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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난상보] 죽음으로 안내한 H투어의 백두산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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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난상보] 죽음으로 안내한 H투어의 백두산 산행

8월 8일 중년 여성 사망…악천후 속 허술한 가이드로 떼죽음 당할 뻔
국내 여행사들 무책임한 저가경쟁…사고 요인 여전히 상존 백두산 산행을 하던 한국여성 김씨(51)가 사망했다. 중국 측 현지 병원의 사망원인은 심장마비. 그러나 김씨와 산행을 함께했던 일행은 저체온증이 사인이라 주장했다. 유족 측은 “큰 여행사인 H투어를 통해 갔고, 평소 심장질환은커녕 병원 갈 일도 없었던 사람이 어떻게 주검이 되어 돌아올 수 있느냐”며 통곡했다.

김 여인은 어떻게 죽었으며 대형 여행사의 백두산 산행 뒤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다음은 H투어를 통해 산행에 참여한 산악회 회장 K씨와 산행을 주선한 여행사 대리점 사장 H씨의 말을 종합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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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산 화구 외륜의 능선길을 걷고 있는 등산인들. 수많은 우리나라 동호인들이 매년 여름 백두산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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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고교동문산악회 34명은 8월 7일 아침 인천공항을 출발해 연길공항에 도착했다. 용정에서 관광을 한 이들은 백두산 인근의 관광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북파에서 서파로 종주하기 위해 지프차를 타고 천문봉 아래 주차장에 닿았다. 이때 시간이 오전 8시 10분이었다. 동문산악회 회장 K씨는 “산악회에서 평소 산행을 잘 하는 이들만 신청하게 해 34명이 모였다”고 한다. 여행사에 백두산 종주산행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고 H투어 측은 이를 받아들였다. 여행사를 통해 온 만큼 산행 가이드가 동행하여 설명을 해 주고 인솔해 줄 것으로 기대했으나 그게 아니었다고 한다.

말도 안 통하는 중국인 가이드만 두고
H투어 안내자 사라져
K씨는 “여행사를 통해 와서 회원들 모두 하루 종일 백두산 종주산행을 한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 북파에서 서파로 간다든지 하는 세세한 내용은 몰랐다”고 한다. 더구나 지도 한 장 주지 않았으며 공항에서부터 여행을 이끌던 여자 가이드는 평상복으로 지프차를 타고 올라와 산행이 시작되자 잘 다녀오라며 돌아가 버렸다. 여행사 대리점 사장 H씨가 동행하고 있었으나 그도 H투어 본사를 통해 고객 알선만 했지 백두산은 처음 가는 것이었고 산행 경력이 없어 손님 중의 한 명이나 마찬가지였다. H씨는 “나도 백두산 산행은 처음이었고 코스를 몰라서 H투어에 의뢰한 것이다”고 전했다.

백두산 관광규정에 의하면 산행시 20명당 한 명의 중국인 현지 안내인을 고용하도록 되어 있다. 34명이었으므로 2명의 안내인이 동행했으나 통역이 없어 소통이 전혀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가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므로 이들은 산행을 시작했다. 당시 백두산 천지는 구름이 짙었고 비가 내렸다. 그러나 가는 비라서 산행을 하는 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철벽봉에서 천지 아래 물가인 달문으로 내려간 이들은 용문봉을 올라 산행을 이어갔다. 백운봉 지나 백운봉과 청석봉 사이의 계곡에 도착한 시간이 대략 오후 1시 30분이었다. 여기서 이들은 식사를 杉. 그러나 8월 한여름 산행을 준비한 이들에게 백두산의 쌀쌀한 비바람은 예상 밖이었고, 대화가 통하는 산행 가이드가 없다 보니 얼마큼 왔고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여기서 선두그룹은 식사를 하지 않고 바로 청석봉을 올라 서파 주차장으로 향했다.

식사를 마친 오후 2시쯤 청석봉을 향해 오르는 길에는 강풍과 거센 비가 몰아쳤다. K씨의 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나름 크다는 산을 많이 올랐지만 진짜 이렇게 강한 비바람은 처음이었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여자들은 두 명씩 팔짱을 끼어 날려가지 않으려 노력해야 했다고 한다. 대리점 사장 H씨는 “70kg이 넘는 성인남자가 바람에 흔들릴 정도였다”고 한다. 청석봉을 올라가며 강한 비바람과 추위에 모두들 완전히 지친 상태였다. 건장한 성인 남자들도 이쯤에서 다리가 다 풀렸을 정도였다. 여름이라 보온복을 준비하지 않아 티셔츠에 방풍재킷, 등산용 비옷을 입고 있는 정도였다. “7~8시간씩 비를 맞다 보니 옷이 모두 젖어 있었다”고 한다.

중국인 안내원은 선두와 후미에 서서 사람들을 이끌었다. 선두 안내원은 식사도 거르고 간 지 오래였고 이들을 이끌 사람은 후미 안내원 한 명뿐이었다. 결국 후미 안내원이 앞장서서 길을 잡았다. 그러나 비바람은 더욱 거세지고 안개는 짙어 시야가 4~5m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청석봉에서 출발 후 이들은 거리가 벌어졌고 후미 9명은 선두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후미 9명 중에는 여행사 대리점 사장 H씨가 함께 있었다. 그는 “4명 정도가 혼자서 걸을 수 없는 상태라 부축하고 간식을 먹이고 하다 보니 앞서 가던 사람들과 떨어졌다”고 한다.

걸어도 걸어도 같은 자리…환상방황으로 길 잃어
그러던 와중에 마천봉 인근에서 철난간이 나타나며 당황해 길을 잃었다. 이때 시간이 오후 3시 20분쯤이었다. 30분 동안 헤맸으나 돌아온 자리는 같은 자리였다. 환상방황에 빠진 것이다. 여기서 4명은 걸을 힘이 없어 아예 쓰러졌다. 주변에 뭔가를 덮어 놓은 비닐이 있어 그걸 가져와 나눠 덮어쓰고 있었다. 2명은 길을 찾고 나머지 3명은 쓰러진 4명을 주무르고 뺨을 때리며 사람들을 깨워야 했다.

이때 4명의 상태는 심각했다는 게 H사장의 말이다. “환청을 듣고 헛소리를 하고 계속 잠만 자려고 했다”고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그도 ‘내가 여기서 죽는구나’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대리점 사장이 휴대폰으로 수십 번 통화 시도를 했으나 전화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들이 쓰러진 뒤 2시간 지난 오후 6시쯤 무조건 내려가야 한다고 생각한 이들은 사람들을 업고 끌고 해서 옥주봉 아래로 내려왔다고 한다. 이때 김 여인은 정신을 잃은 상태였고 두 명이 제일 후미에서 그녀를 끌다시피 해서 오는 상황이었다.

후미 안내원과 동행한 팀에 산악회장 K씨가 있었고 이들은 오후 5시쯤 서파 주차장에 도착했다. 이들은 30분이 지나도 후미 9명이 도착하지 않자 서파지역 관리사무소 현지 팀장과 안내원이 올라갔고, 오후 6시가 지나 결국 조난된 산악회원들을 만났다. 이때 주차장 관리사무소와 전화통화를 통해 이들을 구조할 여러 명의 대원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으나 구조대가 오려면 2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산악회장 K씨가 남자 회원들과 가려 했으나 현지관리소에서 악천후가 심해 갈 수 없다고 출입을 막았다. 결국 돈을 주고 현지 안내인 6명을 사서 구조하기 위해 가보니 옥주봉을 지난 지점에서 김 여인을 제외한 8명이 떨고 있었다고 한다.

K씨의 말에 따르면 “웅크리고 앉아 턱이 닿도록 덜덜 떨면서 ‘살려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여자 2명과 남자 1명은 저체온증으로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었고 나머지 사람들도 당시 상황을 다 기억해 내지 못하고 일정 부분씩 기억이 없다고 한다. 산악회 회장 K씨가 김 여인이 있는 곳에 당도했을 땐 먼저 올라온 안내원이 그녀의 곁에 있었다고 한다. 김 여인이 호흡을 하지 않아 그는 인공호흡과 심장 마사지를 했으나 숨을 쉬지 않았다고 한다.

탈진한 김 여인은 세 시간 가까이 강풍과 비바람 속에서 옷이 모두 젖은 채 쓰러져 있었다. 동행한 이들은 김 여인이 평소 국내 산에서는 선두그룹에 갈 정도로 체력이 좋았고 심장관련 질병은 전혀 없었다며 저체온증이 사인이라 확신했다. H씨는 “4명이 위독한 상황이었고 30분만 늦었어도 사망자가 더 늘어났을 것”이라며 당시 심각했던 상황을 얘기했다.

산악회 회장 K씨는 “현지 안내원과 말이 안 통하니 어떻게 할 수 없었다”며 “어떻게 등산지도 한 장 안 주고 산행에 대한 정보 한마디도 안 해줄 수 있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앞으로도 사고 발생 가능성 매우 높아
연변에서 백두산 산행 전문가이드로 16년을 근무한 L부장은 이 일을 두고“저가경쟁이 낳은 예견된 사고”라고 밝혔다.

“한국인들을 상대로 백두산 관광을 안내하는 여행사 15개 있습니다. 이 중에서 자일과 코펠·버너, 비상약품을 50리터 이상 배낭에 넣고 안전하게 안내할 수 있는 산악 가이드가 있는 업체는 두어 군데뿐입니다.”

L씨는 백두산 산행을 하려는 이들이 여러 여행사에 견적을 내 조금이라도 더 저렴한 곳을 택하다 보니 저가경쟁이 심해져서, 국내 여행사에서 한국인 가이드가 동행하지 않고 현지 여행사에서 조선족 가이드가 한 명 동행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현지 여행사들도 저가경쟁이 붙어 전문적인 산행능력을 갖춘 가이드는 대부분 없고 쇼핑을 유도해 매출 올리는 데만 급급하다고 한다.

이번 A고교동문산악회처럼 조선족 현지가이드 중 절반 정도는 산행을 하지 않고 중국인 안내원 두 명만 동행시켜 보낸다고 한다. 이번 경우처럼 긴급상황이 발생할 경우 전혀 소통이 안 되는 문제점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인들의 사고가 비교적 적었던 건 안내산악회에서 손님을 모집해 오는 경우가 많아서 한국인 안내산악회 등반대장들이 앞장서서 안내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L부장은 “현지 가이드들의 배낭을 보면 헤드랜턴 하나 없고 아무런 산행능력이 없는 사람이 많다”며 “고객을 모집해서 보내는 한국의 현지 여행사 사장들도 대부분 백두산에 와본 적이 없고 아무런 대비책 없이 손님들을 보내고 있다”며 여행업계의 안전 불감증을 지적했다. 또한 그는 “지프차로 순식간에 고도를 올려 산행하는 것이기에 충분히 고소증세가 올 수 있다”며 “비상시 대처 능력이 있는 산악전문 가이드가 요령 있게 사람들을 도닥거리고 이끌어 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유족 측은 “평소 지병이라곤 없었는데 심장병으로 진단한 게 억울해서 부검을 의뢰했다”고 밝혔다. 또한 H투어 측의 성의 있는 사과를 기대했는데 “시신운구 비용이 수천만원이 든다”며 “시신운구 비용을 빌려주겠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H투어 홍보팀 정기윤 팀장은 8월 20일 “현재 상황 파악 중이라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구조상황 발생시 중국 측 관리체계가 전혀 안 되어 있는 것도 문제다. 중국 후미 안내원이 후미에 체력이 떨어진 자들을 돌보지 않고 앞서 내려간 것은 잘못되었다. 맨 뒤에서 가이드 역할을 해야 할 안내원이 제 임무를 못 한 것이다. 중국 측의 구조체계도 허술하기 짝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

백두산 천지 일대는 나무가 없어 맑을 날은 시야가 훤히 열려 있다. 그러나 등산로 정비가 잘 되어 있지 않고 이정표도 없어 악천후에는 길 찾기가 쉽지 않다. 국내 1위 여행사인 H투어에서 34명이나 되는 단체고객을 이런 위험 속으로 내던지고, 사고 발생 열흘이 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입장표명 없이 있다가 유족이 본사에 찾아가자 “운구비용을 빌려주겠다”고 한 건 도의적인 측면에서 옳지 않다는 여론이다.

따지고 보면 이는 저가경쟁이 불러온 예견된 사고였다. 소비자 입장에선 기왕이면 더 저렴한 여행사를 찾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크고 작은 여행사가 늘어나며 과도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본을 지키지 않는 것이 일반화되었다는 것이다.

쇼핑을 끼운 불쾌한 저가관광 역시 1~2년 된 얘기가 아니다. 여행업계 스스로 자정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섰다.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 기본 안전을 무시하고 돈만 벌려는 업계의 경쟁에 선을 그어야 한다.

김 여인은 1남1녀를 키우며 고생하여, 이제 여유를 가지기 위해 처음으로 해외산행에 나섰다고 한다. 평소 산을 좋아했기에 첫 해외 산행지는 민족의 영산 백두산이었다. 대형 여행사를 믿고 간 김 여인은 안타깝게도 천지에서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여행과 산행은 다르다는 걸 일부 여행사들은 전혀 모르는 것 같다. 산행에는 위험이 따르며, 산에서 타인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말이다.

/ 글 신준범 기자
[월간산 2010년 9월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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