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의 혼이 서린 기암괴석(매화산)
페이지 정보
관련링크
본문
일요일 시민회관 앞에는 전국 명산을 찾아 떠나는 등산객들로 북적댄다. 등산이 대중 레포츠로 자리 잡은 지 오래지만 최근 5일제 근무 확산으로 눈에 띄게 등산 인구가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주말에 하루쯤은 일상에 쌓인 스트레스를 날려보내고 건강을 지키자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지만 등산 인구 증가로 아름다운 자연이 파괴되지나 않을지 염려스럽다. 산악회를 이끌어 가는 분 대부분 바른 등산문화 의식을 가져 그나마 다행이긴 하지만..
가끔씩 가이드 산악회에 참가 할 때면 산정산악회를 찾는 이유는
나름대로 철학과 원칙을 가지고 등산문화를 선도하는 김홍수 대장과 또 산정의 이념을 알고 찾는 회원들과의 즐거운 만남을 위해서다.
집행부에선 시산제 산행을 위해 준비한 제수용품을 분담시키며 총무는 향과 몇 가지 용품을 내게 맡겼지만 일행인 권수원님께 다시 짐을 지웠다. 처음 산을 따라 나선 직장 동료를 후미에서 맡아야 하기 때문이라 했지만 스스로 여유 있는 산행을 즐기기 위해서 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2시간 넘게 달려 온 차창 너머로 가야산과 남쪽으로 솟은 매화산이 눈에 들어오지만 약간은 실망스럽다. 꼭 1년 만에 찾지만 그때처럼 햐얀 설산은 간데 없고 화강암 암봉만이 햇살을 받아 눈 부실뿐.. 겨울 가뭄이 어지간히 오래 지속되나 보다.
선두 그룹에 서서 청량사 매표소까지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 걸으니 안경에 벌써 이슬이 맺는다. 동료들과 후미에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 보니 청량사(淸 寺) 표지석이 나타난다. 매화산 남쪽 끝자락에 아늑히 자리잡은 청량사에는 석조석가여래좌상, 3층석탑 ,석등 등 보물이 안치되어 있고 고운 최치원 선생이 자주 찾았다고 한다.
신라 말 문장가이며 진보 개혁적 사상가였던 최치원 선생은 난세를 비관하여 벼슬을 버리고 각지를 유랑하다 해인사에서 여생을 마쳤다. 이곳 청량사 뿐만 아니라 지리산 등 산수 수려한 지역 곳곳에서 그의 흔적을 발견 할 수 있는데 최근 중국 강소성 양주에 최치원 선생 기념관을 건립키로 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과연 중국에 고맙다고만 해야 될 일인지...?
[秋夜雨中] -가을비 내리는 밤에
秋風惟苦吟(추풍유고음) 가을바람에 오직 괴로이 읊나니
世路少知音(세로소지음) 세상에 친구도 적구나
窓外三更雨(창외삼경우) 창밖 삼경에 비가 내리니
燈前萬里心(등전만리심) 등앞에 외로운 마음 고향을 그리네
그의 시 "추야우중"을 통해 난세를 걱정하며 몸과 마음 의탁할 곳 없어 유랑하던 심경을 읽어 낼 수 있다.
청량사를 두고 좌측으로 돌아 가파른 오르막을 10여분 오르니 벌써 숨이 차 온다. 비록 육체가 힘들지만 흘린 땀만큼이나 행복감이 찾아온다는 단순한 진리를 알기에 산을 찾고 오르고 또 오른다. 누가 산을 오르는 것 자체가 고행이요 해탈이라 했던가..
능선 안부에 올라서니 가야산 자락에 고찰 해인사가 포근하게 안겨 있고 산정은 푸른 창공을 찌를 듯.. 정상을 향하는 암릉을 타다보니 매화산을 불가에서 천불산이라 불러지고 있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기암괴석 사이로 빠져 나와 하늘과 맞닿은 암봉을 타면서 이 순간만큼은 신선이 된다. 수 천년 세월 비바람에 버텨 낸 기암괴석들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즐비하고 이들 모두가 부처님의 혼이 담긴 불상으로 보였던가?
자연이 주는 위대한 선물을 눈으로 가슴으로 담아 두기에 부족하여 렌즈를 통해 이리저리 맞춰 보고 또 보면서 카메라에 담는다. 이 아름다움을 말로 글로써 다 표현 못하고 부족한 내공으로 카메라에 담기에도 한계가 있으니 자연 앞에선 내 자신이 부끄럽다.
느릿느릿 2시간이 훨씬 넘게 걸려 남산제일봉 정상에 도착하니 시산제는 이미 끝나고 막걸리 한잔 음복하고 나니 더 이상 바랄게 없다. 사방을 둘러보니 시계가 터여 저 아래 저수지 맑은 물이 한 웅큼이나 잡힐 듯 다가오고 어떤 산객은 대구시가 보인다고까지 너스레를 떤다.
산동무가 챙겨준 도시락을 풀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토란국을 마주하니 동행하지 못한 미안함 인다. 다음 주 기백산 산행 때는 꼭 같이 가자고 해야 겠다.
북사면에는 녹다가 만 눈이라도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는데 흔적도 없다. 정상아래 우측 능선을 따라 터벅터벅 걸으며 작년 이맘때 설경이 스쳐 지나간다. 넘어지며 자빠져도 하얀 설산 이었으면 더 좋으련만..
빠른 걸음으로 내 달아 계곡 합수지점에 이르니 얕은 계곡수가 결빙되어 햇빛을 받아 눈부시다. 흰 눈을 대신하며 서운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주려는 듯.. 중간 지점에 뻥 뚫린 동굴 기도처엔 무슨 소망을 빌었는지 흔적들만 남아 있다.
30분만에 하산 완료하여 하산 주를 나누면서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건강과 자연미에 있고 또한 내면 깊숙한 곳에도 숨어 있음을 공감하면서 오늘 산행에 참여한 분들은 아름다워 질 수 있는 자격이 있음에 즐거워하며 시산제 산행을 마무리했다.
주말에 하루쯤은 일상에 쌓인 스트레스를 날려보내고 건강을 지키자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지만 등산 인구 증가로 아름다운 자연이 파괴되지나 않을지 염려스럽다. 산악회를 이끌어 가는 분 대부분 바른 등산문화 의식을 가져 그나마 다행이긴 하지만..
가끔씩 가이드 산악회에 참가 할 때면 산정산악회를 찾는 이유는
나름대로 철학과 원칙을 가지고 등산문화를 선도하는 김홍수 대장과 또 산정의 이념을 알고 찾는 회원들과의 즐거운 만남을 위해서다.
집행부에선 시산제 산행을 위해 준비한 제수용품을 분담시키며 총무는 향과 몇 가지 용품을 내게 맡겼지만 일행인 권수원님께 다시 짐을 지웠다. 처음 산을 따라 나선 직장 동료를 후미에서 맡아야 하기 때문이라 했지만 스스로 여유 있는 산행을 즐기기 위해서 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2시간 넘게 달려 온 차창 너머로 가야산과 남쪽으로 솟은 매화산이 눈에 들어오지만 약간은 실망스럽다. 꼭 1년 만에 찾지만 그때처럼 햐얀 설산은 간데 없고 화강암 암봉만이 햇살을 받아 눈 부실뿐.. 겨울 가뭄이 어지간히 오래 지속되나 보다.
선두 그룹에 서서 청량사 매표소까지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 걸으니 안경에 벌써 이슬이 맺는다. 동료들과 후미에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 보니 청량사(淸 寺) 표지석이 나타난다. 매화산 남쪽 끝자락에 아늑히 자리잡은 청량사에는 석조석가여래좌상, 3층석탑 ,석등 등 보물이 안치되어 있고 고운 최치원 선생이 자주 찾았다고 한다.
신라 말 문장가이며 진보 개혁적 사상가였던 최치원 선생은 난세를 비관하여 벼슬을 버리고 각지를 유랑하다 해인사에서 여생을 마쳤다. 이곳 청량사 뿐만 아니라 지리산 등 산수 수려한 지역 곳곳에서 그의 흔적을 발견 할 수 있는데 최근 중국 강소성 양주에 최치원 선생 기념관을 건립키로 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과연 중국에 고맙다고만 해야 될 일인지...?
[秋夜雨中] -가을비 내리는 밤에
秋風惟苦吟(추풍유고음) 가을바람에 오직 괴로이 읊나니
世路少知音(세로소지음) 세상에 친구도 적구나
窓外三更雨(창외삼경우) 창밖 삼경에 비가 내리니
燈前萬里心(등전만리심) 등앞에 외로운 마음 고향을 그리네
그의 시 "추야우중"을 통해 난세를 걱정하며 몸과 마음 의탁할 곳 없어 유랑하던 심경을 읽어 낼 수 있다.
청량사를 두고 좌측으로 돌아 가파른 오르막을 10여분 오르니 벌써 숨이 차 온다. 비록 육체가 힘들지만 흘린 땀만큼이나 행복감이 찾아온다는 단순한 진리를 알기에 산을 찾고 오르고 또 오른다. 누가 산을 오르는 것 자체가 고행이요 해탈이라 했던가..
능선 안부에 올라서니 가야산 자락에 고찰 해인사가 포근하게 안겨 있고 산정은 푸른 창공을 찌를 듯.. 정상을 향하는 암릉을 타다보니 매화산을 불가에서 천불산이라 불러지고 있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기암괴석 사이로 빠져 나와 하늘과 맞닿은 암봉을 타면서 이 순간만큼은 신선이 된다. 수 천년 세월 비바람에 버텨 낸 기암괴석들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즐비하고 이들 모두가 부처님의 혼이 담긴 불상으로 보였던가?
자연이 주는 위대한 선물을 눈으로 가슴으로 담아 두기에 부족하여 렌즈를 통해 이리저리 맞춰 보고 또 보면서 카메라에 담는다. 이 아름다움을 말로 글로써 다 표현 못하고 부족한 내공으로 카메라에 담기에도 한계가 있으니 자연 앞에선 내 자신이 부끄럽다.
느릿느릿 2시간이 훨씬 넘게 걸려 남산제일봉 정상에 도착하니 시산제는 이미 끝나고 막걸리 한잔 음복하고 나니 더 이상 바랄게 없다. 사방을 둘러보니 시계가 터여 저 아래 저수지 맑은 물이 한 웅큼이나 잡힐 듯 다가오고 어떤 산객은 대구시가 보인다고까지 너스레를 떤다.
산동무가 챙겨준 도시락을 풀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토란국을 마주하니 동행하지 못한 미안함 인다. 다음 주 기백산 산행 때는 꼭 같이 가자고 해야 겠다.
북사면에는 녹다가 만 눈이라도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는데 흔적도 없다. 정상아래 우측 능선을 따라 터벅터벅 걸으며 작년 이맘때 설경이 스쳐 지나간다. 넘어지며 자빠져도 하얀 설산 이었으면 더 좋으련만..
빠른 걸음으로 내 달아 계곡 합수지점에 이르니 얕은 계곡수가 결빙되어 햇빛을 받아 눈부시다. 흰 눈을 대신하며 서운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주려는 듯.. 중간 지점에 뻥 뚫린 동굴 기도처엔 무슨 소망을 빌었는지 흔적들만 남아 있다.
30분만에 하산 완료하여 하산 주를 나누면서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건강과 자연미에 있고 또한 내면 깊숙한 곳에도 숨어 있음을 공감하면서 오늘 산행에 참여한 분들은 아름다워 질 수 있는 자격이 있음에 즐거워하며 시산제 산행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