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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다림, 짧은 산행, 좌절감, 또 다른 도전(지리 종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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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이 글을 쓸까 말까 몇 번이고 망설였다.
종주 실패로 나 자신의 실망감과 산행 후 후유증으로 피로감과 의욕상실
로 산행 전의 의지가 많이 꺾여 버린 것이다...
이제 또 다른 도전을 위해 우울한 마음을 훌훌 털어 버리고 새로운 마음으
로 이 글을 쓴다 ...

... 오랜 기다림
누구나 지리종주에 대해서는 나름대로의 이유와 가디림이 있겠지만 이 놈에겐 제법 오랜 기다림이 있었다.
이놈이 산행을 시작한지가 1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지리종주에 대한 갈망은 2002년 6월 11일(화) 발행된 중앙일보에 전면을 할애하는 제법 상세한 지리종주 가이드를 보고 나서부터이다. 그땐 등산을 해보지도 못한 때인데도 그 지면을 가위로 오려 스크랩을 했었다. 지금은 누렇게 변해버린 그 신문을 틈틈이 몇 번이고 읽었다. 그냥 그 기사를 읽으면 꼭 이놈이 직접 산행을 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우리 동래 뒷산 한번 오른 경험 없는 놈이 지리종주기사 하나 펼쳐 놓고 그걸 꿈 꾼다는게 참 한심하고 우스운 얘기지만 무식한 놈이 용감하다 하지 않은가.
그렇게 이놈은 지금까지 혼자만의 허황된 꿈을 마음속 깊이 벼루고 또 벼루고 있었다.

... 준비
8월 중순에 지리종주 가이드가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7월부터 작은 것부터 조금씩 준비를 했다. 매주 산행과 매일 한 알씩 복용하는 비타민을 두 배로 늘이고, 10파운드 아령 두 개를 구입해서 매일 빠짐없이 1시간씩 아령을 양손에 든채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주로 하체 운동을 위주로 했다. 헬스 클럽처럼 체계적이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스트래칭과 호흡법을 인터넷 정보를 통하여 독학을 해서 흉내를 냈다. 또 초복부터 꾸준히 고단백인 그 놈(?)을 섭취했다.(사실 많이 좋아 한다.)
산행날짜가 임박하면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하여 평소보단 음주량과 횟수도 줄여 나갔다. 배낭용량도 큰 걸로 바꾸고 여벌 옷과 물통도 하나 더 구입했다. 이렇게 몸과 마음과 장비를 하나 하나씩 부족분을 채우면서 정성스레 준비를 했다.
산행 당일 전까지 몇 일동안 잠을 이루질 못했다.
오랜 기다림으로 설래임이 너무 과한 탓일까?
그 날이 가까워 올수록 흥분의 속도가 빨라진다. 스스로 가스려 보려고 애를 쓰지만 마음과 의지와는 갈수록 딴판이다. 그렇게 그 날을 맞이했다.

... 당일
하루일과를 얼른 마치고 시민회관까지 밤 10시 10분에 도착했다.
저녁 6시에 밥을 먹었는데 또 배가 허전하다. 그래서 식당에서 또 한 그릇을 순식간에 뚝딱 해치웠다.(키는 크도 않는 것이 쓸데 없이 왜 이리 많이 먹는지..)
11시 정시에 많은 산정님들을(총 47명) 태우고 목적지를 향했다.

... 새벽 2시 30분
지리종주 출발지인 성삼재 주차장에 우리의 애마인 산정버스가 깜깜한 어둠을 뚫고 우리를 내려놓았다. 그곳은 이미 많은 도전자들로 붐비고 있었다. 우리처럼 버스로 온 사람들, 승용차로 온 사람들, 택시에서 막 내리는 사람들...
버스에서 내리니 도심 날씨와는 달리 재법 쌀쌀했다. 추위를 느낄 정도다.

... 새벽 3시 40분
조금은 지루한 입산 시간 기다림과 산행채비와 매표, 인원점검을 끝으로 드디어 출발!
날씨 좋고, 컨디션 좋고, 기분 또한 매우 상쾌하다.
가벼운 걸음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조금 전의 쌀쌀함은 어디간데 없고 이내 니마엔 땀이 송글송글 맺히며 흐르기 시작했다.

... 새벽 4시 15분
천천히 진행하라는 대장님의 무전으로 무난히 30여분만에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했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출발을 하였다.
이전 시멘트 도로와는 달리 한 사람만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길이 바위와 돌로 엉퀴어진게 만만찮은 등산로가 시작되었다.(이런 길이 종주 내내 자주 있었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므로 산행은 원활했다.
임걸령으로 향하는 동안 어둠이 서서히 걷히면서 일출의 그림자와 구름이 뒤섞여 붉게 어우러진 아름다운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 새벽 5시 30분
피아골 삼거리를 거쳐서 10분만에 임걸령에 도착했을 땐 이미 어둠이 완전히 걷힌 채 아름다운 경치를 뽐내면서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바람도 너무 시원한 게 애써 우리를 놓아주지를 않고, 발 아래 쫘악 깔린 운무 또한 우리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지리산은 자랑스러운 자태로 우리에게 과시를 하고 있었다. 그 과시에 질투나 시샘을 할 수 없을 만큼 그의 매력에 푹 빠져서 지리산의 뽐냄에 말없이 꼼짝없이 시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저 그의 배경으로 초라한 인간의 몰골을 한 컷 담을 기회를 갖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따름이었다.

... 아침 6시 10분
임걸령에서 오면서 날은 완전히 밝았고 했볕이 내리쬐며 모자 창으로 땀이 흘러 모여서 신경 쓰이게 이놈의 눈앞을 쉼없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땀으로 인한 불쾌감을 느끼는 동안 반야봉 삼거리에 도착했다.
배낭을 내려놓고 목 한번 축이고 반야봉을 갔다 올까 계속 마음속으로 갈등을 하면서 휴식을 취했다. " 반야봉 1.0km " 라는 이정표를 보고 계산을 해보니 후미그룹에 쫓기다시피 해 도저히 무리라는 결단을 내리고 아쉬움을 뒤로하고 삼도봉으로 향했다. 10여분을 걸었나? 뭔가 허전하다. 뭐가 빠졌지? 걸으면서 계속 생각을 하는데... " 오 마이 갓! 스틱을 두고 왔네"
다시 반야봉 삼거리로 향하여 뒤로 돌앗!!
정말 쓸데 없이 손발 고생하네. 흑흑흑...
누구한테 원망도 못하고 이놈 스스로 머리 쥐어 박으며 억울함을 억눌렀다.
" 이놈의 지팽아 어디 갔느냐?"
다행히 지팡이는 그 자리에 다소곳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고, 또 후미와도 맞닿지를 않은 게 다행으로 삼고 또 다시 뒤로 돌아서 열심히 뛰었다.

... 아침 6시 40분
우여곡절 끝에 삼도봉에 도착했다.
" 와---!!!"
필요없이 남들보다 왕복을 한 길인지라 억울했지만 삼도봉에 도착하니 그 억울하고 자존심 상한 마음 어디 갔느뇨?
삼도봉이 이놈의 아픈 마음을 한 번에 싹 날려 버렸다.
경치 좋고, 바람 시원하고, 조망 좋고...
갑자기 이놈은 운이 좋은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12월 한라산 등반 때에도 날씨가 좋아 보기 힘든 멋진 장관을 보았다.
화개재를 향하는 내리막이 나무계단으로 이어져 있었다.
반대방향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몹시 힘겨워 보였다.
그 힘든 심정 누군들 이해 못하랴.

... 오전 7시
화개재에 도착하니 야영을 한 산꾼들이 여기저기서 정리를 하거나 아침식사를 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 오전 7시 40분
토끼봉을 오르는 구간이 지금 현재 까지로는 가장 힘든 구간이었다.
튼튼님의 얘기를 온 몸으로 속속들이 확인하는 순간이다.

... 오전 9시
엄청 기대하던 우리의 아침식사 장소인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했다.
이미 선두는 식사를 하고 자리에 일어난 채 이놈을 기다리고 있었다.
배낭도 내리기전에 이름 모르늠 술을 건네 얻어 마셨다.
" 캬- 어쨌든 좋다-"
선두를 먼저 보내고 자리를 잡고 밥을 먹는데 영 안 먹힌다.
오는 동안 틈틈이 간식과 물을 먹은지라 이놈의 의욕과는 상관없이 속이 나를 거부하네. 더 이상 먹는걸 포기하고 또 다시 출발!

...오전 9시 30분
형제봉으로 향하는 동안 조附 몸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씩 힘겨워 하면서 걷는데 갑자기... " 딱!!"
왼쪽 무릎을 강타했다. 흠짓 하나 없이 아주 완벽하게 바위와 정면으로 부디쳤다. 멀근 대낮에 엄청난 양의 별을 볼 수가 있었다.
다리를 절룩거리며 걷다가 도저히 안되어 스프레이 파스를 뿌려보지만 별 소용이 없다.
그때부터 조금씩 속도가 늦어지면서...

...오전 11시 10분
겨우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했다.
휴식을 취하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이놈도 배낭을 내리고 화장실 볼일도 보고 물도 많이 마셨다.
이젠 준비한 물(3리터)도 얼마 남지를 않았다.
물을 많이 먹는 이놈으로서는 수통이 바닥을 보이면서 불안함을 느끼기엔 중분했다.
후미가 도착하는 것을 보고 또 다시 힘겨운 출발을 했다.
칠선봉을 향하는 동안 다리 뿌만 아니라 온몸이 지치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준비한 오이와 물로 허기와 목마름을 달래고 고단함을 이길려고 애를 썼다. 조금 오랜 휴식으로 다시 출발하니 훨씬 몸이 가벼웠다.

... 오후 1시 10분
칠선봉을 지나 영신봉을 향해서 걸었다.
이젠 어제 출발할 때의 마음과 여유로움은 가신지 오래다.
거저 걷는다.
걷는동안 지금까지 상상하지도 안했던 끝까지 종주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놈이 얼마나 기다렸던 기회인가!
그러면서 아무 생각없이 걸었다.
땅만 쳐다보며 걷다가 갑자기 이놈 앞에 뭔가 걸렸다.
의로 올려다 보니 엄청난 나무계단이 이놈을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에는 나무계단에 자신이 있었는데 지금 만큼은 으윽...
그런들 넘겨갈 수도 없는 현실!
그렇게 이를 악물고 한 번도 쉬지 않고 계단 끝을 밟았다.
중간에 쉬면 주저앉을 것 같아 힘들어도 단번에 가버렸다.
그 짧은 구간에도 성취감을 맛봤다.

... 오후 2시
영신봉을 지나니 세석 대피소가 보였다.
선두로 간 장사장님 일행을 만났다.
먼저 수통에 물을 채웠다. 이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근데 더 이상 종주하기엔 시간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여 거림으로 하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시간을 계산해보니 5시 반까지 중산리 도착은 무리라는 판단이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사실 이 놈의 체력도 바닥이 났다.
아니 종주는 둘째치고 지금부터 거림으로 내려가는 것조차 엄청난 부담이었다.

... 2시 30분
오랜 갈등 끝에 그토록 기다렸던 종주를 포기하고 거림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거림으로 내려오는 동안 몸은 어지러울 정도로 지쳐 있었다.
그 보다 더 괴로운 것은 중도에 이렇게 내려오는 이놈의 모습에 얼마나 화가 나고 분통이 터지던지 속으로 얼마나 울먹였는지 모른다.
그러는 중에도 몇 번이고 긴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그렇게 힘겨운 오랜 하산을 끝으로 거림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5시 10분.
탁족으로 피로를 풀려고 발을 담그니 발바닥이 엄청 아프다. 뜨거운 돌을 밟으면 조금 나은가 쉽더니 또다시 통증이 온다. 그렇게 하산의 피로를 풀었다.


...에필로그
그 어느 때보다도 아쉬움이 많은 산행이었지만 우리에겐 항상 내일이 있지 않은가? 다음 기회를 위안 삼아 산행기를 마감한다.

" 도전하는 자는 아름답다. "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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튼튼님의 댓글

튼튼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이시간에 잠 안자고 머합니까? 그렇게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완주하지 못해 얼매나 원통했으면... 다음에 좋은 기회 한 번 만들어 봅시다. 저는 무릎이 아무 탈 없이 빨리 좋아져야 할텐데..하고 걱정이 태산입니다. 위안은 당연히 술로 달래야지요! 조만간에 한번 보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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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댓글

..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아! 잠 온다! 지금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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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웰드님의 댓글

프리웰드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작년 지리종주때 무릎부상으로 기어가다시피 했습니다. 종주후 쁘듲함이란 무엇으로 표현할수가 없죠.승민님의 심정 이해가됩니다.지리산은 항상그자리에 있습니다.다음을 기약하며 ...무릎이 빨리 완쾌되어 건강한 모습으로 산정에서 뵙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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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대장님의 댓글

감자대장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많은 준비을 했는데 안타깝네요 다음에는 꼭 성공하길바라면서  산은 언제나 그곳에 있잖아요 힘내시구요 다음에는 꼭성공하길....^^~ 항상행복하고 좋은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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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래치님의 댓글

매래치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이번 지리종주의 산행기는 종주를 끝낸분들의 글은 안보이네요~ ㅋㅋ 어쩌면 전쟁에서의 패잔병~ , 어쨋거나 힘들고 하였지만 가을을 맞이하는 기분으로 즐거웠습니다. 가을 입니다. 국시먹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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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인님의 댓글

다인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무식하면 용감하다....*^^* 지리산종주를 어렵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고 가까운 시일내 꼭 한번 시행하리라 마음으로 다지고 있었고 이번에 함께하지 못하여 아쉬움이 지나쳐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그런데요 이번 지리산종주 산행기를 읽으니 기가 다 죽어버렸습니다.참 많이 굉장히 무지무지 수고 하셨습니다.무사하셨어 다행이구요. "도전하는 자 아름답다" 기는 죽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도전 할 것입니다. 감사히..즐겁게 읽었습니다.건강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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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님의 댓글

지수..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승민씨!지난일은 페이지를 빨리 넘겨야 지금 이 순간이 또다시 늘 시작으로 이어지는걸요...기대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나요!!실패란 말 보다는 조금 덜 했다는 말이 더 좋지 않나요?정상까지 갔슴 그야 말로 더 할수없지만..못 미친 그 아쉬움이 더 값질수도 있답니다.중간팀 맡니라고 고생 많으셨구요.즐겁고 활기찬 날들 되십시요.감사합니다.아직 저녁 전이라 그런지 그때 식당 아지매가 싸준 김치 볶음밥..위에 계란 후라이까지..지금 먹으면 맛있었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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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고생님의 댓글

작년에 고생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다음에 거림-세석-장터목-천왕봉-로타리-중산리로 등산하면 구간종주되니까 위안삼으세요.수고많으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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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쇠엄마님의 댓글

돌쇠엄마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준비하는과정이 즐겁죠..항상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승민씨는 아름다운 청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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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님의 댓글

보석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수고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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