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 산행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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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을 하기 위해 모처럼 집을 나서고 있다. 일상에서 조금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간직하고파 길을 떠난다. 택시를 타고 무작정 조방앞으로 갔다. 덕유산 산행을 알리는 안내자의 말에 따라 차에 오른 나는 자리를 잡고 명상에 잠기고 있다.
어느새 차는 출발 진영, 남강, 진주를 지나 산청휴게소에서 들려 잠깐 휴식을 취한 후 덕유산 톨케이트를 빠져 나와 통안 마을을 지나 산행 기점인 안성매표소에 도착했다. 준비는 대충했지만 부족한 것이 많았다. 매표소에서 넓직한 길을 따라 20여분 오르니 작은 공터에서 길이 두 갈래로 갈라졌다.
오르는 길 좌측의 칠영폭포는 말 그대로 장관 이였다. 눈으로 쌓인 계곡의 바위와 나무 말 그대로 환상의 그림 이였다. 그리고 좌측 다리를 건너 본격적인 등산로로 접어들어 산행을 시작했다.
눈 내리는 산행은 처음 이지만 너무나 아름답고 포근했다. 온∼ 산하의 생명들이 모두 잠든 산자락. 거대한 능선에는 오직 눈뿐이다. 여름내 무성했던 나무도, 풀잎 모두도 자연의 품속에서 포근하게 감싸주고 있었다.
눈이 그립다. 덕유산에는 어제부터 많은 눈이 내렸다. 하기야 도회지의 눈은 땅에 닫기도 전에 먼지가 묻어 눈다운‘순백’의 눈을 보려면 먼 길을 떠나야 한다. 그래서 난 오늘 큰맘먹고 길을 떠났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혼자 살짝 떠난 여행 너무나 잘 왔다고 생각했다.
눈을 보기 위해 맘먹고 찾은 무주 덕유산 향적봉 정상 능선은 이미 눈 이불을 덮어썼다. 이파리를 모두 떨어낸 나무들도 눈꽃을 피웠다. 나무 둥치도 눈으로 버물러 놓은 것처럼 하얗다. 하고많은 산중에 왜 덕유산 눈꽃이냐고.
덕유산 아랫녘으로 금강 줄기가 흐른다. 낮이면 햇살 받은 금강줄기에서 수증기가 피어올라 눈구름이 되고, 오후 늦게 부터 덕유 능선에 눈으로 내린다. 그래서 덕유의 겨울 능선은 막 빨아놓은 모시옷을 입은 것처럼 새하얗다.
새벽엔 아무도 밟지 않은 ‘신설(新雪)’이 깔린다. 길은 세상 어느 산길보다 화려하다. 등산로 주변에는 나무마다 서리서리 상고대가 열렸다. 마치 얼음터널을 지나는 것 같다.
상고대와 눈꽃은 다르다. 우리 국어 사전에는 상고대가 나무나 풀에 눈같이 내린 서리라고 풀이되어 있다. 영하 6도 이하, 습도 90% 이상일 때 상고대가 핀다. 안개가 많고 기온 차가 심한 해발 1,500m 안팎의 고산지대에서 주로 볼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상고대는 습기를 머금은 안개가 급격한 추위로 나무에 엉겨붙은 것으로 마치 밀가루를 뒤집어 씌워놓은 것처럼 새하얗다. 상고대를 오래 감상할 틈도 없이 눈구름이 몰려왔다.
시야는 고작 20m 정도 앞은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눈은 내리고 있었다. 한참만에 어느 또 다른 정상에 도착을 했는데 이건 장난이 아니었다. 계속 매서운 바람과 함께 내리는 눈이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내렸다. 땀은 억수 같이 나는데 매서운 눈바람이 싸늘하게 식혀 주고 있었다.
힘든 산행 한참 후 약 3시간만에 덕유산 최고봉인 향적봉(1,614m)에 도착했다. 향적봉 정상에 서니 사위가 온통 설산 이다. 향적봉은 설악산 끝 청보다 10m 정도 더 높은 1,614m. 정상은 백두대간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 그러나 향적봉에 산줄기를 대고 있는 남덕유는 대간에 속해있다. 대간에서 한발자국 벗어나 대간을 보는 셈이니 풍광이 좋을 수밖에 서남에서 동북쪽으로 뻗은 산줄기가 백두대간 능선이다.
지리산의 천왕봉과 반야봉, 가야산, 속리산으로 이어진 고봉들이 저마다의 위용으로 아득히 펼쳐진다. 지리산을 거쳐 육십령을 지나온 대간은 할미봉, 남덕유산, 삿갓봉, 무룡산, 삼봉산, 대덕산, 삼도봉을 지나 추풍령으로 이어진다.
향적봉 대피소를 지나면 눈꽃은 절정을 이룬다. 주목과 구상나무가 적당히 섞여있는 산길. 나무들은 손가락 굵기의 앙상한 가지에도 제 몸뚱이보다 더 두꺼운 눈살을 붙이고 있다. 검은 나무 둥치와 새하얀 눈이 대조를 이룬다.
덕유산의 정상능선에는 거센 바람 때문에 큰 나무가 없다. 해발 1,500 ∼ 2,500m의 아고산대 지형. 습기는 많고 바람은 거센 평원지역이라 산죽과 철쭉 같은 키 작은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그만큼 거칠 것이 없어 조망이 뛰어나다.
발아래 산이 있고, 숲이 있다. 아기자기한 능선 길을 따라 가다보면 어느새 덕유 중봉이다. 바람 거센 덕유중봉에 서니 굽이치는 남덕유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덕유산의 산새는 ‘파노라마’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곳이다. 능선이 푹 꺼지기도 하고 다시 되잡아 채며 올라서기도 한다. 한 굽이를 넘어서면 다시 다른 굽이가 시작된다. 저 멀리서 태산이 파도처럼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 같다. 산 뒤에 산이 서있고 한 겹 한 겹 모두 눈을 뒤집어썼다.
정말 장엄하다. 아∼ 저 산이 있으니 우리가 여기서 숨쉬고 있다. 그리고 힘차게 살아갈 수 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산 길은 너무 힘들었다. 백련사로 내려오는 길은 너무나 험난했다. 산이 높을수록 계곡은 깊은 법. 계곡미로 치자면 구천동은 첫손에 꼽힐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물소리가 산을 울리는 여름과 달리 겨울 구천동은 고요하다.
계곡은 반쯤 얼어붙었고, 그 위에 눈까지 내려앉았다. 산길도 오밀조밀하다. 어는 정도 내려오니 그리 좁지도 않고 넓지도 않은 길은 걷기에 더없이 좋았다. 백련사는 산중턱에 고즈넉하게 앉아있었다. 신라 신문왕 때 백련 스님이 초막을 짓고 수도하던 중 흰 연꽃이 솟아 나온 곳에 절을 창건했다고 한다. 천년의 사찰로 널리 알려진 백련사로 내려와 구천동에 도착 산행을 무사히 마치고 부산으로 향했다.
이 세상에 태어나 흙을 한번도 밟지 않고 산행을 해본 적은 처음 이였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내 기억 속에 영원히 간직하리라 맹세를 한다. 눈부신 설산을 두고 세상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 코끝과 귀가 얼얼하게 매서운 바람도 금새 까먹었는지, 돌아서자마자 다시 덕유산이 그립다. 2004.01.18 산행을 마친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