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봉정암▲하늘에 달이 가듯 세상번뇌에 선연히 떠서 연꽃을 피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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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봉정암▲하늘에 달이 가듯 세상번뇌에 선연히 떠서 연꽃을 피우다.
- 언제 : 2005.5.21(토) 21:00~22(일) 23:00 무박2일
- 얼마나: 5.22 03:45~14:45(11시간)
- 날 씨 : 흐린 후 가랑비 내림
- 몇명:41명
- 어떻게 :부산 산정산악회 따라서( http://mysanjung.co.kr )
▷한계령휴게소↗서북능선↗끝청↗중청↘소청↘봉정암↘오세암↘영시암↘백담사
- 개인산행횟수ː 2005-20 [W산행기록-113/P산행기록-255/T604]
- 테마:성지순례
- 산높이ː중청 1,676M
- 좋은산행 개인호감도ː★★★★★
5월 21일 21:00
40인승 버스 맨 좌측 첫자리에 앉아지만 걱정이 된다.장거리 운행에 멀미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여러번의 장거리 무박산행에서 얻은 결론이 나는 멀미를 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고,그래서 그렇게 좋지 못한 기억을 잊을만한 세월이 흘러야만 장거리 무박산행을 떠난다는 것이다.
그런 나쁜기억이 내 머리속과 몸에 각인되는 시간은 대략 6개월 정도이니,거꾸로 말하면 이런 모험은 최소한 6개월 이상 휴식을 취한 후 저지런다는 것이다.
그리고 종착지 막판에 지그재그형 오름길이 있다면 바로 약효는 빨리 나타나는 법이니,한계령,속리산 말티재,지리산 정령치,월악산 가는길 등이 바로 그런 곳이다.쉽사리 잠을 자지 못하는 체질에도 불구하고 낮에 승마(말타기)를 한답시고 몸을 피곤하게 한 덕분에 다른 때 보다는 쉽게 잠이 들었다.
5월 22일 03:45
불현듯 잠에서 깨고보니 머리가 빙빙돌고 어지럽다.상황파악을 하고보니 버스가 한계령을 갈지자로 오르고 있다.쉽게 성지를 보여주고 싶지 않은지 처음부터 고행을 요구한다.한계령 휴게소에 도착한 후 헤드랜턴을 켠 후 인원점검을한다.매표소 통과하자 마자 곧 넘어갈 듯 숨이 가빠지며 멀미끼가 절정에 달한다.
05:18
가장 후미로 처진다.너무나 고통스런 산행이지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이미 지난 산행에서 서북능선을 거쳐 십이선녀탕 산행에서도 이 보다도 더 고통스런 산행을 맛보지 않았던가? 물 이외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다리에 쥐가 내리는 것도 극복하며 토사곽란까지 한 경험도 이겨내었고,지리산 종주때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도 결국 해내었다고 나의 마음을 다스리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한걸음씩 위로 향한다.
속이 미식거리며 편치 않는데 허리의 통증까지 더하고 발가락까지 아파온다.다행히 속이 편치 않지만, 할 듯 말듯하지만 멀미는 하지 않는다.멀미는 하게되면 다리의 힘이 쏙 빠지게 되고 산행은 더 힘들어지게 된다.몇걸음 걷고 휴식하고 또 몇걸음 걸으며 뒤돌아보니 서북능선 방향 산그리메가 경이롭다.
05:33
드디어 서북능선에 오르게 되어 우측길 끝청 방향으로 능선길을 가게된다.이미 후미의 그림자 조차 보이지 않으니 단체산행이 아니라 홀로산행을 온것 같은 착각이 든다.능선 우측을 바라보니 흐리지만 해가 밝아오고 있음을 느낀다.
06:26
어느 정도 고통에 익숙해지고 있다.속은 편해졌지만 허리의 통증은 계속 이어지고 발가락의 고통은 더 심하다.상대적으로 출발할때 보다는 발걸음이 가볍다.산행 후 처음으로 후미대장을 조우하게 된다.우측을 바라보니 하늘금 위로 달마봉의 머리가 약간 보인다.
07:39
후미그룹 6명을 앞지르며 조금씩 속도를 더하니 끝청에 서게된다.서북능선에 점점이 이어지는 철쭉꽃들이 이제 눈에 들어온다.끝청에 서니 지나 온 서북능선이 내 발아래 엎드리고 있고 고행을 축하 하듯 철쭉꽃이 축하의 화환처럼 내 주위에 가득하다.
07:44~6
꿑청에서 중청으로 가는 도중에 보는 철쭉,바위,소나무의 앙상블이 볼만하고,능선길 좌측에 보이는 용아장성릉이 어서오라 손짓한다.
08:05
중청 우측으로 향하니 철쭉꽃길 넘어 대청봉이 보인다.중청 설악대피소에서 먼저 온 산악회원들이 식사를 하는데 나는 속이 편치 않아서 그냥 잠시 휴식 후 바로 소청으로 향한다.
08:30
소청대피소 가는 길은 연분홍 철쭉꽃과 구상나무의 배열이 잭슨폴록 그림처럼 무질서와 절묘한 통일감이 공존하듯 눈길을 사로잡고 그 뒤로 봉정암이 어렴풋 보인다.
08:37~47
소청대피소에 도착해보니 우측엔 공룡능선이 빤히 보이고 좌측엔 봉정암을 감싼 바위들이 용의 이빨처럼 위압적이다.
09:07
푸른기와의 봉정암 적멸봉궁과 그 뒤 부처님 형상의 불두암이 보인다.봉(鳳)황이 저 부처님 머리같은 곳의 정(頂)수리로 사라져서 이름이 봉정암(鳳頂庵)이 된것이다.용의 이빨같은 바위의 기세가 너무나 드세서 부처님의 진신사리만이 감당할 만한 장소다.나 같은 사람은 혼비백산 할만한 기가 센 곳이라서 이곳의 연두빛 초록마저 공포영화의 빛깔처럼 보인다.
09:28~30
봉정암을 지나 좌측 계단을 밟고 오르니 5층석탑의 사리탑이 보인다.부처님의 뇌 사리를 봉안했다고 하여 불뇌보탑이라고 하는 곳이다.나도 모르게 두손모아 예불하고 조금 높은 곳에 올라 산세를 살핀다.파노라마 사진을 찍기 위해 영화 촬영용 카메라가 한바퀴 돌때 느끼는 - 보는이가 가만히 있어도 움직이는 듯 한 - 착각에 빠지는 환상을 경험한다.
이곳이 용아장성능선의 위쪽 끝부분이며 여기에 사리탑을 향해 두손모아 기도하는 보살형상의 바위가 있고 우측의 바위군들도 볼만하다.
09:40
봉정암에서 사리탑 가는방향 10여m 못미처 우측 산길을 오르면 가야동계곡으로 향하는 깔딱고개가 있다.200여M의 깔딱고개는 내려가는 사람에게도 쉽지 않은 곳이지만 이곳을 찾는 반대방향에서 오는 분에게는 마지막으로 신심을 확인하는 곳이며 마지막 남은 욕심마저 버리게 하는 결정적인 모멘텀을 제공하는 비인위적인 천상의 테스트구간이다.올라오지 않고 내려가는 나를 시험하기 위해 때 맞춰 비를 내린다.
비를 맞으며 내려가다 좌측을 보니 용아장성이 병풍처럼 벽을 치고 다른 생각을 못하게 한다.봉정암...그곳은 오가는 길이 고행이며 구도이다.되돌아보니 마음 한 자락이 펼쳐져 쉬고 있는 듯하고, 그렇게 저의 오욕칠정,속진번뇌 한무더기가
저절로 씻겨져 내려갔다.그 무더기를 저 용아장성이 벽이되어 가두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허리통증 마저 거짓말 같이 없어졌다.
10:19~12:01
가야동계곡은 아직 때가 덜 묻었으며,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자연스럽게 스러진 나무위로 이끼가 자라고 있는데 그 위로 나뭇잎 물결이 빚어내는 가장 아름다운 연초록빛을 - 하늘을 감추며 환상적으로 - 보여준다.
발가락이 너무 아파 양말을 벗고 보니 오른쪽 새끼발가락에 피멍이 들었다.발톱을 깍고 시원한 물에 탁족을 병행하고 나니 통증이 많이 줄어든다.그런 나를 청설모와 다람쥐가 번걸아가며 다가와서 간호하듯 둘러본다.
공룡능선에서 갈라져 나온 지선들이 오세암 가는길로 침범해서 몇번을 오르내림해야 하는데 오름길 끝에 서면 가끔보이는 풍경이 보기 좋다.
12:13~15
중간 중간 뵙게 되는 할머니 보살들의 행복한 미소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 것 같다.고행에서 달디 단 행복을 느끼는 것은 바로 봉정암으로 향하는 한걸음 한걸음이 구도의 길이며,불뇌보탑 - 신도에게는 살아있는 부처님 - 을 만나는 성지순례의 길인 것이다.
오세암에 도착해보니 이곳 주위 산세도 예사롭지 않다.4살이 한해 겨울을 더해 다섯살(오세)이 된 전설 속 관음의 영험이 유명한 곳이니 대웅전보다 더 큰 건물이 이해가 되고 에니메이션 영화의 따뜻함도 더해서인지 잠시 비가 그쳤다.
12:18~14:45
수렴동계곡을 따라 내려가며 영시암을 징검돌 삼아 건너띄니 구름옷 가득 걸리더니 비가 내려 설악산은 다시 막 태어난다.그 비들이 백담계곡 물에 섞여 우렁찬 함성소리가 귀에 익을 무렵 백담사에 도착했는데 오랫만에 다시 와 본 백담사는 그 옛날 내가 보았던 아담한 절집의 모습은 간데 없고 영화 세트장 같은 모습에 정나미가 떨어져버렸다.
꽃향기 나직히 새어들고 구름에 달이 걸려 멈추었던 그 곳은 어디 갔는가? 천년세월은 모두 흔적없이 감추어놓고 욕심의 빈 껍데기만 줄줄이 진열해 놓았다.
백담사 다리 앞 셔틀 버스가 빨리 타고 떠나라고 붕붕거리며 울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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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모든 것 속에서 자신을 만난다.
風流山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