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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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3일 새벽 두시 30분
보름이 지난 지 며칠 되지 않아 달이 밝다. 별도 총총.
차가운 지리산의 바람이 반갑다.
“12시 30까지 세석 대피소 도착, 2시 30분까지 장터목 도착을 하지 못한 분들은 하산 하 십시오.”
대장님의 단호한 말씀에 다시 한 번 더 마음을 다잡아 본다. 그러나 산행 신청 후의 기대감과 설레임은 슬그머니 가라앉고 갑자기 두려워진다. 별로 가고 싶지 않은 화장실도 다녀오고 신발 끈도 다시 확인하고 어둠속에 숨어 스트레칭도 해본다.
“처음 올 땐 자신 만만 신나기만 했었는데 이제는 겁나네”
“이제야 철 든 거야 내년에 오면 더 할걸”
인원점검 후 출발!!
3시 30분경에 매표소를 통과한다. 한 명 두 명 보모도 당당하게 어둠속으로 사라져간다.
달빛이 부서지는 하얀 돌길을 따라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한 발 두 발..
숨소리 발자국 소리가 새벽을 깨우며 힘차게 앞으로 앞으로.
오른쪽 발목이 아픈 것 같기도 하고 무릎이 아픈 것 같기도 하고...총무님은 지금까지 내가 본 모습 중에서 제일 씩씩하다. 자꾸 뒤로 쳐지는 난.. 음메 기죽어...
노고단 대피소 도착.
온몸에 땀이 흐르고 긴장도 풀어지니 한결 호흡이 편해진다. 노고령까지의 넓은 길을 뒤로 하고 랜턴 빛에 의지하여 숲길로 접어든다. 먹물 빛의 하늘은 서서히 여명속으로 사라지고 나무와 야생화들이 자기 색을 드러낸다.
돼지평전을 그냥 지나고 임걸령에서 물 한잔과 사과 반쪽을 먹고 다시 출발.
이제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노루목 오르는 구간도 쉽게 통과. 삼도봉에 올라 일출을 보려고 했으나 운무에 가려 붉게 물든 하늘만 바라본다. 대장님께 현재 위치 무전 연락드리니 중간 가이드 였던 우리가 선두가 되어있다. 에구 부지런히 가야겄다~~~
화개재에는 비박한 사람들로 붐빈다.. 토끼봉을 오르기 위해 오이 한 입 베어 물고 스틱두개에 의지하여 4발로 힘겹게 오른다.
몇 년전 처음 지리산 종주할 때 폭우로 물바다가 되어 오르던 기억이 난다. 그때 빗물 젖은 초코파이와 계란을 먹으며 노래 부르면서 걸었던 길... 오늘은 우리 둘이서만 걸으니 아이들 챙기는 부담이 없으니 마음이 가볍기는 하나 가슴 한쪽이 허전하다. 기나긴 계단을 지나 연하천에 도착..항상 시원한 물이 넘쳐흐르던 연하천이 오늘은 줄을 서서 물을 받아야 한다. 비가 많이 온 것 같은데 지리산을 그렇지 않나 보다.
아침식사시간이다. 허기진 배를 안고 자리를 잡고 앉아 며칠 굶은 사람처럼 허겁지겁 먹는다. 밥을 먹고 나니 여유가 생겨 집에 전화를 걸어본다. 전날 저녁 떠나올 때 돌쇠 2가
“엄마 대피소 도착할 때 마다 전화해 ” 했던 말이 생각나서
“민재야 연하천이다. 일어났어?”
“에이 나도 가고 싶었는데”
10일간 중국여행으로 몸도 지치고 감기에 걸려 있어서 이번 종주에 빠진 것이 조금은 아쉬운 모양이다.
벽소령 까지는 비교적 쉽게 걸어간다. 벽소령에서 잠깐 쉬고 선배샘으로...선비샘도 수량이 적다. 물을 받기 위해 줄을 10여분 넘게 기다린다. 항상 제일 어렵게 느껴지는 구간이 벽소령에서 세석이다. 그렇지만 이구간만 통과하면 종주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는 구간이기도 하다. 몸이 힘들어지니 말수도 줄어든다. 침묵에 잠겨 그냥 걷는다. 내가 걷고 있다는 것도 의식하지 않고 걷고 있다. 문득 현실로 돌아왔을 때는 참 행복하다는 충만감으로 가득 찬다. 방학이어서 아이들과 산행하는 가족들이 많다. 애들을 볼 때 마다 집에 있는 돌쇠들이 생각나서 파이팅도 외쳐주고 용기도 주고 간식도 나눠준다. 덕평봉을 거쳐 칠선봉에 올라섰으나 구름에 가려 능선은 보이지 않는다. 줄줄 흐르는 땀이 내 몸과 영혼을 다 맑게 씻어 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긴 너덜길과 오르막 내리막을 거쳐 영신봉..세석이 눈앞에 다가왔다. 이제 종주는 성공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
1차목표인 12시 30분까지 세석 도착을 1시간 앞당겨 11시 30분에 도착했다.
언제 봐도 그림처럼 아름다운 세석 대피소의 주변 풍경들을 보면서 촛대봉을 오른다. 강하게 내리쬐는 태양빛을 온몸으로 다 받으면서 한발 한발을 무겁게 내딛는다. 고생을 사서 한다 . 힘들때 마다 스스로 달랜다.
‘얼마나 오고 싶어 했던 곳이고 얼마나 기다렸냐.. 지금 이순간을 앞 으로 내가 살아가면서 아주 많이 그리워 할 거다. 그러니 고통도 즐기고 산도 즐기고 행복해하자 ’ 나에게 주문은 건다.
촛대봉에서 식사를 마치고 대장님께 연락을 하니 후미그룹이 칠선봉에 도착하고 있단다. 대장님은 아무래도 종주를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세석에서 장터목 구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길이다. 야생화가 지천에 피어있고 길도 이쁘다.
쉼없이 두발이 움직일 때 두 눈은 부지런히 풍경사진을 찍기에 바쁘다. 연하봉에 올라 산봉우리를 휘감아 돌아가는 구름바다 속에서 연하선경을 거니는 신선이 되어 보기도 한다.
장터목 대피소 .
이곳의 식수 사정이 더욱 좋지 않다. 물을 받기 위해서는 20-30분 정도를 기다려야 하고 대피소에 파는 생수도 품절된 상태다. 남아 있는 물 아껴 먹기로 하고 물 받는 걸 포기한다. 이온 음료수 사서 마시고 잠시 쉬다가 마지막 결의를 다진다. 터질듯한 숨을 몰아쉬며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 이제 한발 한 발 걸을 때 마다 천왕봉이 내 앞으로 한걸음 씩 다가옴을 느낀다. 그래도 힘들다.
세파와 모진 풍파 이겨내고 지나간 세월의 상처도 속으로 삭히며 서 있는 고사목들.
항상 숙연한 기분이 드는 제석봉
드디어 통천문. 막바지 오름길에 숨은 더 거칠어지고 다리도 무겁지만 마음은 달려가고 있다.
천왕봉..
2시 10분
도착도 하기 전에 이미 기쁨을 다 즐겨서 인지 그냥 웃으며 악수한번으로 서로를 축하 한다. 정상석 한번 쓰다듬고 기념사진 찍고 집에 보고.
“엄마 천왕봉에 도착했다.. 잘했지?”
“ 축하.....내리막길 위험하니 조심하세요 그리고 중산리에 도착해서 또 전화해..”
정상에 앉아 체리 몇개 먹고 바윗길 ..조심조심 하산을 한다.
천왕샘의 물도 말라 거의 흔적만 남아있다. 아침부터 다리를 혹사 시켰더니 이제 아우성이다. 무릎도 아파오고 근육들이 말을 안 듣는다. 스프레이를 뿌리고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내려오나 거리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로타리 대피소...물이 콸콸...아 반갑다..식수통을 다 채우고 蘭 씻고 세수도 하고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여유롭게 가자..
다리가 많이 아프다..작년 무박 종주할 때 이쯤에서 다시는 무박으로 지리 종주는 안한다고 했는데. 내가 바보다...이렇게 힘들었던 걸 잊고 또 하다니..이제 정말 다시는 무박으로는 안한다..절대...
다리아파서 힘들게 가는 사람들이 한 두명이 아니다. 조금가다 쉬고 간식먹고...
“먹으러 산에 왔지?”
“아니 걷기위해서 먹는거야...헤헤”
끝이 없을 것 같이 지루하게 이어진 산길이 드디어 사라지고 도로길...
새벽 3시 20분부터 오후 5시 20분까지 14시간 동안의 긴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종주에 성공한 분들과의 손두부. 도토리묵 그리고 막걸리로 한잔으로 피로가 다 날아가고 또 내년종주를 꿈꾸어 본다. 바보.
댓글목록
포포님의 댓글
포포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종주를 끝내시고 드시는 두부와 막거리 맛에
얼굴엔 만족감이 한가득^^
"지금 이순간을 앞 으로 내가 살아가면서 아주 많이 그리워 할 거다"
이 문구가 지금 저에게 참으로 와 닿습니다^^
14시간이 아니라 17시간이라도 저는 못할 것 같은데 정말 대단하시고 존경스럽습니다^^
저도 처음 지리종주하고 지금껏 하면서 벽소령에서 세석구간이 젤로 힘듭니다^^
얼만전에 산정과 세석산장으로 오르는 길에 다다르면서 감정이 북받쳐 눈물이 글썽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지나치는 그 길만 봐도 정말 가슴 셀레였는데^^
자연을 느끼고 자신을 느낄 수 있는 바보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산정을 만나고 그 곳에서 돌쇠네를 만나면서
참으로 제가 원하는 가족의 모습이라고 여러번 생각했습니다^^
삶을 즐기는 그대여^^ 아니 바보님^^ 떠나라(광고번젼)
앞으로도 건강하시구요^^ 즐산 많이 하시구요^^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돌쇠엄마님의 댓글
돌쇠엄마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감사합니다..
작년에 아이들이랑 종주중에 저희처럼 가족이 함께 종주한 분들을 만났습니다. 서울에서 오신분들인데 2박 3일 일정으로 세석에서 주무시고 장터목을 향해서 가고 있는 중 저희를 만나서 아저씨가 우리 돌쇠들을 보고
"야 너희들 어디서 왔니?"
" 성삼재에서요"
"우와..그런데 너희들을 남자니까 이해하는데 너의 엄마는 북에서 왔니?"
대장님, 튼튼님 , 영한님, 매래치님, 프리~님 , 지수님 찰스강님, 파랑새님, 포포님 감사합니다.
좋은 날들 되세요...
그리고 튼튼님 메일 주소예요: hayansan0214@hanmail.net
사진 보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