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천관산은 기기묘묘하고,신령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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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초입! 살아가는 일이 가끔 주춤거려질 때 남도의 산을 찾는것도 퍽 괜찮다싶어
찾은 그곳.12월1일 전남 장흥 천관산은...아! 3월의 어느 봄날처럼 따스한
햇살 아래 졸고 계신 것 같았다. ( 중식사진자료참조-반팔 T 입은 두분 확인 )
호남 5대 명산가운데 4개의 산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지만, 유독 천관산은
도립공원으로 뒷전에 밀려 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덩치가 작기 때문이리라.
(능가산이 솟아있는 변산반도는 채석강 등 해안가 명승지까지 포함되었기
때문에 국립공원이 될 수 있었다.)
사실 천관산은 대덕면쪽에서 바라보면 그저 사발을 뒤집어 놓은 듯, 별볼일
없는 야산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들이 찾은 길, 관산면 소재지를 지나
천관사쪽으로 방향을 틀면(산행대장님께서 이때쯤 차창을 보시면서 소개함)
눈이 휘둥그레지고 만다. 우선 기기묘묘하고 신령스럽기 까지한 형상의
구정봉(九頂峰)의 암봉군에 혀를 차고, 그다음 구정봉에서 정상인 연대봉
(煙臺峰)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미끈한 모습에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지제산(支提山), 천풍산(天風山), 풍천산(楓天山) 이라고도 불리는 천관산
의 영묘한 모습을 극찬한 글들을 <신증동국여지승람>과 같은 고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천태산 기슭에서 태어나 9살의 어린나이에
"천관사를 떠나 허공을 사다리 삼고 봄 하늘에 올라서서 허리굽혀 사람 사는
곳을 내려다보니 티끌에 덮힌 세상 넓기도 하네" 라는 시를 지은 조선영조때
실학자 존재(存齋) 위백규(魏伯珪)는 천관산 인물지리서랄 수 있는 <지제지
(支提誌)>를 펴내면서 서문에 다음과 같이 적어놓았다."우리나라는 산이
많아 큰 산은 여러 고을에 걸쳐있고, 작은 산은 한 고을을 진수(鎭守)하니
천관산 같은 산은 지극히 작은 산이다. 그러나 예로부터 특히 신령스럽고
기이하다고 해서 두류산(頭流山:함남 서천에 소재한 三神山중 하나)이나
서석산(광주 무등산의 다른 이름)이 높고 크다고 하나 천관산보다 자랑
할 수가 없다".....
★초입 수동마을에서 불영봉->연대봉으로 할딱 거리며 오를 땐 개척등반 하는
기분이었고... 정상을 향한 또 한순간의 절정을 위하여 머리맡에 흐르는 땀을
연신 훔치며 오르다 뒤를 돌아 보았을땐...해무(海霧)가 살짝끼인 남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면서 아! 저 끝없이 빼어난 풍경... 파도의 자유조차도 가둬버린
진짜 호수 같은 저!...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의 아름다운 세상을 본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이 도시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 나는 섬이되고...
무거웠던 발걸음도 이때부턴 가볍다. 돌멩이도 봄날엔 기지개를 켠다고 했지?
12월 초겨울인데도 오늘이 봄날 같아서인지? 군데군데 철쭉이 변신하여
황홀하게 꽃을 피우고 있으니 봄 마중 나왔는지? 산꾼들의 탄성으로 눈과
발걸음이 자꾸 멈춰선다. 살다가 나도 저렇게 몸 한번 바꿔볼 수 없을까?
★정상 연대봉에는 봉수대가 잘 축조돼 있었다.(기념사진 찰칵 한 곳)
밤에는 불, 낮에는 연기로 급보를 전달키위해 세워진 천관산 봉수대는
고려의종 3년 (1160년대) 장흥 억불산(518m)과 강진 병영의 수인산(561.2m)
이 교신하기 위해 축조된 것이라 전해진다. 세월이 흐르면서 기단석만 남고
허물어진 것을 86년 마을사람들이 다시 쌓아올린 것이다.
옛날 제주도 한라산에서 보내는 신호를 받던 곳인데 지금도 날이 좋을때면
한라산이 보인다나?.. 하지만 오늘은 약간의 박무현상으로 하늘이 뿌연탓인지
기대했던 한라산은 보이질 않았다...
정말 이곳에서 휘둘러보는 조망은 막힘이 없다. 우선 동으로 고흥만 건너로
팔영산이 뚜렷하고, 남으로는 완도의 신지도, 고금도,약산도등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이 방향으로 한라산이 가물거리며... 남쪽에서 시계바늘 방향으로는
해남 두륜산이, 서쪽으로는 주작산, 그 오른쪽으로는 영암 월출산이 하늘금을 이룬다.
북으로는 무등산과 담양 추월산이 시야에 와 닿는다.
(큰 지도를 펴놓고 확인 바랍니다.)
★연대봉을 뒤로 미루고 대장봉(大藏峰:네모난 바위들이 겹쳐있어서 만권의
책을 쌓아 놓은 것 같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정상 환희대 거쳐 구정봉으로
<구정봉-왼쪽부터 대장봉(大藏峰) 천주봉(天珠峰) 문수.보현봉(文殊普賢峰)
대세봉(大勢峰) 선재봉(善才峰) 관음봉(觀音峰) 신상봉(神象峰) 홀봉(笏峰)
삼신봉(三神峰)>
내려서니 갈림길이 두어군데 있어. 결국 장안사와 천관사로 팀이 나누어지는
불상사(?)를 연출했지만... 구정봉 능선에서 바위들을 넋을 잃고 열심히 쳐다
보면서 열심히 등반선을 그어보았다. 구정봉 바위들은 정말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환하게 편 얼굴, 일그러진 얼굴, 구부러진 허리 등 천태만상을
다 모아놓은 듯 하다. 하지만 결코 자만스럽거나 거친 모습의 바위는 보이지
않았다. 모두 겸손하고 온화한 모습 뿐이었다. 그렇다. 그 옛날 89암자가
들어섰던 불가의 산이라지만 어쩌면 천관산, 89암渼 모두 부처를 따로
모시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바로 이 암봉 하나하나 돌멩이 하나하나가
부처일 수 있기 때문이다. 큰 바위가 석가모니불 이었다면 그에 비해
조금 작고 온화한 모습의 바위는 관음보살이거나 문수보살이었을 것이다.
진죽봉(鎭竹峰) 석선(石船) 비로봉(毘盧峰) 중수봉(衆秀峰) 등 계곡 건너편
능선의 바위들도 기이한 형상이거나 마찬가지...<지제지>에 나온 불교설화에
의하면 관음보살이 석가모니의 말씀을 따르고자 진불(眞經)을 돌배(石船)에
싣고 바다를 건너 천관산에 왔는데,그 불경을 내려놓은 곳이 대장봉,돛대가
진죽봉,돌배가 석선이라나?...구정봉일원이 현란한 바위꽃이라면 연대봉에서
대장봉까지 이어지는 능선은 결코 화려하지않으면서 풍요로움을 느끼게하는
쇠잔등처럼 편안한 모습이다.그리고 이 산은 마치 거대한 공룡지느러미같은
기암괴석이 주능선과 산자락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었다.이 기암들을...
옛사람들은 주옥으로 장식된 천자의 면류관으로 보고 천관산(天冠山)이라
이름 붙인 것인가?...
★이후 산죽과 잡목으로 어우러진 사이로난 사면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니
마지막 하산지점 체육공원밑 장천재(長川齋)앞의 동백나무는 산들산들
불어대는 봄바람(?)을 참지못해 봄 햇살(?)을 즐기기 위해 뛰쳐 나왔는지
꽃망울을 터뜨린 송이의 꽃이되어, 아니 꽃 대궁이 되어 장천재 앞을
환히 밝히고 있었다.
★내 작은 등산가방 어깨위로 벌써 천관산의 추억이 업히고 들어붙은
시선을 던지며.....생수로 갈증난 목을 축이고 오늘 기쁨산행 끝!
회원님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담에 뵈올때까지 부디 옥체보존하시옵소서!!!
※하행길 시간에 쫓기다보니 회원님들 좀 조급(?)해져서...그래도 안전운행
하신 기사님 퍽 수고하셨습니다.그리고 김ㅇ수산행대장님,책임감땜에 감기
몸살의 몸으로 오신 이ㅇ미총무님,고향순천에서 달려와 기꺼이 산행안내
하시고 다시내려 피곤한 몸으로 손수운전해오신최ㅇ호대원님등 집행부님들
모두 수고하셨음에 감사드립니다.
댓글목록
호기심의 여왕 쭈~님의 댓글
호기심의 여왕 쭈~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저도 가고파지네요..박사님의 글에서 산의 매력이 느껴지는걸요? 하지만 전 이번 일욜에는 바다로 갑니다..산과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