안락처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된 성지 적멸보궁을 찾아 108배를 올리며 서원하며 기도를 올리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지를 찾기 전 갖추어야 할 마음가짐과 태도라 생각된다. 불한당이 아니라면 봉정암까지 오르다보면 누구든 성지에 참배할 마음의 저절로 준비될 것 같다. 아픈 다리 달래고 흐르는 땀 씻어내며 오르고 오르다 보면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맞게 되는 환희심이 바로 마음의 준비이며 걸음걸음으로 엮어낸 도착이 예복이며 염불이다.
사리탑에 예 올리고 굽어보는 산하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어느 누구의 가슴이라 다 담을 수 있겠는가. 흐르는 듯 멈춘 듯, 솟은 듯 숨죽인 듯, 쉬는 듯 꿈틀대듯 맺고 이어진 주변산세가 마치 용의 모습이다. 용(龍)의 이빨(牙)처럼 생겼다해서 용아릉(龍牙稜)이라 불리는 능선의 바위를 기단으로 하여 5층 석탑이 있으니 이곳이 바로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된 사리탑이다. 대개의 탑들은 바탕이 되는 기단석이 있고 그 위에 탑이 있다. 그러나 봉정암의 사리탑은 설악산 전체를 기단으로 하여 그 위에 우뚝 솟아 있다. 바위에 탑이 솟아 둘로 나뉜 듯 하나 불심으로 바라보면 둘이 아닌 하나의 커다란 탑체이며 불신(佛身)으로 보인다. 사리탑과 산신각엘 들려 참배를 하고 종무소엘 들려 주지스님의 친견을 요청하니 쾌히 승낙해 주신다. 햇살 좋고 풍광 좋은 산사에서 스님께 한 말씀 청해 듣기로 작정을 하였다. 육신의 타는 갈증을 청량수로 달래듯 마음에서 일고있는 온갖 번뇌와 갈등을 해소 시켜줄 심수(心水)를 동냥 받고 싶었다.
정중히 인사드리고 어렵다는 경제, 매끄럽지 못한 정치, 결코 평온하지 않은 사회에 대하여 한 말씀 해주실 것을 청하니 '속세와 연을 끊고 사시기에 별 할말이 없다'하신다. 다시 한 번 말씀을 청하니 '위기이자 기회일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하신다. '어렵고 불안하다 하지만 어려움과 위기를 계기로 모두가 심기일전하면 보다 발전적이며 보다 행복하고 질 높은 사회구현을 위한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위기를 기회로 삼기 위한 전제로 몇 가지를 말씀해 주신다. 다름 아닌 '믿음과 사랑 그리고 자비의 마음이 필요하다'고 하신다. '사랑이 전제된 믿음과 믿음이 바탕 되는 사랑을 나누게 되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고 하신다. '이해와 존중이 밑바탕 되는 사랑이 연기되면 서로를 믿게 되며 그 믿는 것만큼 큰 힘도 재기의 원동력도 없을 것'이라고 하신다. '믿는 것만큼 큰 믿음도 없으며 그 믿음에서 자비가 나온다'고 하신다. '그런 사랑과 자비로 시작되는 인연이야말로 참 좋은 인연이며 상생의 관계로 서로에게 베품이 되고 얻고자 하는 구도의 길이 된다'고 하신다.
'경제가 어렵고, 마음이 불편한 사람들은 종냄 사회적 신분에 개의치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그냥 봉정암을 찾아오기만 하라'고 하신다. '속세의 화려한 네온사인처럼 휘황찬란한 불빛도 없고 철렁대는 물침대는 없어도 마음 편히 자신을 돌아볼 휴식의 공간이 있고, 살며 짊어진 삿된 욕심의 짐을 덜어버릴 자아성찰의 시간이 될 것'이라고 하신다. '봉정암에는 쉴 수 있는 공간도 있고 야박하게 돈을 내지 않아도 마실 수 있는 커피도 제공되고 있다'며 불자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좋은 곳을 찾아 마음의 위안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넓은 말씀도 아끼지 않으셨다. 스님의 귀한 말씀을 듣고 나니 마음이 개운해 진다. 혼탁한 눈 가람이 말끔하게 벗어지고 희망의 서광이 보이는 듯 하다. 그래, 위기라고 하지만 기회일 수도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봉정암으로 찾아가는 그 길은 속세의 모든 근심을 덜어줄 것이며 몸에 배인 자만과 오만 따위는 다 씻어 줄게 분명하다. 모든 것 하나하나 덜어내며 떨구며 뚜벅뚜벅 걸어 봉정암 사리탑을 친견하고 걸어 온 계곡을 뒤돌아보면 가슴에 밀려오는 뭔가가 있을 것이다. 극기의 환희심이며 자신을 돌아본 반성의 환희심이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가슴에 담아진 부처님의 자비에 대한 불심의 환희심과 얻어진 자비심이다. 올 가을, 정말 웅장한 대 자연의 풍경화를 보며 마음을 살찌우고 싶다면 몇 시간 발 품 파는 수고쯤은 아끼지 말고 봉정암엘 들리라고 권하고 싶다. 무의식중 내딛는 그 발걸음이 염불되고 108배 되어 성지 봉정암으로 인도할 것이다. 그리고 덤으로 마시는 커피 한 잔이 영혼까지도 달콤하게 해 주리라 확신한다.ⓒ2003 임윤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