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실수도 용납치 않는 '죽음의 산'...「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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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8,611m 높이로 세계 제2위 高峰인 K2는 히말라야 산맥에 솟아 있는 14개 8,000m급 고봉 가운데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를 제외하곤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산이다. 특히 외화 'K2'를 통해 알려진 바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K2'는 뉴질랜드의 해발 2,000~3,000m 높이의 야트막한 만년설산을 무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기에 실제 K2를 머릿속에 그릴 수 있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카라코룸 히말라야의 최고봉인 K2는 파키스탄과 중국과의 국경에 솟아 있다. '검은 암석의 땅'이라는 의미인 카라코룸(Karakorum)은 인더스강 상류에서 서쪽 힌두쿠시산맥에 이르기까지 약 500km 길이로 뻗어 있는 대산맥으로, 네팔 히말라야에 비해 위도가 5도 정도 높기 때문에 高溫多濕(고온다습)한 인도양 기후의 영향을 덜 받고, 그로 인해 매우 건조하여 동물이나 식물이 생존하기 어려운 불모지대다.
이 산맥의 북동쪽에 위치한 K2는 주변에 8,000m급 3개봉을 비롯, 20여 개의 7,000m급 고봉들과 6,000m급 봉들 여럿 솟아올라 수많은 家臣(가신)을 거느린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때문에 '절대군주', '산 중의 왕'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것이다.
K2는 주변의 산에 비해 600~2,000m 더 높은 높이로 솟아 있기 때문에 주위에 뻗은 6개 빙하에서 형성되는 강한 기류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특히 이 기류들이 티벳 쪽에서 형성된 차가운 기류와 정상부에서 부딪치면서 구름띠가 형성하곤 하는데, 이 구름띠는 멀리서 바라보면 아름답고 신비롭게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살인적인 돌풍이 시계방향으로 움직이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돌풍이 등반가들의 발목을 잡거나 죽음의 奈落(나락)으로 밀어붙이곤 하는 것이다.
게다가 6개의 주능선과 주능선 곳곳에 여러 가닥의 지능선이 빙하를 향해 뻗어 있지만 능선 하나 하나가 거대한 벽이나 다름없어 어느 능선이든 골이든 등반이 만만치 않다. K2에서 목숨을 잃은 산악인 대부분이 이 돌풍에 휘말리면서 수천m 높이의 거대한 벽 아래 빙하로 추락사한 것이다.
K2가 처음 발견된 것은 1856년 영국의 測量將校(측량장교) T.G 몽고메리 대위에 의해서였다. K2 서쪽 무즈타그(Muztagh) 고개에서 K2를 비롯, 카라코룸 산군을 바라본 그는 고봉들의 이름을 식별하기 쉽도록 K1, K2 식으로 붙였다. 때문에 파키스탄어로 초고리라는 이름이 가지고 있음에도 K2라는 이름이 붙었고, 이후 그 이름으로 불려오고 있다.
K2 등반을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은 1902년 영국-오스트리아 합동팀이었다. 이들은 해발 6,525m 지점가지 오르는 것으로 끝났고, 여섯 번째 팀인 미국 팀은 1939년 해발 8,367m까지 진출해 초등정의 기쁨을 누릴 호기를 얻었으나, 날이 어두워지자 어둠 속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귀신이 있다는 미신을 믿고 있는 셰르파의 등반 거부로 마지막 정상공격을 포기해야 했다. 미국 팀은 하산길에서 대원 한 명과 셰르파 네 명이 목숨을 잃는 비극으로 등반이 끝내야했다.
K2 초등정은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1954년 9번째 도전 팀인 이탈리아 원정대에게 돌아갔지만, 안타깝게도 대원 한 명이 사망하고 만다. 이후 23년이 지난 1977년 일본 팀에 의해 재등정이 이루어지고 이후 1985년에 이르기까지 38팀이 도전, 7개 팀만이 등정에 성공하고, 그 사이 6명이 사망, 등정율이 매우 떨어지는 산으로 세계 산악인들에게 인식된다.
한국 산악인들은 1986년 대원 3명이 정상에 올랐으나, 그해 함께 등반한 9개팀 대원들 가운데 11명의 산악인들이 사망, K2는 험난한 '죽음의 산'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 산악인이 또다시 K2 정상을 밟은 것은 지난해인 2000년이었다. 당시 한국의 3개팀에서 14명의 산악인이 정상을 밟아 한 시즌 최다 등정국가 기록을 세웠다. 이어 지난 7월22일 박영석을 비롯, 3명의 산악인이 등정에 성공,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20명의 K2 등정자가 나왔다. K2는 올해까지 약 130여개 팀이 도전, 40여개 팀이 등정에 성공했고, 50명에 이르는 산악인 및 셰르파들이 사망했다.
이번에 K2 등정에 성공, 히말라야 8,000m급 고봉 14개를 모두 오른 박영석씨는 K2를 일컬어 "작은 실수도 결코 용납하지 않는 험악한 산"이라 평했다. 함께 하산하다 사고를 당한 박영도 대원은 난구간을 다 벗어난 다음 마지막 캠프(8,100m)를 약 200m 남겨놓고 평범한 설사면에서 아이젠이 다른 쪽 등산화에 걸리면서 넘어지는 작은 실수를 범했고, 그 결과가 표고차 2,000m의 추락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카라코룸 히말라야의 최고봉인 K2는 파키스탄과 중국과의 국경에 솟아 있다. '검은 암석의 땅'이라는 의미인 카라코룸(Karakorum)은 인더스강 상류에서 서쪽 힌두쿠시산맥에 이르기까지 약 500km 길이로 뻗어 있는 대산맥으로, 네팔 히말라야에 비해 위도가 5도 정도 높기 때문에 高溫多濕(고온다습)한 인도양 기후의 영향을 덜 받고, 그로 인해 매우 건조하여 동물이나 식물이 생존하기 어려운 불모지대다.
이 산맥의 북동쪽에 위치한 K2는 주변에 8,000m급 3개봉을 비롯, 20여 개의 7,000m급 고봉들과 6,000m급 봉들 여럿 솟아올라 수많은 家臣(가신)을 거느린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때문에 '절대군주', '산 중의 왕'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것이다.
K2는 주변의 산에 비해 600~2,000m 더 높은 높이로 솟아 있기 때문에 주위에 뻗은 6개 빙하에서 형성되는 강한 기류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특히 이 기류들이 티벳 쪽에서 형성된 차가운 기류와 정상부에서 부딪치면서 구름띠가 형성하곤 하는데, 이 구름띠는 멀리서 바라보면 아름답고 신비롭게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살인적인 돌풍이 시계방향으로 움직이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돌풍이 등반가들의 발목을 잡거나 죽음의 奈落(나락)으로 밀어붙이곤 하는 것이다.
게다가 6개의 주능선과 주능선 곳곳에 여러 가닥의 지능선이 빙하를 향해 뻗어 있지만 능선 하나 하나가 거대한 벽이나 다름없어 어느 능선이든 골이든 등반이 만만치 않다. K2에서 목숨을 잃은 산악인 대부분이 이 돌풍에 휘말리면서 수천m 높이의 거대한 벽 아래 빙하로 추락사한 것이다.
K2가 처음 발견된 것은 1856년 영국의 測量將校(측량장교) T.G 몽고메리 대위에 의해서였다. K2 서쪽 무즈타그(Muztagh) 고개에서 K2를 비롯, 카라코룸 산군을 바라본 그는 고봉들의 이름을 식별하기 쉽도록 K1, K2 식으로 붙였다. 때문에 파키스탄어로 초고리라는 이름이 가지고 있음에도 K2라는 이름이 붙었고, 이후 그 이름으로 불려오고 있다.
K2 등반을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은 1902년 영국-오스트리아 합동팀이었다. 이들은 해발 6,525m 지점가지 오르는 것으로 끝났고, 여섯 번째 팀인 미국 팀은 1939년 해발 8,367m까지 진출해 초등정의 기쁨을 누릴 호기를 얻었으나, 날이 어두워지자 어둠 속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귀신이 있다는 미신을 믿고 있는 셰르파의 등반 거부로 마지막 정상공격을 포기해야 했다. 미국 팀은 하산길에서 대원 한 명과 셰르파 네 명이 목숨을 잃는 비극으로 등반이 끝내야했다.
K2 초등정은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1954년 9번째 도전 팀인 이탈리아 원정대에게 돌아갔지만, 안타깝게도 대원 한 명이 사망하고 만다. 이후 23년이 지난 1977년 일본 팀에 의해 재등정이 이루어지고 이후 1985년에 이르기까지 38팀이 도전, 7개 팀만이 등정에 성공하고, 그 사이 6명이 사망, 등정율이 매우 떨어지는 산으로 세계 산악인들에게 인식된다.
한국 산악인들은 1986년 대원 3명이 정상에 올랐으나, 그해 함께 등반한 9개팀 대원들 가운데 11명의 산악인들이 사망, K2는 험난한 '죽음의 산'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 산악인이 또다시 K2 정상을 밟은 것은 지난해인 2000년이었다. 당시 한국의 3개팀에서 14명의 산악인이 정상을 밟아 한 시즌 최다 등정국가 기록을 세웠다. 이어 지난 7월22일 박영석을 비롯, 3명의 산악인이 등정에 성공,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20명의 K2 등정자가 나왔다. K2는 올해까지 약 130여개 팀이 도전, 40여개 팀이 등정에 성공했고, 50명에 이르는 산악인 및 셰르파들이 사망했다.
이번에 K2 등정에 성공, 히말라야 8,000m급 고봉 14개를 모두 오른 박영석씨는 K2를 일컬어 "작은 실수도 결코 용납하지 않는 험악한 산"이라 평했다. 함께 하산하다 사고를 당한 박영도 대원은 난구간을 다 벗어난 다음 마지막 캠프(8,100m)를 약 200m 남겨놓고 평범한 설사면에서 아이젠이 다른 쪽 등산화에 걸리면서 넘어지는 작은 실수를 범했고, 그 결과가 표고차 2,000m의 추락으로 이어졌던 것이다.