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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심양)고구려,발해는 어디가고 청(淸) 고도(古都),세계문화유산으로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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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심양)고구려,발해는 어디가고 청(淸) 고도(古都),세계문화유산으로 남아


- 언제 : 2005.7.30
- 얼마나: 14:20~17:56
- 날 씨 :맑음,무더위
- 몇명:33명
- 어떻게 : 부산 산정산악회(http://mysanjung.co.kr) 따라서
- 테마:세계 문화유산답사




14:20~38
청주공항을 출발한 비행기가 심양공항에 도착하게 되고, 넓다란 도로를 따라 달리는 차창 밖으로 21세기 건물이 눈에 들어오면서 내가 중국에 도착했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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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 국제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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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건물

15:35~49
시내 고려식당에서 식사를 한 후 청나라 고궁을 관람한다.세게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으로 상당히 낡았다는 인상이 짙지만 형태는 온전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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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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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0~5
중국이라는 규모와 TV에서 본 자금성을 상상한 선입관때문에 생각보다는 아담하고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지붕은 노란색이 주종을 이루고 테두리는 청색으로 되어있는데 가이드의 설명으로는 청색은 유목민이 가까이 하는 초록빛 초원을 상징하고 노란색은 황토를 의미한다고 한다.그 이외 화려한 단청이 눈에 띄이고 돌로된 것들도 세심하게 조각해 놓아 초기에는 상당히 화려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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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정치를 했던 숭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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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7~16:03
황권을 상징하는 꿈틀거리는 용들을 바라보는 순간 "마지막황제 부의"에서 본 배경이 바로 여기인 것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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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0
현재 심양은 인구 700만의 중국 동북 삼성 최대도시로 중국에서 다섯손가락에 꼽히는 곳이다.한때 고구려 영토였고 또 한때는 발해의 영토였던 곳이다.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심양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 일찍이 전국시대부터 개발된 도시로 한대(漢代)에는 요동군에 속했고 뒤에 5세기 초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요동정벌로 고구려 영토에 속해 있다가. 다시 당(唐)의 지배 하에 들어가서 심주(瀋州)가 되었다.

그 후 발해 전성기엔 발해의 영토였다가 요금시대엔 동경로, 원(元)대에는 심양로가 설치되었으며, 명(明)은 변경의 요지로 삼아 심양위를 두었다. 그리고 누르하치가 여진부족을 통일하고 세력을 키운 뒤, 1625년 요양(遼陽)에서 이 곳으로 수도를 옮기고 성경(盛京)이라 개칭하였으며, 1644년 북경으로 국도를 정한 뒤에는 이곳을 배도로 삼고 봉천(奉天)이라 명했다.

청조가 멸망하자 심양은 동북지방 군벌 장작림 정권의 본거지가 되었으며 1932년 일본에 의해 만주국이 건국되면서 봉천시로 만주국 제1의 도시가 되었다. 조선 말기와 일제시대에는 학정과 수탈을 피해 많은 조선족이 이주해 지금까지 정착해 살고 있으며, 한국 거리도 번화하게 형성되어 있다.

심양시에는 세계에서 2번째로 큰 코리아타운이 형성돼 있다. 이곳은 일제시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던 8명의 독립지사 부인들의 상점이 문전성시를 이루면서 독립운동의 중추 역할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현지인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한민족의 전통과 자긍심을 지키는 심양시의 코리아타운은 한민족 교류의 훌륭한 모델이라고 생각된다. 세계 각지에 코리아타운이 많지만 조선족 혹은 교포의 권익을 지키는데만 목적의식을 두지 않고 현지와 조화되면서 한민족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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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0~17:40
고궁관람을 마치고 코리아타운(Korea-town)인 서탑지역으로 갔다."한인지역"이자 조선족 거리이다.사방 1km의 거리로, 조선족 백화 상점과 한성 구물 광장의 빌딩을 중심으로, 활발한 경제활동의 지역이자 상업의 지역으로, 소비의 중심 지역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본 풍경은 하루 한끼를 해결하고자 격렬하게 따라붙는 어린 꽃제비(거지)와 나이든 할머니,아기를 등에 업은 초라한 몰골의 추격을 피하기가 쉽지 않았다.한편으로는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우리를 안내한 여자 가이드인 박금화씨 설명으로는 만약 한사람에게 돈을 적선하면 벌떼처럼 달려든다는 곳이다.실제 한분은 그런 경우를 당했다.

17:53~6
서탑거리를 빠져나와 혼하강가로 갔다.물빛이 흐려서 혼하강인데 오늘은 빗물때문에 상대적으로 맑다고 한다.유유히 흐르는 저 강물에 말의 목을 축였을 광개토대왕을 떠올려본다.누구의 동상인지 모르겠지만 갑옷이 뒤로 수평되게 휘날리며 힘차게 전차를 모는 저 모습이 바로 고구려와 발해의 기상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이후 효종의 북벌계획이 있었지만 무위로 끝났다.숭명반청(崇明反淸) 사상이 도도한 시대풍조를 이루고 있었던 당시 이러한 북벌계획이 민간 사이에서도 국가의 당연한 일인양 공명하여 전쟁의 준비 태세를 갖출 정도였다. 그러나 이러한 북벌계획은 청의 국운이 날로 융성하여져 가고 있어 좀처럼 기회를 잡을 수가 없었다.

효종은 북벌의 웅지(雄志)를 품은 채 재위 10년 만에 승하하였고, 아울러 그 계획도 종언을 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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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할한 요동,만주벌판의 주인이 여러번 바뀌는 것을 저 혼하강은 기억하며 역사의 흐름을 따라 유유히 흐르고 있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남다르다.현실적으로 북벌은 어려웠었다는 것이 대체로 공통된 의견이지만 아! 아쉬운 혼하강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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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모든 것 속에서 자신을 만난다.
風流山行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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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대장님의 댓글

감자대장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사진 잘보았읍니다 사진 찍을라 구경하실라 고생 많이 하셨네요 무사히 잘다녀와서 다행이네요 즐거운 하루되세요 항상행복하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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