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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ㅣ남극일기] 정성 들인 극지 운행장면과 송강호 연기 돋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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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ㅣ남극일기] 정성 들인 극지 운행장면과 송강호 연기 돋보여

“산악인 모독이자 관객 모독” 악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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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들이 기다리던 영화 남극일기(감독 임필성·제작 싸이더스)가 5월19일 개봉했다. 남극점에 근접한 뉴질랜드에서의 로케이션, 송강호·유지태 등 화려한 캐스팅, 영화 ‘반지의 제왕’ 스태프 동원, 유명 음악감독 가와이 겐지의 음악, 그리고 제작비 90억 원의 엄청난 예산 등만으로도 관심 대상이거니와 남극 경험자인 산악인 박영석씨가 이른바 수퍼바이저로 참여, 영화를 생생한 현실처럼 재현했다고 해서 또한 화제가 되어왔다. 박영석의 북극점 탐험이 막 성사된 직후이기도 해서인지 개봉 첫주엔 상영중인 여러 영화 가운데 최고의 예매율을 보이기도 했다.

영화의 어떤 장면은 멋지다. ‘영하 수십 도의 추위에 거센 찬 바람이 부는 하늘에서 헬기 문짝을 떼내고 떨어질 위험을 무릅쓰고 마련한 영화의 도입부-대원들이 일렬로 설원을 전진하는 장면’은 제작진이 스스로 이름하여 ’살신성인 컷‘이다. 송강호의 연기 자체야 두말이 필요없다.


그런데, 산악인들 입장에서 보면 이 영화는 다소 기분 나쁘고, 심지어는 모욕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에서 노련한 산악인으로 설정된 대장(송강호)의 모습에서 특히 그러하다. 그는 거의 편집증 환자다. 대원들이 자는 새 그는 무전기의 부속 일부를 씹어 먹어버린다. 대원들이 베이스캠프와 연락할 수단을 없애버리는 한편 스스로 의지를 그렇게 기괴한 방식으로 다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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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또한 얼음구멍에 추락한 대원이 허리가 부러졌다고 하자 구조 로프를 놓아버려 죽게 한다. 중상을 입었을 경우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설정되었다면 이해해줄 수도 있는 장면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대장은 버튼만 누르면 곧바로 구조 헬기가 출동하는 긴급 구조요청장치(ENT)를 갖고 있다. 하지만 극점 도달에 대한 욕심이 앞을 가려 대원을 죽였다는 설정이다.

산악인들 일부는 이 영화에 매우 황당해하는 것 같다. “남극을 이길 수만 있다면 앞으로 어떤 기적도 만들 수 있어”라거나 “우리는 극한상황을 헤쳐나갈 때에야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낀다”거나 하는 대사는 한국의 ‘대표 산악인’들이 주로 해온 말들이다. 그걸 대장이 뇌까리며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짓을 연달아 저질렀다. 때문에 “사람들이 산악인들 알기를 무슨 냉혈한, 편집증 환자로 오해할까 겁도 나고 화도 난다”는 감상평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임필성 감독은 “이 영화의 남극이라는 공간은 우주일 수도 있고, 바다일 수도 있는 하나의 극지일 뿐이며, 그런 극지에 내몰린 인간의 지극히 이기적인 본성을 드러내는 미스터리 영화”라고 말했다. 제작진은 99년 말 어느 한국 남극탐험대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영화 홈페이지에 이런 뒷얘기가 실려 있다.

“대원 하나가 다치고나서 회의를 하는데 아무도 병원에 데리고 가자는 말을 안 했다. 굉장히 싸늘한 분위기였다. 대장이 철수 결정을 내리고 난 후 우는데 슬퍼서 우는 게 아니었다. 억울함과 분노의 눈물이었다. 저 새끼 땜에 못 가는구나. 정말 죽여 버리고 싶다 하는, 그런 마음이 읽혔다.”

그때 그 대장 심정이 정말 어떠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제작진은 이런 인식에서 영화를 시작한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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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의사나 변호사 등을 소재로 삼은 영화도 많으니, ‘이상한 산악인’이 등장하는 영화가 나왔다고 해서 과민반응할 필요는 없겠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재미있느냐, 얼마나 감동적이냐다.

재미? 글쎄, 도끼로 사람을 찍어 죽이는 ‘13일의 금요일’ 식의, 공연히 눈밭에 피를 쫙 뿌리는 장면과 더불어 콰광 하는 효과음으로 관객을 놀라게 하곤 해서 시종일관 긴장하기는 했지만, 종영 후 “야, 재미있네” 하는 반응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사람은 욕심 때문에 남을 죽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건 관객인 우리도 안다. 감독만 아는 게 아니다. 달리 말하면, 이 영화엔 드라마가 갖추어야 할 필수요소인 의외성이나 극적 반전이라 할 것이 별로 없다. 제작진의 역량이 그러하다 보니 대원의 발목을 톱으로 자르는 상투적 잔혹함으로 클라이맥스를 대신하고 만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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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희망대로, 진정 인간 내면의 깊은 곳을 파헤치고 들어간 무엇이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80년 전 조난사한 영국 원정대원들이나 대장의 죽은 아들 원혼, 혹은 남극의 귀기(鬼氣)라는 것을 설정해 그것에 대부분의 상황을 기대고 있을 뿐이다. 케케묵은 ‘월하의 공동묘지’식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홈페이지 관람 소감에 ‘사람 발목을 잘라대고 의미심장한 대사를 몇 마디 한다고 해서 인간본성의 사악함을 표현한 것인가?’ 하는 비난조의 촌평이 올라온 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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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상황의 리얼리티도 어설프다. 배우들 입김에는 온갖 정성을 다 들였다면서 상식적 정황에는 왜 무심했는지. 80년 전 영국 대원들 시신이 발견된 오두막집 얘기다. 영화 속에서 남극대륙은 사람이 날려갈 정도로 폭풍설이 몰아치는 곳이다. 그런 데서 엉성한 오두막집이 어떻게 80년 넘게 버틸 수 있나. 말도 안 된다.

개봉 이틀째인 5월19일 오후 8시에 시작한 대한극장 8관. 감독은 “관객이 일곱번째 대원의 심정으로 이 영화를 체험해 주길 바란다”고 했지만, 영화 관람 중 결국 몇몇 관객이 “에이-” 하면서 나가버렸다.

참으로 아쉽다. 작년의 ‘빙우’가 어설픈 시나리오에 실감나지 않은 연기, 엉성한 편집 등 총체적 부실로 개봉 1주일만엔가 막을 내려 안타까웠는데, 또 그런 악몽이 반복되는 게 아닌가 싶다. 이러면 자금줄이 막힌다. 이래서야 산과 산악인을 소재로 한 제대로 된 영화가 나올 수 있을까 걱정된다. 그래서 어떤 산악인은 “이 영화, 차라리 안 나왔으면 좋았을 걸”하고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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