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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고 감사했습니다 - 응봉산 산행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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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등정에 민폐만 끼친 것 같아 너무 미안하고, 여러모로 도와주신 대장님, 총무님 그리고 후미 담당 반장님을 비롯한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몇 번 더 등정하고 나면 괜찮으실 거라는 대장님의 말씀에 큰 힘을 얻었습니다만, 시간이 여의치 않으니, 계속 등반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학생들 시험 기간과 방학이 되면 다소 여유가 생기니 그때 봐서 다시 참석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리 근력을 키워 담에는 처지지 않고 함께 보조를 맞추면서 등정을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만나 뵐 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첫 산악회 산행

지난 화요일 휴대폰으로 ‘응봉산(998.5m) 용소골 산행 안내’ 문자 메시지가 떴다. 산에 대한 막연한 관심으로 등록하였던 ‘부산 산정 산악회’에서 보낸 안내 메시지였다. 주말 수업으로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누누이 눈팅으로 끝났던 등반을 이번에 한번 참여하자는 생각을 하였다. 집사람에게 일요일 산행을 얘기하자, ‘바람도 쐬고 사람들도 사귀어보세요’라는 말로 동의를 해 주었다. ‘앗싸, 함 가볼까나, 우우’ 부푼 기대에 소풍 날짜 잡힌 아이마냥 그 주간은 신이 났다.

하루하루 더디게 간다 싶은 시간이 어느새 일요일 새벽에 이르더니 달콤한 공기로 날 깨워 시민회관 앞으로 데려갔다. 관광차 앞에 붙여진 ‘산정산악회 - 용봉산 용소골’이라는 안내 플래카드를 보고 차에 올랐다. 여러 분이 이미 승차하고 계셨다. 자리를 잡고 앉았다. 생판 처음 보는 분들이지만 다들 순수하고 착해 보이셨다. 내 옆자리에 50쯤 되어 보이시는 야위셨지만, 건강해 보이시는 분이 앉으셨다. 산행을 시작하는 삼척 덕구 온천 뒤쪽 산기슭까지는 4시간이 걸린다고 하였다. 차에서 읽으면 좋겠다 싶어 가져간 ‘대화 - 90대 80대 70대 60대 4인의 메시지’ (샘터사)‘를 꺼내 반 정도 읽었다. 나머지 시간은 전날 못 잔 잠을 잤다. 휴게소에 내려 아침으로 핫바 하나와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옆에 앉으신 분은 휴게소에서 감자를 하나 사 와 드셨다. 맛있게 보여, 내려올 때, 휴게소에 들르면 나도 사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예정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늦게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하차하기 전 사람들의 등산복을 유심히 관찰하였다. 두꺼운 겨울용 등산복을 입었기에 이 점퍼를 입고 가야하나 벗고 가야하나를 결정해야했다. 다들 티에 조끼 정도 걸치고 있었고 간혹 얇은 점프를 입고 계셨다. 갈등이 생겼다. 옆에 아저씨를 보니 입고 계셨던 얇은 점퍼를 벗으시고 반팔 티에 조끼를 입으셨다. 그리고 벗은 얇은 점퍼는 버스 좌석 위쪽 간이짐칸에 올려놓으셨다. ‘반팔이시라... 난 긴 팔 티에 두꺼운 점퍼인데 완전 대조되네.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 ‘아직 날씨도 완전히 개이지 않았으니 일단 입고 가자, 더우면 벗어 배낭에 지고 가면 되겠지’라고 옷 문제를 마무리 지었다.

내려서 산악 대장님이 오늘의 일정을 설명해 주셨다. 오전 10시까지 비가 내려 물이 많이 불은 관계로 계획했던 용소골 진입은 어렵다고 하셨다. 그래서 정상 등정 후 옆 능선으로 산장까지 내려오는 산행 경로를 설명하셨다. 총 7시간의 산행을 6시간(순수 산행 시간은 정상까지 2시간, 능선을 따라 산장까지 하산 2시간으로 4시간이며 계곡을 따라 걷는 나머지 2시간은 일정 관계상 차로 이동하기로 했다) 경로로 수정하신다고 하셨다. 카메라 가방을 앞에 지고 온 분이 ‘전 용소골에 가지 않으면 갈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불만스러운 투로 대장님께 항의하였다. ‘위험을 감수하고 정 가시겠다는 분은 정상에 가서 다시 제 지시를 듣고 가십시오.’라는 대장님의 말로 일정에 대해 일단락하고 점호 후 등반을 시작하였다.

‘사람들 가는대로 따라가면 되겠지’라는 안일한 나의 생각은 30분이 지나면서 ‘이거 장난이 아닌데’라는 긴장감으로 바뀌었다. 평소에 수영을 꾸준히 해왔기에 나름대로 폐활량이나 유연함에 있어 자신이 있었고, 이러한 자신감은 다른 운동에서도 최소 90%는 발휘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생각과 나의 몸은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나의 몸은 몸이 가는 길이 따로 있음을 보여주었다. 나에게 문제는 폐활량이나 유연함이 아니라 다리 근력(筋力)이었다. 나의 다리 근력은 다른 신체 부위와 자신과는 관계가 없는 양 의지가 미치는 영역 밖에서 지금까지 혼자서 잘 놀았다는 비웃음을 던졌다.

평소에 등반을 꾸준히 하셨던 분들이 대부분이라, 걸음 속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1시간 30분의 산행 후 결국 꼴찌로 정상아래 헬기장에 도착했다. 다들 점심을 반 이상 드신 상태였다. 끼여 앉아 가져간 점심을 먹었다. 반쯤 먹고 나니 다른 대원들은 도시락을 챙기기 시작했다. 서둘러 먹었다. 배도 고팠고 급하기도 급해 음식이 코로 들어갔는지 입으로 들어갔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같은 산악회 대원인지 잘 몰랐던 후미 반장대원님이 점심을 먹고 난 후부터 나와 보조를 맞춰 주셨다. 중간 중간에 비가 오는데다 땅도 미끄러워 두 배의 힘이 들었다. 평소에 잘 쓰지 않는 근육들이 자극을 받아 팽팽하게 죄어들었다. 발과 장딴지, 무릎, 허벅지에 이르는 통증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몸을 접수하였다. 천천히 숨을 고르면서 걸을 수밖에 없었다. 나 때문에 천천히 가시면서 선도하는 후미 대장님께 미안했다. ‘웃으시면서 괜찮으니 천천히 가세요‘라는 말씀을 계속하셨다. 정상까지 30분가량 산행을 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난 너무 힘들어 좀 쉬었으면 싶었지만, 일정상 능선을 따라 내려가는 하산이 시작되었다.

’하산이야 뭐 어렵겠어’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아픈 다리를 달래면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려가는 능선은 영화에서 보던 지리산 빨치산 소탕작전 장면 때 나오는 산과 비슷하였다. 우거진 숲, 폭 30센티미터 가량의 좁은 능선, 그 능선 위로 군데군데 너부러져 있는 나무들, 간간히 내리는 비, 빗물에 젖어 풀이 죽은 낙엽들. 지상에서라면 시(詩)의 소재도 될 수 있겠지만, 축축한 산을 횡단해야하는 지친 육신은 눈 한번 들어 주변 경관을 볼 짬도, 가져간 사진기로 사진 한 장 찍을 시간도 허용하지 않았다. 급기야, 다리 장단지에 쥐까지 나면서 민폐를 확실히 끼쳤다. 5분 정도 후에 풀리긴 하였지만, 정말 이 무슨 창피인가 싶었다. 가도 가도 끝없이 느껴지는 산, 한 발짝 디딜 때마다 찬 수박이 생각나는 나. 난 처음으로 하산길도 앞사람과 이토록 거리가 멀어질 수 있음을 알았다. 지금까지 내가 올랐던 산행은 산책이지 산행이 아니었다. 다른 대원과 거의 1시간 정도 차이를 두고 산장에 도착했다. 다들 소주에 닭도리탕을 드시고 계셨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음료수에 김치국물만 마셨다.


조난

산장에서 제공한 트럭을 타고 계곡을 따라 관광버스가 있는 주차장까지 내려왔다. 인원이 많아 반씩 나누어 탔다. 1진으로 나를 포함하여 16명이 먼저 내려왔다. 나머지 2진 대원들만 내려오면 부산으로 떠난다는 생각을 하면서 버스 좌석에 몸을 파묻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깜박 잠이 들기도 하였고 기사님이 켜준 TV에서 롯데가 기아 타이거즈에게 9회 역전 승리하는 장면도 보았다. 그 후에도 2진 대원들이 내려오지 않았다. 1시간 반 정도가 흐른 후에 가게에 있는 일반전화로 대장과 통화가 이루어졌다.(휴대폰은 통화권 이탈 지역이라 터지지 않았다) 대원 중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 상황을 알려주셨다. 아직 한 분이 안 내려오셔서 기다리는 중이란다. 세 분이 용소골로 꼭 가시겠다고 하셔서 지침을 일러주고 내려 보냈는데, 두 분은 도착했는데, 아직 한 분이 내려오시지 않아 기다리고 있다고 하셨다. 더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팀으로 오신 분들은 막걸리에 파전을 안주로 술을 드셨고, 나머지 분들은 삼삼오오 밖에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기다렸다.

7시 30쯤에 119 차량이 한 대 산장으로 진입하여 올라갔다. 뭔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진 듯하였다. 다시 산장에 있는 대장과 Ф薦 취해본 결과, 아직 내려오지 않으신 분이 5시쯤에 119에 조난 신고를 냈다고 한다. 조난 신고를 5시쯤에 받은 119가 7시 30에 도착하다니 왜 이래 느린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알고 보니, 신고를 받고 출동한 삼척 119본부와 여기 덕풍계곡과는 1시간 30분이 떨어진 거리였다. 점점 상황이 불길한 쪽으로 흘렸다. 대장과 119대원 그리고 지역구조 대장인 산장 주인이 용소 1계곡까지 들어갔다 나왔으나 조난자를 구조하지 못하고 그냥 돌아왔다는 말이 전해졌다. 날은 어두워졌고, 계속 119대원들과 경찰차 그리고 지역 구조대원들이 도착해서 산장 쪽으로 올라갔다. 지역 구조대 전(前)대장이셨다는 분은 5시에 조난 신고를 했으면 빨리 자기들에게 연락을 해서 지형지물만 알려주었으면 벌써 구조했을 텐데 이게 뭐냐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손전등 없이 응봉산에서 움직이는 것은 죽음과 같다고 하셨다. 그만큼 지형이 험하고 절벽이 많기 때문이란다. 계곡 쪽에서는 휴대폰이 안 터지고 산 정상 쪽으로 가면 조금 터지기 때문에 조난자가 휴대폰을 사용하였다는 걸 보면 분명 정상 쪽으로 올라갔을 거라면서 나름 추측을 하시면서 119의 대응 방식을 비난하셨다. 지역 구조대는 119쪽에서 요청을 해야 움직인다고 한다. 봉사단체가 아닌 1인당 20만원의 보수를 받는 단체이기 때문이란다. 이분들은 이 지역에서 뼈가 굳으신 분들이라 응봉산과 용소골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계신다고 하신다.

그 후 더 이상의 소식은 없었다. 여러 추측이 난무하고 생사는 어둠만큼이나 불투명하였다. 좋은 소식이 있길 기다렸지만 9시가 넘어가도록 별 소식은 없었다. 어두워서 수색작업도 이제는 할 수 없다고 한다. 등반 대장이 나머지 대원과 함께 내려와서 자신은 남아서 내일 새벽 수색을 해야 하니, 나머지 분들은 하산하시라고 하였다. 9시 50분쯤에 부산으로 차가 출발하였다.


우연

주차장에서 기다리는 중에 조난당하신 분이 누군지 궁금하였다. 다른 분들도 어느 분인지 궁금하여 서로가 알고 있는 조각을 꿰맞추면서 추측하였다. 어떤 젊은 분이 정상에서 찍은 사진이 있어 이분인 것 같다고 하였다. 난 멀리 떨어져 앉아서 사진을 보지 못했다. 혹시 하는 마음에 차 타고 올 때 내 옆자리에 앉으신 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산장에서 모두 소주와 닭도리탕을 먹을 때, 못 본 것 같았다. 그분이.... 짧은 티에 조끼를 입었던 그분이.... 차에 올라 사람들이 착석을 다하고 나서, 내 추측은 현실이 되었다. 맞았다. 농부 같기도 하고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이신 듯도 한 야위지만 건강하게 보였던 50세쯤 되신 그분이 조난당하셨다. 입고 가셨더라면 좋았을 점퍼만 머리 위 간이짐칸에 남겨둔 채, 점퍼 주인은 돌아오지 않았다. 휴게소에서 총무님께 그분의 옷에 대해 말씀을 드렸다. 나중에 자신이 가지고 가서 보관하겠다고 하셨다. 말 한마디 안 했지만 옆자리에 앉아 함께 덕구 온천 등산 진입로까지 가셨던 그분이 내려올 때는 옷과 구운 감자를 담은 종이접시만 내려 보내셨다. 집에 가서 집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보낸 문자를 보고 섬뜩했다고 한다. 옆에 앉으신 분이 그런 일을 당했다면, 당신도 당할 수도 있었을 것 아니냐면서 잠도 자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산악회 산행을 따라나서 산악회 운영 11년 중 처음 일어난 조난사고의 현장에 함께 있었다는 우연도 쉽지 않은데, 바로 내 옆자리에 앉으신 분이 사고 당사자라는 우연은 머리로는 근접하지 못하는 힘과 두려움을 느끼게 하였다. 부디 아무 탈 없이 무사히 구조되시길 기원한다.

*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에도(6월 30일) 산악회 홈페이지에 구조에 관한 소식이 없어 더욱 안타깝다.

* 조난당하신 분이 무사히 내려오셨다는 소식을 오늘 홈페이지(7월 1일)에서 보고 무척 기뻤습니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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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대장님의 댓글

감자대장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노승엽님 글 잘읽어 보았읍니다..산정에서 처음 일어나는 일이죠
어딜 가나 단체 생활에서는 항상 통솔하는 분들이 계시죠
물론 통솔하는 분보다 더 잘하는 사람도 있겠죠 하지만 단체 생활에서는 싫터라도 조금만 이해 해주시면
많은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을텐데..^^노승엽님 마음 고생 많이 셨네요...화이팅 하시구요 좋은하루되세요^^
그래도 무사히 아무일없이
산행을 마쳐서 다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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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cckk2002님의 댓글

jjcckk2002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첫산행이 응봉산이라 좋은 경험이 됐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조난사고 고생도 하셨네요
무엇보다 무사하다니 천만 다행이네요 같이 산행한 산정인들 ! 대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안선생님!멀리 응봉산 산행 참여하셨네요 다음에 뵐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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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님의 댓글

지수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노승엽님^^
ㅎㅎ
수고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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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u님의 댓글

maru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노승엽님! 산정과의 첫 산행에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고생이 많았습니다. 앞으론 좋은 날만 있을겁니다. 상세한 산행후기를 감사하게 잘 읽고 나갑니다. 캄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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