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종일 설(雪)...설(雪)...폭설과 함께한 덕유산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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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1. 26. 일요일 아침! 걱정스런 맘으로 현관문을 여니 반갑지 않은 비가 보슬보슬 뿌리기 시작한다. 서둘러 햇살 불러들이고 싶지만 어디 자연이 내 맘대로 하길 놔두나....하지만 내가 오늘 찾는 그곳 덕유산은 눈이 내릴텐데 하면서 오히려 들뜬 맘으로 반신반의한다. 그래도 집밖을 나설 땐 쪼글쪼글 늙어 가지고, 맘은 수학여행가는 기분이다....
비 땜에 37명의 산정님을 모신 버스는 도착지까지 차창엔...비가 하염없이 많이 내리다..눈 조금...비는 점점 많이 뿌리고..혼잣말로 눈을 처음 보나! 참 못 말릴 중생이로고...지난가을 화왕산에서 비 땜에 질렸었는데, 아니 이 겨울에 온종일 비 맞을 일 생각하니 걱정이 태산이다. 그때 붉은 해가 왜 그리 그리운지?
산청휴게소(09:40)지나 안성매표소(10:50)도착시까지 내 맘속엔 바람이 불고 아팠지만...도착즉시부터 와! 눈이 뿌리기 시작하니...아! 따봉을 속으로 외치며 나는 이내 행복하였습니다. 산행대장님의 주의. 당부의 말씀 듣고, 인원점검후 안성매표소에서 산행시작(11:00)...
등산초입부터 하늘이 내려준 사랑이라 믿으며, 푹신한 눈길, 사랑의 길을 지상의 동행자들과 함께 오늘 전개될 하얀 눈 속의 꿈에 젖어 부드러운 눈송이를 맞으며 조용히 하나가 되면서 걷는다. 이 산이 우리를 포근하게 감싸줄 줄 알았는데....
20여분 걷고 난 이후부턴 점점 눈도 많이 내리고, 바람소리도 제법 나기 시작하고, 숨도 차고, 땀도 나기 시작한다. 같이 걷던 동행자들이 서서히 힘이 들어 안보이기 시작한다. 응달 안성계곡 꼬부랑꼬부랑 산길을 1시간쯤 후는 숨껄떡이며 걷다 두어 번 짧게 쉬기를 반복했으나 온 몸엔 땀벅벅이다.
여태까지는 앞뒤 회원님과 거친 호흡 몰아가며 얘기들을 몇 마디씩 웃기는 얘기도 나누었었는데...이후부턴 부드러운 눈송이는 없고 우리를 휩쓰는 거침없는, 효과음까지 나는 바람소리와 눈보라뿐! 갑자기 혼란스럽게도 앞이 안 보인다. 때문에 선두가 길을 잘못 들어 우린 그야말로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러셀로 눈길을 힘겹게 한발한발 헤쳐나간다.
오르막길 러셀! 겪어보니 정말로 힘이 들었다. 이때 힘든 것은 나만이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이런 푹푹 빠지는 눈길을 헤쳐서 길 만드는 이 작은 행복을 자축하면서 고지가 바로 저긴데 하고 힘껏 오르다 보니 능선에 드디어 올라섰다. 여기가 동엽령! 이곳엔 거친 바람과 함께 앞을 가리는 눈보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 눈도 다같은 눈이 아니구나....
동엽령(12:40)→송계사 삼거리:백암봉(13:40)→덕유평전→중봉→주목군락지→향적봉 대피소(14:40)까지는 시베리아 사람처럼 모두들 모자 푹 덮어쓰고 입과 귀를 칭칭 가리고 눈만 빠끔히 낸 채 하얀 겨울을 걷기 시작한다.(이땐 안경이 아니라 물안경(수경)이 그리웠다) 눈 속에 있는 것이 설중매(雪中梅)뿐이더냐? 설중아(雪中我)를 찾아봄도 해롭지 않을터...
공포의 능선길 백설의 "은밀한 유혹"에 신화 같은 신천지가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데...거리상 멀고, 심리적으로 먼 위대한 겨울의 덕유산을...살갗을 파고드는 추위쯤이야 말없이 견디어야 함을 미덕으로 여기고 기분 좋게 힘차게 걷는다.
전구간이 오르막 일변도에다 가파른 바윗길 구간이 서서히 진을 뺀다. 그 길엔 눈보라에 바위들이 벽화 되어 걸작품을 연출하고 있고... 힘든 길엔 숨차 비틀거리고, 내리막엔 저리로 꽈당 나가떨어지고.... 아! 눈길을 몰라서 아름다울 수 있는가?....온통 산하가 어제 "인터넷 대란"처럼 오늘은 "눈의 遺"을 일으켰는지? 웅장한 스케일의 『눈의 황제』앞엔 속수무책이다. 계속 뿌려대는 눈보라에 가려 하늘은 보이질 않고, 시계제로 상태이다. 가끔 10∼50m까지 시야가 확보될 뿐...
모두들 향적봉 대피소로 향하는 그리운 마음 한 자락 끝에 잡고 끝없이 전진 전진한다. 정말 "걷는 희망"을 완성하려고 지금 여기서 들숨날숨 거칠어지면서 퍽 주저앉고 싶은 내 망설임을, 침묵을, 가슴에 꾹∼심으면서 말도 거두어들인 채 꾸역꾸역 걷는다. 이때부턴 아름다운 덕유산을 노래하게 할 기력조차 없다. 시뻘건 얼굴, 거친 숨소리, 체온 내려 탈수현상도 좀 나타나고....한번뿐인 가장 소중한 목숨이거늘, 아!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하나.....냉혹한 현실, "인생은 저지른 자의 몫이다" 란 누구의 말씀 떠올리며 내 자신을 달래본다.
향적봉 향하여 뚫어진 눈길은, 가끔 인적도 없고 자취도 없이 사라져 약간 혼란스러운 적도 있었지만, 고독 속에 나를 길들이는 긴 시간이 되어 그 끝이 보이지 않드래도 내게로 가슴불빛 잃은 발걸음들이 울부짖으며 끝도 모를 싸움을....고독한 산정님들의 불타는 영혼을 간절히 빌어본다. 턱까지 숨이 차고 그 어떤 거센 저항이 있드래도 저마다 한발 한발 눈보라 속을 헤치며 이 세상 넓은 싸움터에서....인생의 노영안에서 "영웅이 되거라"고...산정님들이여! 꿋꿋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게 하소서---꿈의 페달을 끝까지 밟으소서!
오오! 눈부신 고립은 중봉에서 끝이 났다. 이제 주목군락지로 들어서니 바람이 잠잠하다. 저마다 주목들이 두툼한 상고대 옷을 입고 하늘금을 이루며 맘껏 폼낸다. 저! 눈을 흠뻑 뒤집어쓴 두툼한 상고대의 겨울 나무들은 봄이 되면 스스로 열을 뿜어 제몸에 푹덮인 눈을 녹이겠지? 폭설이 난무하는 저 나무에도 희망이 피어나는데.....새해희망도 멀리찾질 말고 바로 오늘 찾으라는 교훈을 가슴에 그리면서, 저마다 벙어리 삶 묵히며 꿈을 쥐고 걷다보니 아! 드디어 향적봉대피소에 도착!(14:40)
그곳은 구름처럼 몰려든 산꾼들이 있어 발디딜 틈이 없다. 정말 지친 날개 쉬어갈, 식사할 한 평의 땅도 없다. 먹고살기를 작정한 미욱한 인간들의 가열찬 몸부림을 모두다 봤다. 나의 일행 3명도 곧바로 동화된다. 식사 중 젓가락사이를 빠져나가는 체온들이 나의 손을 마비시켜 손가락이 끊어질 듯 아프다. 눈보라 속의 눈을 먹는지, 밥을 먹는지 눈 밭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덜덜덜 떨면서 콧물 흘리며 먹는 폼이 가관이다. 이땐 겨울 산행에서 후회막급이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임을... 금방 잊고 또 주말이면 산을 찾을 테지....
점심식사이후(15:15) '아니온 듯 다녀가소서' 대피소 푯말처럼 컵라면 쓰레기 봉지 배낭에 달고 덕유산 상봉인 향적봉을 찾는 동안 눈보라 속의 눈 잔치는 계속된다. 향적봉에서 하산 길에서는 수월한 내리막이라는 희망이 하나 더 생겼다. 온통 눈 난리 부르스를 친 후 내리막길.... 여러 산정님들과 합류해서 반가운 인사 나누며 하산하는 이 길은 바람한점 없이 출발 때처럼 부드러운 눈만 내린다.
백련사 까지는 계단이 경사지엔 가끔 있었지만 즐거운 내리막길인데다 푹신한 눈길이다. 걸음에는 자연 가속도가 붙는다. 백련사(910m)는 절간(?)같이 바로 적막 공산이다. 절마당에 버티고 서서 아무리 둘러보아야 움직이는 것이라곤 우리 산정님 말고는 없다. 생수로 목을 축이고 뒤돌아 서서 대웅전을 향하여 합장 한번하고 좀 지겹게 평지 하산 길에 나선다.
이때부턴 좀 느긋하게 서로 얘기꽃 피우며 일주문 앞에선 여러 폼으로 사진촬영도 하고, 폭설과 지옥을 헤매며 씨름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남녀가 눈 속을 뒹굴며 눈싸움을 어느새 즐기고 있다. 그야말로 겨울동화다!!....
이후 서둘러 눈 덮인 이속대→안심대 거쳐 하산하니 오늘 고행과 기쁨이 교차한 눈 산행 모두끝!(18:30)
삼공리(18:50)출발→산청휴게소에서 석식(20:00∼20:20)→시민회관 도착(22:00)
눈이 대란, 반란을 일으켜 오늘 진정 "눈의 지존"을 봤다. 산정님들께 꽃중의 꽃, 눈중의 눈.... 그야말로 눈의 명품을 설선물로 선사받고 '행복의 열쇠'를 거머쥔 몸으로 귀가하게 해주신 산행대장님, 총무님, 고문님 참 수고 하셨습니다. 그럼 설쇠고 뵙겠습니다. 그때까지 부디 옥체보존 하시옵소서...
※덕유산에서의 하루는 오직 숭고함 속에서 지냈으니 유니님, 마스코트님의 아름다운 글이 계셨지만, 고백하지 않고는 가슴이 타들어 갈 것만 같아, 늦게나마 저의 마음을 적어봤습니다. 지루한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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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박사를 꿈꾸며님의 댓글
나도 박사를 꿈꾸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아...이 조은 글솜씨....추억의 존음악과 함께.....난 언제 박사님처럼 될까...특히 음악이 더 감미롭따..
박사님의 댓글
박사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계미년 새해가 밝았습니다.산정님! 멀리 설악산 가신님들 무사히 다녀오셨는지요?귀성차량땜에 좀 고생하셨으리라...저는 설차례및 고향에서 성묘후 처가방문...방금 귀가 했슴돠.이틀동안 한복에 두루마기 걸치고 다니니 좀 젊잖아진 것 같앴어요.산정님! 새해엔 모두 복많이 받으시구,건강하신 모습으로...우리의 몫.우리의 운명을 개척해 나갑시다...여고시절님!먼저 반갑습니다.님께서는 음악 제목까지...자주 뵙기를 원하옵니다.그리구 철부지님,저니님,roger님,마스코트님등등...못난 놈의 글에 리플까지 달아주시니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