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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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년에는 악字로 시작하는 산을 두번째로 오른다.개인 사정으로 부산에서 출발 하지 못하고 서울에서 출발 황골에서 산정식구들과 만나기로 하고 강남 고속터미널에 나오니 여기 저기서 스키장으로 가는 손님들이 더 많은것 같다.
그래서 인지 원주로가는 고속 버스는 절반이 비어있다. 편안한 마음으로 영동고속도로에 접어더니 아니나 다를까 스키장비를 차 등에 업고 줄줄이 달려가는 자가용들이 넘무도 많다.나도 간간이 스키를 타곤 했었는데,겨울산행에 맛이 들여져 산을 찾는 사람이 되었으니 경제적으로는 나에게 큰 덕이 되었다.
원주에 도착하여 황골로 가는 시내버스를 기다리니 30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한참을 기다려 버스를 탓더니12시나 되어야 출발 한다고 그런다.하는수없이 택시를 타고 황골에 도착하니 12시가체 되지 않았다.
산정 식구들과 만나 산행을 시작하여 황골을 거처 입석사에 오르니 벌써 숨이 턱을 막는다.헐덕이는 숨을 고르고 선두를 쫓아서 갈려니 무척이나 힘이 든다.
간간이 잔설이 얼어붙어 미끌그리기도 하지만 그리 큰 부담은 되지 않았다.다만,심한 경사가 나에게는 부담이었다.
계속되는 경사면은 8부능선을 올라서야 차분한 형세를 하니, 이제는 한숨을 돌이켜 멀리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면서 눈덮인 산길을 무념무상으로 비로봉을 향하여 발길을 옮긴다.
드디어 보로봉 1288m치악산의 최고봉으로 정상에는 청명한 날씨로 시야는 더없이 맑고 탁 터여서 산인들의 흘린땀을 보답이라도 하듯이 산신령께서 날씨로 보답을 한다.이 비로봉은 원주에살던 용 진수씨가 신령의 계시에 따라 10년동안에 세웠다는 세개의 돌답이 명물로 남아있다.
비로봉을 뒤로하고 내려오는길은 일년에도 몇번씩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는 사다리 병참길로 접어 들기전에 산정식구들의 무사고를 기원하면서 나도 아이젠을 하고 천천히 발길을 세렴폭포로 옮겼다.
무시무시하던 사다리 병참길을 통과하여 내려오니 치악의 말대로 다리가 후들 그린다. 이제 구룡사에 도착, 무사히 산행을 마쳤다는 신고를 구룡의 용들에게 고하고 하산을 제촉 하였다.
구룡사는 신라문무왕때 의상조사에 의해 개산된 이래 신라 말엽의 도선국사가 창설되었고 현재의 대웅전은 건축양식으로 미루어 조선숙종이후 영조 또는 정조 무렵에 세워진것으로 짐작 된다고 한다.
치악의 험준한 산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의 한숨과 산아래 하산酒 한잔에 힘들었던 산행이 눈녹듯 사그라들어 피곤함을 잋고 부산으로 향했다.
그래서 인지 원주로가는 고속 버스는 절반이 비어있다. 편안한 마음으로 영동고속도로에 접어더니 아니나 다를까 스키장비를 차 등에 업고 줄줄이 달려가는 자가용들이 넘무도 많다.나도 간간이 스키를 타곤 했었는데,겨울산행에 맛이 들여져 산을 찾는 사람이 되었으니 경제적으로는 나에게 큰 덕이 되었다.
원주에 도착하여 황골로 가는 시내버스를 기다리니 30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한참을 기다려 버스를 탓더니12시나 되어야 출발 한다고 그런다.하는수없이 택시를 타고 황골에 도착하니 12시가체 되지 않았다.
산정 식구들과 만나 산행을 시작하여 황골을 거처 입석사에 오르니 벌써 숨이 턱을 막는다.헐덕이는 숨을 고르고 선두를 쫓아서 갈려니 무척이나 힘이 든다.
간간이 잔설이 얼어붙어 미끌그리기도 하지만 그리 큰 부담은 되지 않았다.다만,심한 경사가 나에게는 부담이었다.
계속되는 경사면은 8부능선을 올라서야 차분한 형세를 하니, 이제는 한숨을 돌이켜 멀리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면서 눈덮인 산길을 무념무상으로 비로봉을 향하여 발길을 옮긴다.
드디어 보로봉 1288m치악산의 최고봉으로 정상에는 청명한 날씨로 시야는 더없이 맑고 탁 터여서 산인들의 흘린땀을 보답이라도 하듯이 산신령께서 날씨로 보답을 한다.이 비로봉은 원주에살던 용 진수씨가 신령의 계시에 따라 10년동안에 세웠다는 세개의 돌답이 명물로 남아있다.
비로봉을 뒤로하고 내려오는길은 일년에도 몇번씩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는 사다리 병참길로 접어 들기전에 산정식구들의 무사고를 기원하면서 나도 아이젠을 하고 천천히 발길을 세렴폭포로 옮겼다.
무시무시하던 사다리 병참길을 통과하여 내려오니 치악의 말대로 다리가 후들 그린다. 이제 구룡사에 도착, 무사히 산행을 마쳤다는 신고를 구룡의 용들에게 고하고 하산을 제촉 하였다.
구룡사는 신라문무왕때 의상조사에 의해 개산된 이래 신라 말엽의 도선국사가 창설되었고 현재의 대웅전은 건축양식으로 미루어 조선숙종이후 영조 또는 정조 무렵에 세워진것으로 짐작 된다고 한다.
치악의 험준한 산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의 한숨과 산아래 하산酒 한잔에 힘들었던 산행이 눈녹듯 사그라들어 피곤함을 잋고 부산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