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황산-능동산]딸과 함께한 은빛 물결치는 사자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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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천황산-능동산]딸과 함께한 은빛 물결치는 사자평
**어디로:천황산(사자봉),능동산
**언제:200년9월19일
**누구랑:7살 예쁜 딸이랑
**하늘은:청명한 초가을 하늘
**지나온 길: 배내고개-능동산-샘물상회-천황산-천황재-표충사
**두발차 주행시간:6시간(식사,휴식 포함)
**떠나기전에
몇해전- 산이 미치도록 좋은 것이 아닐 때-어느 늦은 가을에 재약산을 찾은 적이 있었는데
무지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표충사로 해서 오른쪽으로 계곡을 건너 헉헉거릴 때 나타난 홍룡폭포에 감탄사를 날리고,
고사리 분교터 근방에서 동동주 한사발에 힘을 내서 수미봉 억새품으로 빨려 들어 갔었다.
늦가을의 억새는 햇빛을 받고선 은빛물결은 온데 간데 없고 누런 빛을 내며 지난 영화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천황재에서 올려다본 천황봉에 아연실색하여 표충사로 달음질치듯 내려왔었는데,
그때가 2001년11월11일이었다.
한 주라도 산에 가지 않으면 병이 날것 같은 마음에 이번에 딸까지 데리고 나서기로 한다.
전날 저녁에 딸과 결정한 것이다.
딸이 억새의 향연을 어떻게 대할지 궁금해 하면서…
**등산지도
**산행내용
갑자기 내려진 결정이라 예약도 없이 아침에 택시를 타고 가면서 예약한다.
예약이라기보다는 통보에 가깝다.
초가을의 영남알프스는 억새의 장관을 보기위해 전국의 산꾼들로 붐비는터라
41인승 버스의 엉덩이를 맞이하지 못한 좌석이 2개뿐이다.
이래저래 산정님들과 인사를 한 후 허전한 느낌이 든다.
그래 디카의 빈집만 허리에 차고 있었다.
우리 딸을 그림 같은 풍광에 담아올려고 했던 계획이 바람에 억새꽃 날아가듯 가버린다.
10시에 배내고개에 도착한다. 간월산 창립산행과 똑같은 산행시점이다.
딸과 파이팅을 외치며 후미로 출발한다.
“딸!이번엔 목말 안해준다”
“응! 아빠! 그런데 힘들면 쉬어야 돼”
이처럼 몇번을 다짐받고 제법 경사진 길을 오른다.
10여분 지났나? 힘들다고 한다.약속대로 쉬었다가 간다.
그리고 당근을 제시한다.
잘 걸으면 딸 하고 싶은 것 들어준다고 하니 문방구에 가서 3가지를 사고 싶단다.
그렇게 또 가는데 걸음이 느려진다.
원계획은 재약산은 오르지 않고 천황재에서 바로 내려서기로 했는데,
이마저도 늦어져 산님들에게 누가 될까하는 조바심에 딸을 배낭에 얹고 만다.
석남고개로 갈라지는 길을 지나 능동산에 도착한다.
가야할 능선이 시원스레 펼쳐지고 능선길은 산군들로 무척 붐빈다.
길은 빗물에 쓸려 드러난 돌팍들이 물기를 머금어 미끄러워 딸의 손을 잡고 내려오니 임도와 연결된다.
딸의 체력과 시간 때문에 계속 임도를 따라 걷는다.
북사면의 급경사로 떨어지는 얼음골 주변과 가지산,운문산,억산의 전망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어차피 천황산 못미쳐 능선에서 장쾌한 조망을 주기 때문에 대중교통 할인이 되는 사람들은 임도로 가도
무방할 듯하다.
아래 주암계곡에 우뚝 서있는 심종태바위가 날 좀보소 한다.
이에 뒤질세라 간,신불,영축,시살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임도 한 켠으로 벌개미취,닭의장풀,코스모스등 야생화들이 딸의 시선을 잡아둔다.
무등 태우기를 반복하다 임도가 끝나고 공사하다가 방치된 영남알프스랜드 위쪽으로
억새군락이 은빛물결을 출렁이고 있다.
딸에게 역광을 받는 억새와 바른쪽의 색갈차이를 물어보고 이유를 설명해준다.
이유는 빛의 산란때문이라고…
틀려도 할 수 없다.
하지만 7살때의 아빠는 모르는게 없는 아빠이기 때문이다.
12살이 되면 모르는 것도 있어 하다가 그후로 아빠는 하나또 몰라라고 한다지않는가.
샘물상회에 도착한다.
선두는 가고 중간과 후미가 모여 처음오신 여성회원님 덕분에 거나한 점심을 한다.
잘 먹었습니다.다음에도 배낭끈 떨어지도록 가져오세요!!
점심을 먹고 힘이 나는지 딸이 잘 걷는다.
그런데 등로에 빗물이 고여 있어 질퍽거려 딸을 무척 힘들게 한다.
보조를 잘 맞추어 가다가 진행이 느려져 다른 산님들을 비켜서 보내드리고
여기만 지나면 길이 좋아진다고 독려를 하면서 가보지만 이것도 잠깐.
조망이 열리기 바로 전 지점에서 다시 무등을 태운다.
드디어 조망이 열린다.
북사면의 천애절벽위에 무등을 한 채로 전날 비온뒤의 선물인 깨끗한 시계로 보는
가지산,운문산,억산의 생김생김,얼음골사과로 유명한 밀양 들판이 눈에 쏘옥 들어온다.
이번엔 발길을 돌려 천황산 억새숲으로 들어가는데 눈이 그 경치를 다 담아내지 못해 안타까울 지경이다.
힘든줄도 모르고 딸을 태운채로 재잘거리면서 정상까지 내달린다.
정상으로 오면서 딸이랑 아빠랑 기분이 고조되어 딸에게는 칭찬을 해주고
나는 시원한 맥주를 부상으로 들이킨다.캬~~이맛이야!!
완만하게 올라온 정상을 경사가 심한 바위 길을 따라 천황재로 내려서야 하는데
그 바위의 규모가 상당하다.
배내골을 중심으로 하여 보면 영남알프스의 바깥면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고
배내골로 모이는 안쪽은 완만한 육산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중에서도 천황산,재약산이 이러한 특징을 가장 많이 보여주고 있다.
딸에게 재약산을 가리키며 저기로 올라볼까하고 의사타진을 해보는데 기분이 좋은지 대뜸 그러자고 한다.
그러자하고 의기투합을 하고 내려오는데 다리가 아프다고 한다.또 무등을 태운다.
전국의 산중에 이러한 번화가가 또 있을까? 주막집에 산꾼들로 넘쳐난다.
술을 싫다하지 않는 나로서는 필요악일지 모르나 환경문제,안전문제등을 생각한다면…
이런 상황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자니 딸이 빨리 가잔다. 재약산으로 고!!
조금 가다가 다시 물어본다. “힘든데 진짜로 갈끼가?”
아무래도 바로 내려가는게 좋을 것 같아 다시 돌아와 천황재에서 바로 표충사로 하산하는 길을 택한다.
아니나 다를까 길에 물이 고여 질퍽거리자 힘들다고 생짜를 부린다.
얼래고 달래고 하여 조금 더 가보지만 이내 무등을 태우고 만다.
다리가 안좋다고 천황재에서 먼저 하산한 freeweld님을 만나지만 무등을 한지라 같이 가지 못하고
지나치고 만다.
같이 가지 못하는 미안함을 안고 딸을 배낭위에 실은 채로 30여분을 내려오는데 별로 힘들지가 않다.
그런데 내내 재잘거리던 놈이 목을 감기 시작한다.
“다희야! 너 잠오지?” 아니라고 하지만 잠이 오는 것은 사실이라 무등에서 내린다.
잠이 오려던 놈을 깨워 걸으라고하니 걷지를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어쩌라!
천천히 걸려서 가다가 쉬어가기로 하는데 쉬는 자리 옆에 도토리가 제법 보여 이를 줍느라 잠이
완전히 달아났나보다.
다시 용기를 북돋아 내려가기 시작한다.
“아빠! 내가 목말 안하고 걸어 왔으면 칭찬도 해주고 소원도 들어주고 해야 하는데,
목말을 했기 때문에 칭찬은 안해줘도 되지만 소원은 들어줘야 돼”라고 자기딴엔 걱정스러웠던지
수정안을 내 놓는다.
“지금부터라도 잘 걸으면 칭찬도 해주고 소원도 들어주지!”라고 애기하니 자신이 있는지 좋아라한다.
천황산,재약산에서 내려오는 길중에 이길이 조망도 안되는 능선을 따르다 가파른 길을 내려서는데
계곡도 없고 그저 평이한 길이다.
계곡은 비로소 내원암을 지나서야 볼 수 있다.
자신이 있어 하던 딸이 또 구원의 의사표시를 한다. 그래 오늘 아빠는 힘이 남아돈다.
넓은 길을 만나고 내원암을 곁으로해서는 콘크리트길이 이어지고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천황산에서 바로 내려 금강폭포쪽에서 내려오는 길 삼거리에 119차가 보인다.
별탈 없기를 바라면서 다리를 건너기전 옛날 길로 부도탑을 지나 수량이 풍부한 금강폭포쪽에서
내려오는 계곡으로 간다.수량이 하산한 코스의 계곡보다 훨씬 풍부하다.
딸의 얼굴에 생기가 돈다.
둘다 신발 벗고 潁 벗고 계곡에 발을 담그는데 올해처럼 뜨거웠던 여름이 그리워진다.
이제 벌써 알탕은 초밥집에서만 볼 수 있게 된 계절이되어버렸네!
갈대에 붙은 거미를 손으로 물을 모아 애비 딸이 함심해 떼어 보려하지만 놈은 떨어지지 않고
부녀의 웃음소리만 높아간다.
딸이 스틱으로 물장난을 치다가 옷을 버려 갈아 입히고 뭔가 허전한듯 하여 등목을 해달라고 하는데
조그만 손으로 물을 퍼지르는게 감질맛이 나지만 기분만은 최고이더라.
30분 가까이 계곡에서 놀다가 4시쯤에 출발하여 표충사에 들러 백일홍이 핀 계단이 엄마아빠의
처녀총각때의 사진속에 담겨있는 곳이라 이야기해주고, 경내를 둘러보고 부처님에게도 절을 하라고
권해보지만 하지 않는다. 절유치원에 다니는 딸을 둔 아비가 무안해진다.
문을 나오니 freeweld 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
매표소를 지나 길고 긴 도로를 따라 식당가주차장에 닿는다.
“다희야! 잘 걸을 때까지 아빠 따라 다녀야 돼!!!”
<천황산,재약산 사자봉의 이름에 관한 주장들>
1. 천황산-부산일보(20040513)
지난해 5월 산악관련 모 잡지에 어느 산악인의 글이 실렸다.
영남알프스 중앙에 위치한 한 산을 올라 겪었던 일을 소개한 내용이었다.
그가 오른 산은 재약산이었다.
그런데 정상에 올라보니 재약산 대신 천황산이라고 명명한 새 표지석이 세워져 있었다.
'천황산이라는 산의 이름은 일제가 붙였다'고 알고 있는 그로서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다시 과거로 회귀한 밀양시에 전화를 걸어 이의 정정을 요구하며 항의했다는 것이다.
위 산악인의 주장처럼 천황산은 일제가 붙인 이름이 사실일까.
그래서 재약산으로 다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타당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그렇지 않다.
천황산은 수백년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불렀던 고유의 산이름인 것이다.
때문에 일제가 붙였다는 주장도 터무니없는 낭설인 셈이다.
울산의 향토사학자 이유수씨(70)씨가 이 사실을 증명했다.
이씨는 지난 98년 울산에서 발행된 울산향토사연구회 향토사보 제9집에서
'천황산일식명설의 고찰'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천황산이 우리 고유의 산명인
천왕산에서 유래되었다고 역사적 사실을 들어 규명했다.
그에 따르면 천왕산은 조선조 영조 36년(1760년)에 만들어진 전통지리화인
여지도에 석남사 석골사 등과 함께 분명히 그 이름이 올라있다고 말한다.
그 근거로 성균관에서 복사한 여지도 밀양부 사본을 논문에 첨부했다.
다만 그 천왕산이 천황산으로 바뀐 것은 1987년 조선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면서 왕의 칭호를 황으로 고쳐 부른 것과 같은 논리라고 설명한다.
이는 속리산의 천왕봉이 천황봉으로 불려지고 있는 것과 같은 이유라고 말한다.
이에 따라 밀양시에서도 지난 2002년 6월 일부 산악인들이 세워놓은 재약산 사자봉 정상석을 철거하고
새로이 만든 천황산 표지석을 세워 놓았다.
이렇듯 천황산의 명칭문제가 이유수씨 노력으로 일단락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산악인들이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심지어 전문 산악지조차도 천황산이라는 산명을 빼버린 채 여전히 재약산 사자봉으로 취급하고 있다.
잃어버린 우리 것을 되찾는 것도 중요하고 그에 따른 열정도 존중받아야겠지만 냉철한 분석없이
접근한다면 이 같은 우를 다시 저지르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한걸음에 달려가 천황산을 꼭 껴안아 보고 싶은 이유다.
진용성기자
입력시간: 2004. 05.13. 09:25
2. 재약산 사자봉-한국의 산하
재약산 명칭
높이-재약산(載藥山), 재악산(載嶽山) 1,189.2m
재약산 지명-영남알프스의 명산, 재악산(載嶽山)의 "악(嶽)"에 대해서(도재국)
①재약산
②높 이 ⇒ 재약산(載藥山), 재악산(載嶽山) 1,189.2m
③위 치 ⇒ 경남 밀양 산내면, 단장면, 울산 울주 상북면
④재약산 지명 ⇒ 재약산인가 천황산인가 ?.
⑤재약산은 재약산, 수미봉, 사자봉, 천황산으로 혼동되어 부르고 있다. 또한 수미봉과 사자봉을 혼돈하기도 한다. 지형도나 대부분의 등산지도에는 재약산(수미봉 1,018m)과 천황산(사자봉 1,189.2m)이 따로 표기되어 있다.
⑥지도상으로는 재약산은 주봉이 수미봉(1,018m)이고 천황산은 주봉이 사자봉(1,189.2m) 이다. 천황산이 일제 때 붙여진 이름이라 하여 우리 이름 되찾기 일환으로 천황산 사자봉을 재약산 주봉으로 부르면서 위와 같은 혼돈이 생기게 되었다. 이에 따라 "한국의 산하"에서는 지도상의 천황산(사자봉)을 재약산으로 이전의 재약산은 수미봉으로 표시한다.
⑦"도서출판 사람과 산"의 등산지도에는 재약산을 수미봉으로, 천황산 사자봉을 재약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대부분의 산꾼들은 일반적으로 재약산은 재약산 수미봉, 천황산은 재약산 사자봉으로 부르고 있다.
⑧재약산(載藥山)인가, 재악산(載嶽山)"이가 ?지리역사의 진실 보존과 왜곡된 산 이름의 본래의 이름으로의 환원을 위해서 노력하는 도재국님은 기록의 증거를 제시하며 재약산 이름을 재악산(載嶽山)으로 되찾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증거에 의하면 재악산이 맞으나 재약산으로 널리 알려져 있어 기록에 의한 이름으로 환원되기 전 까지 한국의 산하에서는 재약산과 재악산 2개로 표시한다.★㉮영남알프스의 명산, 재악산(載嶽山)의 "악(嶽)"에 대해서(도재국)★㉯"재악산(載嶽山)"의 증거문서(고문서 및 고지도) (현진상)
3. 밀양시 답변-어느 산님의 천황산의 정확한명칭에 대한 질문의 답변20040719
우리시 홈페이지에 방문 하여주신 귀하께 감사드립니다.
귀하께서 게재하신 천황산과 재약산을 잘못 표기하고 있다는 의견과 관련하여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시에서는 2002년 4월경 등산객이 많이찾는 유명산의 정상에 설치된 표지석중 산의 명칭, 해발높이 등 표기가 바르게 되어있지 않고 재질이나 규모면에서 극히 조잡한 표지석, 또한 훼손되어 보기가 흉한 표지석에 대하여 가능한 기존의 산과 잘 조화가 될 수 있도록 자연석으로 정비한바 있습니다.
귀하께서 질의 하신 천황산 정상의 경우 종전부터 천황산 천황봉이다. 재약산 사자봉이다. 라고 일부에서 논란이되고 있었으며, 산이름 역시 天皇山이다 載藥山이다. 또는 천황산 재약산도아닌 載岳山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국립지리원의 중앙지명 위원회에서는 광복 50주년을 맞아 일본식 지명을 변경코자 각시도 지명 위원회의 의결내용을 보고받아 '95. 10. 17 심의결과 우리시 단장면 구천리 소재 천황산(재약산으로 개명건의)에 대하여는 더욱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하여 그 결정이 유보된바 있으며 '국립지리원 지도58260-837(1995. 11. 09)',
또한 우리시 밀양 3.3산악회가 국립지리원에 질의한 결과 산에 대한 지명제정, 변경은 신중히 검토되어야 할 사항으로 국립지리원에서 발행한 지도에 표기된 바와같이 공식지명은 天皇山과 載藥山은 구별되어 있다라고 회신(국립지리원 지도58269-381(96.05.22)되어 왔으며, 동내용에 대하여 '96.06.13 경남매일신문, '99.09.10 밀양신문 등에 게재 홍보한바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시에서 표지석 설치 당시까지 산이름이 개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국립지리원에서 발행한 지도에 표기된 공식 지명인 天皇山 海拔 1,189m, 載藥산 海拔1,108m로 표기 설치하였음을 알려드리오니 널리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 합니다.
**어디로:천황산(사자봉),능동산
**언제:200년9월19일
**누구랑:7살 예쁜 딸이랑
**하늘은:청명한 초가을 하늘
**지나온 길: 배내고개-능동산-샘물상회-천황산-천황재-표충사
**두발차 주행시간:6시간(식사,휴식 포함)
**떠나기전에
몇해전- 산이 미치도록 좋은 것이 아닐 때-어느 늦은 가을에 재약산을 찾은 적이 있었는데
무지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표충사로 해서 오른쪽으로 계곡을 건너 헉헉거릴 때 나타난 홍룡폭포에 감탄사를 날리고,
고사리 분교터 근방에서 동동주 한사발에 힘을 내서 수미봉 억새품으로 빨려 들어 갔었다.
늦가을의 억새는 햇빛을 받고선 은빛물결은 온데 간데 없고 누런 빛을 내며 지난 영화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천황재에서 올려다본 천황봉에 아연실색하여 표충사로 달음질치듯 내려왔었는데,
그때가 2001년11월11일이었다.
한 주라도 산에 가지 않으면 병이 날것 같은 마음에 이번에 딸까지 데리고 나서기로 한다.
전날 저녁에 딸과 결정한 것이다.
딸이 억새의 향연을 어떻게 대할지 궁금해 하면서…
**등산지도
**산행내용
갑자기 내려진 결정이라 예약도 없이 아침에 택시를 타고 가면서 예약한다.
예약이라기보다는 통보에 가깝다.
초가을의 영남알프스는 억새의 장관을 보기위해 전국의 산꾼들로 붐비는터라
41인승 버스의 엉덩이를 맞이하지 못한 좌석이 2개뿐이다.
이래저래 산정님들과 인사를 한 후 허전한 느낌이 든다.
그래 디카의 빈집만 허리에 차고 있었다.
우리 딸을 그림 같은 풍광에 담아올려고 했던 계획이 바람에 억새꽃 날아가듯 가버린다.
10시에 배내고개에 도착한다. 간월산 창립산행과 똑같은 산행시점이다.
딸과 파이팅을 외치며 후미로 출발한다.
“딸!이번엔 목말 안해준다”
“응! 아빠! 그런데 힘들면 쉬어야 돼”
이처럼 몇번을 다짐받고 제법 경사진 길을 오른다.
10여분 지났나? 힘들다고 한다.약속대로 쉬었다가 간다.
그리고 당근을 제시한다.
잘 걸으면 딸 하고 싶은 것 들어준다고 하니 문방구에 가서 3가지를 사고 싶단다.
그렇게 또 가는데 걸음이 느려진다.
원계획은 재약산은 오르지 않고 천황재에서 바로 내려서기로 했는데,
이마저도 늦어져 산님들에게 누가 될까하는 조바심에 딸을 배낭에 얹고 만다.
석남고개로 갈라지는 길을 지나 능동산에 도착한다.
가야할 능선이 시원스레 펼쳐지고 능선길은 산군들로 무척 붐빈다.
길은 빗물에 쓸려 드러난 돌팍들이 물기를 머금어 미끄러워 딸의 손을 잡고 내려오니 임도와 연결된다.
딸의 체력과 시간 때문에 계속 임도를 따라 걷는다.
북사면의 급경사로 떨어지는 얼음골 주변과 가지산,운문산,억산의 전망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어차피 천황산 못미쳐 능선에서 장쾌한 조망을 주기 때문에 대중교통 할인이 되는 사람들은 임도로 가도
무방할 듯하다.
아래 주암계곡에 우뚝 서있는 심종태바위가 날 좀보소 한다.
이에 뒤질세라 간,신불,영축,시살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임도 한 켠으로 벌개미취,닭의장풀,코스모스등 야생화들이 딸의 시선을 잡아둔다.
무등 태우기를 반복하다 임도가 끝나고 공사하다가 방치된 영남알프스랜드 위쪽으로
억새군락이 은빛물결을 출렁이고 있다.
딸에게 역광을 받는 억새와 바른쪽의 색갈차이를 물어보고 이유를 설명해준다.
이유는 빛의 산란때문이라고…
틀려도 할 수 없다.
하지만 7살때의 아빠는 모르는게 없는 아빠이기 때문이다.
12살이 되면 모르는 것도 있어 하다가 그후로 아빠는 하나또 몰라라고 한다지않는가.
샘물상회에 도착한다.
선두는 가고 중간과 후미가 모여 처음오신 여성회원님 덕분에 거나한 점심을 한다.
잘 먹었습니다.다음에도 배낭끈 떨어지도록 가져오세요!!
점심을 먹고 힘이 나는지 딸이 잘 걷는다.
그런데 등로에 빗물이 고여 있어 질퍽거려 딸을 무척 힘들게 한다.
보조를 잘 맞추어 가다가 진행이 느려져 다른 산님들을 비켜서 보내드리고
여기만 지나면 길이 좋아진다고 독려를 하면서 가보지만 이것도 잠깐.
조망이 열리기 바로 전 지점에서 다시 무등을 태운다.
드디어 조망이 열린다.
북사면의 천애절벽위에 무등을 한 채로 전날 비온뒤의 선물인 깨끗한 시계로 보는
가지산,운문산,억산의 생김생김,얼음골사과로 유명한 밀양 들판이 눈에 쏘옥 들어온다.
이번엔 발길을 돌려 천황산 억새숲으로 들어가는데 눈이 그 경치를 다 담아내지 못해 안타까울 지경이다.
힘든줄도 모르고 딸을 태운채로 재잘거리면서 정상까지 내달린다.
정상으로 오면서 딸이랑 아빠랑 기분이 고조되어 딸에게는 칭찬을 해주고
나는 시원한 맥주를 부상으로 들이킨다.캬~~이맛이야!!
완만하게 올라온 정상을 경사가 심한 바위 길을 따라 천황재로 내려서야 하는데
그 바위의 규모가 상당하다.
배내골을 중심으로 하여 보면 영남알프스의 바깥면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고
배내골로 모이는 안쪽은 완만한 육산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중에서도 천황산,재약산이 이러한 특징을 가장 많이 보여주고 있다.
딸에게 재약산을 가리키며 저기로 올라볼까하고 의사타진을 해보는데 기분이 좋은지 대뜸 그러자고 한다.
그러자하고 의기투합을 하고 내려오는데 다리가 아프다고 한다.또 무등을 태운다.
전국의 산중에 이러한 번화가가 또 있을까? 주막집에 산꾼들로 넘쳐난다.
술을 싫다하지 않는 나로서는 필요악일지 모르나 환경문제,안전문제등을 생각한다면…
이런 상황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자니 딸이 빨리 가잔다. 재약산으로 고!!
조금 가다가 다시 물어본다. “힘든데 진짜로 갈끼가?”
아무래도 바로 내려가는게 좋을 것 같아 다시 돌아와 천황재에서 바로 표충사로 하산하는 길을 택한다.
아니나 다를까 길에 물이 고여 질퍽거리자 힘들다고 생짜를 부린다.
얼래고 달래고 하여 조금 더 가보지만 이내 무등을 태우고 만다.
다리가 안좋다고 천황재에서 먼저 하산한 freeweld님을 만나지만 무등을 한지라 같이 가지 못하고
지나치고 만다.
같이 가지 못하는 미안함을 안고 딸을 배낭위에 실은 채로 30여분을 내려오는데 별로 힘들지가 않다.
그런데 내내 재잘거리던 놈이 목을 감기 시작한다.
“다희야! 너 잠오지?” 아니라고 하지만 잠이 오는 것은 사실이라 무등에서 내린다.
잠이 오려던 놈을 깨워 걸으라고하니 걷지를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어쩌라!
천천히 걸려서 가다가 쉬어가기로 하는데 쉬는 자리 옆에 도토리가 제법 보여 이를 줍느라 잠이
완전히 달아났나보다.
다시 용기를 북돋아 내려가기 시작한다.
“아빠! 내가 목말 안하고 걸어 왔으면 칭찬도 해주고 소원도 들어주고 해야 하는데,
목말을 했기 때문에 칭찬은 안해줘도 되지만 소원은 들어줘야 돼”라고 자기딴엔 걱정스러웠던지
수정안을 내 놓는다.
“지금부터라도 잘 걸으면 칭찬도 해주고 소원도 들어주지!”라고 애기하니 자신이 있는지 좋아라한다.
천황산,재약산에서 내려오는 길중에 이길이 조망도 안되는 능선을 따르다 가파른 길을 내려서는데
계곡도 없고 그저 평이한 길이다.
계곡은 비로소 내원암을 지나서야 볼 수 있다.
자신이 있어 하던 딸이 또 구원의 의사표시를 한다. 그래 오늘 아빠는 힘이 남아돈다.
넓은 길을 만나고 내원암을 곁으로해서는 콘크리트길이 이어지고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천황산에서 바로 내려 금강폭포쪽에서 내려오는 길 삼거리에 119차가 보인다.
별탈 없기를 바라면서 다리를 건너기전 옛날 길로 부도탑을 지나 수량이 풍부한 금강폭포쪽에서
내려오는 계곡으로 간다.수량이 하산한 코스의 계곡보다 훨씬 풍부하다.
딸의 얼굴에 생기가 돈다.
둘다 신발 벗고 潁 벗고 계곡에 발을 담그는데 올해처럼 뜨거웠던 여름이 그리워진다.
이제 벌써 알탕은 초밥집에서만 볼 수 있게 된 계절이되어버렸네!
갈대에 붙은 거미를 손으로 물을 모아 애비 딸이 함심해 떼어 보려하지만 놈은 떨어지지 않고
부녀의 웃음소리만 높아간다.
딸이 스틱으로 물장난을 치다가 옷을 버려 갈아 입히고 뭔가 허전한듯 하여 등목을 해달라고 하는데
조그만 손으로 물을 퍼지르는게 감질맛이 나지만 기분만은 최고이더라.
30분 가까이 계곡에서 놀다가 4시쯤에 출발하여 표충사에 들러 백일홍이 핀 계단이 엄마아빠의
처녀총각때의 사진속에 담겨있는 곳이라 이야기해주고, 경내를 둘러보고 부처님에게도 절을 하라고
권해보지만 하지 않는다. 절유치원에 다니는 딸을 둔 아비가 무안해진다.
문을 나오니 freeweld 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
매표소를 지나 길고 긴 도로를 따라 식당가주차장에 닿는다.
“다희야! 잘 걸을 때까지 아빠 따라 다녀야 돼!!!”
<천황산,재약산 사자봉의 이름에 관한 주장들>
1. 천황산-부산일보(20040513)
지난해 5월 산악관련 모 잡지에 어느 산악인의 글이 실렸다.
영남알프스 중앙에 위치한 한 산을 올라 겪었던 일을 소개한 내용이었다.
그가 오른 산은 재약산이었다.
그런데 정상에 올라보니 재약산 대신 천황산이라고 명명한 새 표지석이 세워져 있었다.
'천황산이라는 산의 이름은 일제가 붙였다'고 알고 있는 그로서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다시 과거로 회귀한 밀양시에 전화를 걸어 이의 정정을 요구하며 항의했다는 것이다.
위 산악인의 주장처럼 천황산은 일제가 붙인 이름이 사실일까.
그래서 재약산으로 다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타당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그렇지 않다.
천황산은 수백년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불렀던 고유의 산이름인 것이다.
때문에 일제가 붙였다는 주장도 터무니없는 낭설인 셈이다.
울산의 향토사학자 이유수씨(70)씨가 이 사실을 증명했다.
이씨는 지난 98년 울산에서 발행된 울산향토사연구회 향토사보 제9집에서
'천황산일식명설의 고찰'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천황산이 우리 고유의 산명인
천왕산에서 유래되었다고 역사적 사실을 들어 규명했다.
그에 따르면 천왕산은 조선조 영조 36년(1760년)에 만들어진 전통지리화인
여지도에 석남사 석골사 등과 함께 분명히 그 이름이 올라있다고 말한다.
그 근거로 성균관에서 복사한 여지도 밀양부 사본을 논문에 첨부했다.
다만 그 천왕산이 천황산으로 바뀐 것은 1987년 조선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면서 왕의 칭호를 황으로 고쳐 부른 것과 같은 논리라고 설명한다.
이는 속리산의 천왕봉이 천황봉으로 불려지고 있는 것과 같은 이유라고 말한다.
이에 따라 밀양시에서도 지난 2002년 6월 일부 산악인들이 세워놓은 재약산 사자봉 정상석을 철거하고
새로이 만든 천황산 표지석을 세워 놓았다.
이렇듯 천황산의 명칭문제가 이유수씨 노력으로 일단락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산악인들이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심지어 전문 산악지조차도 천황산이라는 산명을 빼버린 채 여전히 재약산 사자봉으로 취급하고 있다.
잃어버린 우리 것을 되찾는 것도 중요하고 그에 따른 열정도 존중받아야겠지만 냉철한 분석없이
접근한다면 이 같은 우를 다시 저지르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한걸음에 달려가 천황산을 꼭 껴안아 보고 싶은 이유다.
진용성기자
입력시간: 2004. 05.13. 09:25
2. 재약산 사자봉-한국의 산하
재약산 명칭
높이-재약산(載藥山), 재악산(載嶽山) 1,189.2m
재약산 지명-영남알프스의 명산, 재악산(載嶽山)의 "악(嶽)"에 대해서(도재국)
①재약산
②높 이 ⇒ 재약산(載藥山), 재악산(載嶽山) 1,189.2m
③위 치 ⇒ 경남 밀양 산내면, 단장면, 울산 울주 상북면
④재약산 지명 ⇒ 재약산인가 천황산인가 ?.
⑤재약산은 재약산, 수미봉, 사자봉, 천황산으로 혼동되어 부르고 있다. 또한 수미봉과 사자봉을 혼돈하기도 한다. 지형도나 대부분의 등산지도에는 재약산(수미봉 1,018m)과 천황산(사자봉 1,189.2m)이 따로 표기되어 있다.
⑥지도상으로는 재약산은 주봉이 수미봉(1,018m)이고 천황산은 주봉이 사자봉(1,189.2m) 이다. 천황산이 일제 때 붙여진 이름이라 하여 우리 이름 되찾기 일환으로 천황산 사자봉을 재약산 주봉으로 부르면서 위와 같은 혼돈이 생기게 되었다. 이에 따라 "한국의 산하"에서는 지도상의 천황산(사자봉)을 재약산으로 이전의 재약산은 수미봉으로 표시한다.
⑦"도서출판 사람과 산"의 등산지도에는 재약산을 수미봉으로, 천황산 사자봉을 재약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대부분의 산꾼들은 일반적으로 재약산은 재약산 수미봉, 천황산은 재약산 사자봉으로 부르고 있다.
⑧재약산(載藥山)인가, 재악산(載嶽山)"이가 ?지리역사의 진실 보존과 왜곡된 산 이름의 본래의 이름으로의 환원을 위해서 노력하는 도재국님은 기록의 증거를 제시하며 재약산 이름을 재악산(載嶽山)으로 되찾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증거에 의하면 재악산이 맞으나 재약산으로 널리 알려져 있어 기록에 의한 이름으로 환원되기 전 까지 한국의 산하에서는 재약산과 재악산 2개로 표시한다.★㉮영남알프스의 명산, 재악산(載嶽山)의 "악(嶽)"에 대해서(도재국)★㉯"재악산(載嶽山)"의 증거문서(고문서 및 고지도) (현진상)
3. 밀양시 답변-어느 산님의 천황산의 정확한명칭에 대한 질문의 답변20040719
우리시 홈페이지에 방문 하여주신 귀하께 감사드립니다.
귀하께서 게재하신 천황산과 재약산을 잘못 표기하고 있다는 의견과 관련하여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시에서는 2002년 4월경 등산객이 많이찾는 유명산의 정상에 설치된 표지석중 산의 명칭, 해발높이 등 표기가 바르게 되어있지 않고 재질이나 규모면에서 극히 조잡한 표지석, 또한 훼손되어 보기가 흉한 표지석에 대하여 가능한 기존의 산과 잘 조화가 될 수 있도록 자연석으로 정비한바 있습니다.
귀하께서 질의 하신 천황산 정상의 경우 종전부터 천황산 천황봉이다. 재약산 사자봉이다. 라고 일부에서 논란이되고 있었으며, 산이름 역시 天皇山이다 載藥山이다. 또는 천황산 재약산도아닌 載岳山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국립지리원의 중앙지명 위원회에서는 광복 50주년을 맞아 일본식 지명을 변경코자 각시도 지명 위원회의 의결내용을 보고받아 '95. 10. 17 심의결과 우리시 단장면 구천리 소재 천황산(재약산으로 개명건의)에 대하여는 더욱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하여 그 결정이 유보된바 있으며 '국립지리원 지도58260-837(1995. 11. 09)',
또한 우리시 밀양 3.3산악회가 국립지리원에 질의한 결과 산에 대한 지명제정, 변경은 신중히 검토되어야 할 사항으로 국립지리원에서 발행한 지도에 표기된 바와같이 공식지명은 天皇山과 載藥山은 구별되어 있다라고 회신(국립지리원 지도58269-381(96.05.22)되어 왔으며, 동내용에 대하여 '96.06.13 경남매일신문, '99.09.10 밀양신문 등에 게재 홍보한바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시에서 표지석 설치 당시까지 산이름이 개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국립지리원에서 발행한 지도에 표기된 공식 지명인 天皇山 海拔 1,189m, 載藥산 海拔1,108m로 표기 설치하였음을 알려드리오니 널리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